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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0일 오후 6시17분]
"<조선>은 5·18 때 뭐라고 보도했나?"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을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이라며 군사 정권의 학살을 비호하는 기사를 썼던 조선일보사가 고 전 총리의 5·18 관련 전력을 꼬집었기 때문. <조선>은 20일 유력 대선주자 4인의 약점 10가지를 다룬 기사를 연재하면서 첫번째 순서로 '당신은 80년 5·18 때 어디 있었나'라는 제목으로 고 전 총리의 행적을 보도했다. 고 전 총리에 대해 "'난세 때의 처신'이 대선 때는 더욱 휘발성이 강한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크다"면서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1주일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 전 총리는 5·17 행적에 대해 "군정에 참여할 수 없어 운전기사를 통해 사표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조선>은 "고 전 총리의 해명은 전두환 정권에서 그가 중용됐다는 점에서 다소 빛이 바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고 전 총리는 지난 80년 교통부장관, 81~82년 농수산부장관을 거쳐 85년 군산·옥구에서 민정당 소속으로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고 전 총리는 뒤이어 6·10 시민항쟁이 있었던 87년에는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고 전 총리는 또 2003년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5·6공화국 참여 행적에 대해 집중 추궁을 받은 적이 있다. "전두환을 '난세의 영웅'이라던 신문사가 어느 신문이었더라?"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조선>은 '폐허같은 광주... 데모 6일째'(1980년 5월 23일자)라는 제목으로 시위대에 의해 광주가 폐허가 된 것처럼 보도했고, 광주 시민들을 "총 들고 서성대는 과격파들"(1980년 5월 25일자)이라고 표현했다. 사설(1980년 5월 28일자)을 통해서도 "국군이 선량한 절대다수 광주 시민 곧 국민의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이번의 행동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음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며 "비상계엄군으로서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진수(아이디 'jcachi')씨는 기사 댓글에 "고 전 총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본다"면서도 "그러나 그 문제제기를 <조선>이 했을 때는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 아니냐, 그 당시 <조선>은 앞장서서 '폭도'니 하면서 몰아 부치던 신문이 고 전 총리에게 뭐했냐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고 조소했다. 김성민(아이디 'sm7112') 씨도 "<조선>이 남을 평가할 자격이 있나, 기회주의자는 바로 너희들 아니냐"며 비난했다.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집권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네티즌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아이디 '나쮸'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관련 기사 댓글을 통해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대의 성군이라 하던 인간들이 코미디하냐"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사를 두고 <조선>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옹호론도 눈에 띄었다. 아이디 '어이'는 "광주 당사자들 빼곤 각자 다들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남의 말을 너무 쉽게 하지 말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같은 네티즌의 지적에 대해 기사를 작성한 <조선> 기자는 "언론이 제기해야 할 부분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네티즌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연관성 없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선>은 고 전 총리에 대해 ▲69세 대통령 후보 ▲병역문제 ▲87년 민주화운동 강경진압설 ▲'IMF 국무총리'란 오명 등을 약점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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