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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교육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1. 1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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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공책대화 우린 이걸로 통해요”


△ 광주 두암중학교 1학년 1반 학생들이 담임 박춘애 교사(한가운데)를 에워싼 채 저마다의 '반 공책'을 펼쳐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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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여는 교육

    2. 광주 두암중 1학년 1반 '특별한 공책'

    광주 북구 두암중학교 1학년 1반 아이들은 특별한 공책을 하나씩 갖고 있다. 학년 초 학급회의에서 아이들은 이 공책에 ‘반 공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반 전체의 공책이라는 뜻이 아니다. 각자의 공책이지만, 반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책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반 친구들과 더불어 사는데 꼭 필요해요


    힘 세고 의리 있기로 소문난 전용훈(13)군의 반 공책은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담임 박춘애(40) 교사는 그 밑에 이렇게 썼다. “용훈아, 영어 공책 없냐? 공책 없으면 말하고, 더 재미있는 얘기 좀 써라. 그리고 주변에 힘 자랑 하려고 덤비는 선배들 생기면 샘(선생님)한테 꼭 얘기해라. 샘은 늘 용훈이 편이라는 거 알지?” 용훈이의 반 공책이 조금씩 달라진다. 영화 감상문,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께 쓴 편지, ‘학교 가는 게 점점 무서워진다’는 고백 등이 이어진다.

    김지영(13)양의 반 공책에는 친구들의 짤막한 편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지영이가 반 공책에 털어놓은 고민을 선생님이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고 의견을 구한 뒤 그렇게 됐다. 아이들은 그게 지영이의 고민이라는 걸 모른 채 열심히 고민 상담을 해 줬다. 지영이가 썼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 윤경지(13)양의 반 공책 뒤에는 오늘 공부할 내용과 실제 공부한 내용, 공부한 느낌을 적는 공간이 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경지의 하소연에 박 교사가 “계획을 세워 공부를 해 보자”고 제안했고, 경지가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반 공책은 아이들의 일기나 교사의 상담 일지가 아니다. 각자의 개성을 한껏 담고 있는, ‘아이들’ 그 자체다.

    한 친구의 고민에 반 아이들 '댓글' 줄줄이

    박 교사는 1994년 처음 담임을 맡은 뒤 해마다 ‘공책’을 만들었다. 처음엔 몇몇 아이들이 함께 모둠일지를 쓰다, 아이들이 속내를 털어놓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개인일지로 바꿨다.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사이버 일지도 운영했는데, 아이들의 참여가 적어 결국 ‘종이’로 귀환했다. 조금씩 진화를 거듭한 박 교사의 공책은 아이들이 각자 쓰면서 교사와 일 대 일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아이들끼리 서로 돌려보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소통을 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조회나 종례 시간에는 지시 사항을 전달하기 바쁘고, 수업 시간에는 진도 나가야 하고, 수업 끝나고 만나려고 하면 아이들은 학원으로 달려가고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제가 아이들에게 무슨 충고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끼리 서로를 알아가고 스스로 배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박 교사는 96년 담임을 맡았던 김서영(가명)양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영이는 당시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아이였다. 아이들은 공책에 “서영이는 공책 필기도 안 보여 주는 이기주의자”라고 불평했다. 서영이는 서영이대로 “나는 친구가 없는 게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박 교사는 아이들의 공책에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글을 남겼지만 별 반응이 없는 듯 보였다.

    함께 돌려보며 소통 "아이들은 서로의 스승"


    △ 장래 희망을 명함 형식으로 만들어 넣어둔 '꿈 상자'

    그러다 박 교사는 운동장에서 서영이와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이들이 줄의 양쪽 끝을 잡고 서영이가 한가운데서 줄을 넘고 있었다. 서영이는 줄에 걸려 자꾸만 넘어졌다. 한 아이가 서영이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가 서영이의 다른 한쪽 손을 잡고 뛰었다. 서영이의 줄넘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체육 실기시험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유난히 운동을 못하는 서영이를 도우려고 아이들이 나선 것이다. 그날 서영이의 공책에는 눈물 자국이 완연했다. “나는 11과목을 잘하는데, 못하는 한 과목을 아이들 도움으로 해냈다. 아이들에게 11과목 도움을 주지 못한 나는 바보다.” 그날 이후 서영이는 과목별 공부 모임을 만들고 ‘학생 모집’ 공고를 내더니 반 아이들의 과외교사로 나섰다. 학급 전체 평균이 10점 이상 올랐다. 박 교사는 반 성적이 오른 것보다 스스로 깨닫고 서로 배우는 아이들이 대견했다고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아이들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은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이고요. 반에서 가장 문제가 많아 자퇴할 위험이 있는 아이는 교사가 아니라 반 아이들이 더 잘 도울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죠. 아이들이 서로의 스승인 거죠. 아이들이 그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고요.”

    두암중 1학년 1반의 급훈은 ‘더불어 한 길’이다. 아이들은 반 공책을 통해 조금 느린 친구, 조금 빠른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꼴찌에서 일등까지 ‘우리 반’ 만드는 박춘애 교사의 비법

    1. 아이들의 미래를 담은 ‘꿈 상자’를 만든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장래 희망이 담긴 ‘명함’을 만들게 한다. 내 인생의 독재자 김우경, 비바람을 막아 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한 그루 나무를 닮고 싶은 이혜성, 미래의 디자이너 김지수…. 아이들이 정성껏 만든 명함을 모아 ‘꿈 상자’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보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네 꿈을 위해 무얼 했고, 무얼 할 생각이니?”라고.

    2. 분야별 꼴찌를 노골적으로 우대한다.

    축구를 할 때 운동을 못하는 아이를 지목하며 “아무개가 한 골을 넣으면 두 골을 넣은 것으로 치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은 경기 내내 그 아이에게 공을 몰아준다. “친구들과 공부 모둠을 만들되 이번 시험에서 모둠 평균이 지난 번 시험과 가장 많이 차이나는 모둠에 상을 주겠다”고 말한다. 점수가 낮은 친구일수록 성적이 오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자기 모둠에 꼴찌를 영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3. 학급 자치 활동을 강화한다.

    6~7명씩 ‘두레’라 불리는 모둠을 만들어 환경두레, 교육정보두레 등 각 두레별 구실을 아이들 스스로 찾도록 한다. 두레 구성원들끼리 한 주, 한 달, 일 년 동안의 목표와 활동 방향을 정하고 스스로 실천한 뒤 얼마나 해냈는지, 전체 학급 회의 시간에 이야기를 나눈다. 두암중 1학년 1반은 소풍, 체육대회 등 각종 학교 행사를 두레를 중심으로 아이들 스스로 계획하고 운영하고 평가한다.

    광주/글·사진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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