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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향의 봄' 노래비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9. 2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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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향의 봄' 노래비
이원수씨의 안타까운 친일행적을 돌아보며
텍스트만보기   김대갑(kkim40) 기자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 창립에 참가, 부회장이 되었으며 서울특별시문화위원회 문화분과위원, 한국문인협회 창립회장 등을 지냈다. 그는 초기 율동적이며 감각적인 경향에서 1940년 저항적이며 현실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경향으로 변모했으며 광복 뒤 동화·아동소설 발표에 주력, 특히 고발적 사실주의 아동소설을 선보였다. 또한 1950년대 후반부터는 평론활동도 전개,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다. 1970년 고마우신 선생님 상, 1973년 한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문학부문 본상 등을 받았다.’

백과사전을 펼쳐보면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작시한 이원수씨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고향의 봄’이란 노래가 도대체 어떤 노래인가? 이원수씨가 15살 되던 해 소파 방정환이 발행한 ‘어린이’라는 잡지에 공모하여 당선된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고향이 과연 어디냐를 놓고 양산시와 창원시가 아직도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고 한다.

양산시는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었던 곳이 북정동’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창원시는 창원시대로 자기네가 고향이라고 주장한단다. 그러나 만일 이원수씨가 일제 말기에 친일을 하였다는 사실이 일반화된다면 두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이제는 이원수씨의 노래비나 문학관을 철거하자고 서로 티격태격할 것인가?

▲ 북정공원 입구
ⓒ2005 김대갑
참 안타까운 일이다. ‘고향의 봄’이란 노래는 우리 민족에게 ‘아리랑’에 버금갈 정도로 친숙하고 낯익은, 정말 ‘고향’같은 노래이다.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를 곱씹어보면 순진무구하고 천진한 동심의 세계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라는 구절에 이르러선 한 폭의 수채화가 선명히 떠오를 정도이지 않는가?

이원수씨는 이 시 하나로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 후에도 이원수씨는 수많은 동시와 동화를 발표하였으며, 앞에서 예로 든 백과사전에서 볼 수 있듯 아동문학가로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그가 치욕스럽게도 친일문학가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있으니 참 안타까우면서도 분노가 절로 인다.

새들아 보아라/해도 보아라/우리나라 용감한 낙하산 병정
승리를 위해 피흘리는 일선의 장병을 생각하며


위 문구는 이원수씨가 조선금융조합연합기관지인 <반도의 빛>에 1942년과 1943년에 집중적으로 발표한 친일 시편이다. 당시 이원수씨는 함안금융조합에서 일했으며, 금융조합은 우리 나라 농민을 수탈하기 위한 대표적인 일제의 고리대부기관이었다.

결국 이원수씨는 직장생활에서 벌써 친일을 자행한 인물이며,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이 땅의 순진무구한 젊은이들에게 전쟁터로 나가라고 독려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원수는 이런 자신의 친일 행적을 죽을 때까지 숨겼다. 그리고 그가 친일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작품 발표 50년 후, 작고 20년 후였다.

▲ 북정공원에서 본 북정동 거리
ⓒ2005 김대갑
경남대 박태일 교수는 지난 2002년부터 이원수의 부왜문학행적을 추적하였으며, 그가 <반도의 빛>이라는 잡지에 친일 문학 5편을 게재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경남도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원수 관련 선양 사업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늦게라도 이원수씨에 대한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의 봄’은 여태껏 각종 국가적인 행사에서 단골로 연주되었던 곡이다. 외국에 있던 재외동포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환영식장에서, 남북이산가족이 만나는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우리는 TV를 통해 이 노래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얼마나 친숙하면서도 정겨운 노래였던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였던가. 이 아름답고 고운 노래가 이원수씨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으니 그저 안타깝고 서러울 수밖에.

▲ 공원내 노래비
ⓒ2005 김대갑
그러나 우리는 믿고 있다. 이 시를 썼던 15살의 소년 이원수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고운 심성을 가졌던 것을. 또한 믿고 싶다. 살구꽃이 우거진 동네에서 친구들과 천진하게 놀던 소년 이원수의 마음 한구석에 조국을 유린했던 일제의 간악함이 없었다는 것을. 다만 순진한 소년을 부왜의 길로 내몬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원수 선생님, 저 하늘에서나마 뒤 늦게라도 이 땅의 백성들에게 진실로 잘못했노라고 참회하시기 바랍니다. ‘고향의 봄’을 짓던 그 순연함으로 말입니다.
2005-09-21 14:47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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