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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분노 해소'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6. 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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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분노 해소'
[손석춘 칼럼] 과연 오늘이 이상주의 정책 탓인가
텍스트만보기   손석춘(ssch) 기자   
"현실과 동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단다. 이상주의 정책 때문이란다. 한나라당에서 누군가 던진 말에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적극 ‘화답’하고 나섰다. ‘청와대 쇄신 요구’까지 나왔다. 비단 몇몇 의원들의 주장만은 아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당직자들까지 곰비임비 나섰다. 강봉균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정장선 제4정조위원장이 그들이다.

언제나 노 대통령을 일러 ‘친노정책’이니 ‘운동권 정책’이니 몰아세웠던 저 부자신문들이 침묵할 리 없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일제히 6일자 신문에서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현실론을 들어 대통령의 ‘인식’을 비난하고 나섰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냥 넘길 사안은 분명 아니다. 대통령의 현실인식론이 정가와 언론에서 담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에 동의하는 까닭

결론부터 말하자.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은 전적으로 옳다. 눈 흘길 일이 아니다. 실제로 동떨어져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이 이상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은 전적으로 틀리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나마 있었던 ‘이상’을 잃어버린 결과다. 바로 그 점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이 대통령을 옹호하며 “정작 문제는 대통령이 갖고 있는 철학을 여당이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반박한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도대체 노 대통령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당장 묻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윤태영 청와대제1부속실장이 공개한 ‘국정일기’는 쓴웃음을 자아낸다. 임기 5년의 반환점을 앞두고 있는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보라. “대통령이 된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는 한국사회에 있는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단다.

쓴웃음 나오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대통령 자리에 있다면,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는 일’을 ‘과제’로만 토로할 게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야 옳다. 하지만 어떤가. 대통령이 말하는 ‘분노’가 누구의 그것인지 불확실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가장 큰 분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비정규직이 오히려 늘어나는 법안을 지금 이 순간도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언구럭부리는 데 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결연히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노조간부들의 비리가 불거지는 상황을 이용해 호시탐탐 법안을 강행처리하려는 풍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미 전체 노동자 과반이 넘은 비정규직들의 분노는 주관적 도덕이나 해탈노력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다. 그래서다. 윤 실장이 국정일기에서 “참여정부의 대통령은 특별히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다”는 말에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까닭은.

명토박아 묻는다. 왜 ‘특별히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는가. 성장 못지않은 복지정책, 자주적인 외교정책, 노사 사이의 힘의 불균형 해소를 열망하는 이 땅의 개혁세력과 민주세력이 힘을 모아주지 않았던가. 그가 집권 1년 동안 우왕좌왕하다가 탄핵을 맞았을 때 민주시민들이 나서서 방어해주지 않았던가. 이어 마침내 국회 과반의석을 주지 않았던가.

'분노와 증오 해소' 대통령이라면 정책으로 추진하라

그런데 어떤가. 1년 동안의 과반의석으로 무슨 일을 했는가. 임기 절반동안 과연 얼마나 개혁에 나섰던가. 착각하지 말 일이다. 합리적인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가 질타하고 있듯이 참여정부는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과 동맹을 형성했다. 통계청 자료가 분명히 ‘증언’하고 있듯이 노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은 되레 커지고 있다.

그래서다. 이상주의로 비난하는 담론에 혹 스스로 매몰되거나 더 나아가 이상주의자로 자신을 ‘미화’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본인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시대’에 더 고통 받는 절대다수의 문제 아닌가.
2005-06-06 16:59
ⓒ 2005 OhmyNews
Waiting on the rainy street - Day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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