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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에게 인간도리를 바라지 않는다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4. 4. 1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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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돼지에게 인간도리를 바라지 않는다



박종국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서로 흘겨뜯으며 더 나은 자리에 오르겠다고 아득바득댄다. 그렇게 사람 같잖은 사람이 많다. 흙탕물에 빠져 살면 자기 구린내를 느끼지 못한다. 입이 더럽혀질까 봐 더는 넌더리가 필요치 않다.

손때 묻은 책을 다시 펼쳤다.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다. 각 꼭지마다 재밌게 사는 멋이 가득하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는 스님의 변하지 않는 침묵과 무소유의 삶이 철저함하다. 맑은 정신으로 자연과 벗하면서 구도정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다북하다. 스님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책갈피마다 늘 한 자리에 선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와 철학이 담겼다. 진정한 수도를 마주 대하는 듯하다.

읽다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띈다.

임종을 앞둔 노스승이 마지막 가르침을 주기 위해 제자를 불렀다. 스승은 자기의 입을 벌려 제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입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은 이유를 알겠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운 게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이것이 세상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는 너에게 가르쳐줄 게 없구나. 명심하거라."


살면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강한 데만 마음을 빼앗겨 살았다.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사람의 욕망에 따를 재간이 없다. 집을 마련하거나 차를 살 때, 가전제품을 들여놓을 때, 먹을거리를 챙길 때도 크고 때깔 좋은 데 먼저 손이 간다. 큰데 더 가치를 두고, 그러한 데 길들여진 까닭이다. 정부 고위직에 임명된 사람도 더 단단한 자리를 얻으려다 덜컥 덜미가 잡힌다. 제 자리에 만족했으면 그런 일이야 없었을 텐데.  

일찍이 노자는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나앉아 게 물이고, 가장 착한 게 또한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일정불변의 고정된 모습이 없다.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습을 하고,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뜨거운 곳에서는 수증기가 되고, 차가운 곳에서는 얼음이 된다. 그게 물의 성정이다.

이렇듯 물은 자기 고집이 없다. 강함을 앞세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내면의 부드러움으로 남의 뜻을 따른다. 그러나 추녀 끝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평소에는 그토록 부드럽던 바람도 어떤 힘을 받으면 그렇게 사납고 거셀 수가 없다.

개돼지에게 인간도리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부드러워져야겠다. 똑같은 인간으로 먹칠하고 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사는 데 한결 너그러워지고, 온유함을 가야겠다. 달콤함에 길들여졌던 혀끝을 다독여야겠다. 맑은 물에 눈을 씻고, 부드러운 바람결에 귀를 후벼야겠다. 근데도 왜 자꾸만 같잖은 일에 머리끝이 곤두서는지 모르겠다.

발버둥쳐봤자 스스로 하찮은 개돼지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상위 언저리에도 못 드는 나는, 그저 궂긴 일 만들지 않고, 인간도리는 긁지 않고 사는데 충실해야겠다.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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