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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의원은 90년 "내가 입을 열면 YS는 끝난다"고 말해 정치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데, 그의 공언이 15년이 지난 후에야 실현된 셈이다. 박 전 의원이 이사장을 맡고있는 한반도통일문화재단은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박 전 의원이 87년 6.29 선언의 진실부터 180만 사조직 월계수회의 조직과 교육과정, 5공 청산을 둘러싼 전·노 전 대통령의 갈등, 3당 합당의 물밑협상 전모 등 15가지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비사>는 오는 12일 발간될 예정이다. 현철 아파트 등에서 3차례 직접 전달 회고록 내용 중에서 90년대 내내 자신과 정치적 앙숙관계였던 YS의 행적을 묘사한 부분이 가장 눈길을 끈다. 이 회고록에 따르면, 박 전 의원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 지시로 89년 5월 30일 YS의 차남 현철씨의 상도동 아파트에서 YS를 만나 1억원짜리 신한은행 수표 20장과 러시아(당시 소련) 방문 여비로 쓰라며 2만 달러를 전달했다. 6월 2일 구 소련 방문을 앞두고 있던 YS는 "이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부담감을 느끼는데… 앞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혁명적인 일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 전 의원은 같은 해 12월 20일에도 현철씨의 아파트에서 YS를 다시 만나 노 대통령의 연말 성의라며 1000만원짜리 상업은행 수표 100장을 주었고, YS는 이때도 '믿으니 받는 겁니다'라고 사의를 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3당 합당 이틀 뒤인 90년 1월 24일에도 YS의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가 설 연휴를 앞두고 10억원을 건네는 등 40억원 이상을 YS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그는 YS가 자금을 수수한 증거로 당시 건넨 수표의 일련번호는 물론 당시 돈을 준 메모까지 제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경우 지난 1995년 10월 27일 9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바 있지만, 6공이 YS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한 정황이 구체적 액수와 함께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5년 DJ는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며 "YS도 정치자금을 전부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YS는 "야당 총재시절 대기업과는 접촉할 수도 없어 작은 기업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을 뿐 정권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왔다. 그러나 DJ의 기자회견 전날 김윤환 당시 민자당 대표가 "YS가 선거자금을 받았을 것이며 야당 지도자들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YS의 정치자금 수수설이 정치권에서 '설득력 있는 가설'로 회자된 것이 사실이다.
합당 사실상 합의해놓고 군중집회에서는 불신임 퇴진 요구 박 전 의원은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었던 중간평가 유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YS가 적극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야3당 중 YS가 중간평가 유보에 가장 강하게 반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의원은 "89년 3월 16일 상도동 김 총재 자택 2층 서재에서 YS와 단 둘이 만나 중간평가 유보에 합의했고, 민정당과 통일민주당의 합당에 대해서도 사실상 합의했다"며 "특히 YS는 중간평가 유보 성명서를 작성할 때 참고하라고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때까지 '정권 퇴진'을 주장해온 YS는 이틀 뒤 충남 온양의 온천초등학교에서 열린 군중집회에서 "노태우 정권이 존속하는 한 독재잔재의 철저한 청산과 진정한 민주시대의 개막이 불가능하다"며 노 정권 불신임 퇴진을 강조했다. 박 전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YS는 노태우 정권과 정치적 밀약을 해놓고는 대외적으로는 '정치쇼'를 한 셈이다. 또한 박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90년 3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YS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단독회담'에 대해서도 "YS가 하도 졸라 고르바초프의 퇴근길에 선 채로 인사말만 나누었을 뿐"이라고 폭로했다. 박 전 의원은 90년 4월 10일 기자들을 만나 "내가 3당통합 과정이나 한·소 관계에서 있었던 비사들을 폭로하면 YS의 정치생명은 하루아침에 끝난다", "내가 진실을 얘기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인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는 등의 말들을 쏟아냈지만, 당내 분란을 우려한 노태우 대통령의 만류로 그는 결국 '폭탄선언'을 접고 말았다. YS 측 당혹 "박철언 말 어찌 믿나"... 여당 "3당합당 뒷거래 드러나" "호랑이를 잡으려 호랑이굴에 들어갔다"(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며 3당 합당을 합리화해온 YS측은 박 전 의원의 주장에 대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YS측 김기수 전 청와대 수행실장은 "박 전 의원은 틈만 나면 김 전 대통령을 음해한 인물"이라며 '노 코멘트'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YS가 안기부 미림팀의 비밀도청으로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이번에 터져나온 6공과의 뒷거래 의혹은 YS를 정치적 사면초가에 몰아넣었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폭로를 한나라당을 공략하기 위한 호재로 파악하고 있다. 전병헌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이날 "박 전 장관의 회고록으로 한나라당 본체인 3당 밀실야합의 검은 뒷거래가 드러냈다"며 한나라당에 3당합당의 실체와 정치공작금의 전모를 고백하라고 촉구했다. "송사 휘말릴 수도 있지만 바른 역사를 위해 펜 들었다" 박 전 의원은 현직에 있을 때 일지 형식으로 기록해 둔 20여권의 업무 다이어리와 120여권의 수첩 등을 토대로 이번에 2권짜리 회고록을 썼다고 한다. YS와 관련된 대목 이외에 "87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6·29 선언을 먼저 제의했고, 노 대표는 DJ를 풀어 줄 것을 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적은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박 전 의원은 "회고록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도 생존해 있다"며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지만, 바른 역사를 위해 공직자와 리더들을 위해 펜을 들었다"고 회고록을 펴낸 심경을 밝혔다. 박 전 의원은 5공화국부터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청와대 정무·법률비서관, 안기부 특별보좌관, 남북비밀회담 수석대표, 대통령정책보좌관, 정무장관, 체육청소년부장관, 국회의원(3선) 등을 지냈다. 박 전 의원이 회고록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내용으로 꼽은 얘기들은 다음과 같다. ▲ 5공 초기 '쓰리 허(許)'의 야심과 실각- 강경론자 허화평과의 세번에 걸친 충돌 ▲ 85년 여름, 학원안정법 파동의 숨겨진 진상 ▲ 42차례 남북비밀회담 수석대표(85∼91년)로 김일성 주석 등 북측 인사와의 회동- 미국과 극우보수파의 치열한 견제 ▲ 86년 가을 싹쓸이론(친위 쿠데타)의 진상 ▲ 87년 '6.29 선언' 전두환 대통령이 먼저 제의 ▲ 87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180만 사조직 월계수회의 실체 ▲ 5공 청산을 둘러싼 전·노 대통령의 공방 - 5공의 핵심 정치자금 ▲ 89년 봄 중간평가 유보 결정과정 그리고 김영삼 총재의 적극 협력 ▲ 3당 통합을 위한 물밑협상 전모 - 김영삼 총재에 40억+알파 전달, 김대중 총재와의 깉은 대화 ▲ 북방정책 : 헝가리,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위한 비밀협상 전모 공개 ▲ 90년 YS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 진상 - YS가 하도 졸라 퇴근길에 선 채로 인사말만 나누었을 뿐 ▲ 노태우 대통령 내외와의 정치적 결별과정과 'YS대통령 만들기' 민정계 5인방 ▲ DJP야권후보 단일화를 향한 집념과 성사 비화- 김대중 총재와의 6차례 비밀회동 그리고 DJ의 '천주님 앞' 맹세 ▲ DJP공동 집권 후 통합신당창당 시도와 DJ, JP결별 내막 ▲ 대북정책과 북방정책 추진에 있어 정주영 현대회장의 숨은 역할 ▲ 3당통합 추진과정에서의 신격호 롯데회장의 역할, 이건희 삼성회장과 김우중 대우 회장의 숨은 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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