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쪽 다리로 선 세상, 하늘은 푸르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4. 15:49

본문

728x90
한쪽 다리로 선 세상, 하늘은 푸르다
장애 이겨내고 밝은 세상 꿈꾸는 고등학생 조태희씨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권윤영(hooko) 기자   
▲ 조태희군
ⓒ2004 권윤영
추위가 한풀 꺾인 아침, 뺨을 스치는 바람이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기분 좋은 바람 소리에 올려다 본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오전 10시, 대전 관저고 정문에 도착하자 반갑게 맞는 얼굴 하나. 자리를 옮기기 위해 걷는 동안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는다. 소년은 왼쪽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다리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다쳤어요."

조태희(대전 관저고 1학년)군의 표정이 티 없이 맑다. 10여년의 세월이 태희군의 상처를 아물게 해준 것일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왼쪽 무릎 위에서부터 의족을 하고 있어요. 솔직히 억울한 마음도 드는 이유가 인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뺑소니 차에 치였거든요."

여름 방학을 코앞에 둔 일요일 아침, 초등학교 1학년이던 조군은 인도에서 파란 불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무언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승용차 한대가 인도에 서있던 태희군을 향해 돌진한 것이다.

사고가 있던 날은 일요일이었고 대전에 있는 종합병원에서는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여러 병원을 헤매다 서울까지 올라갔지만 다리는 많이 썩어 있었고 절단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료진의 진단을 받았다. 음주 운전에 뺑소니 차량이었던 그 '나쁜 어른'으로 인해 어린 소년은 지체장애 2급의 장애우가 됐다.

"아버지가 교도소 공무원이시거든요. 마침 그 뺑소니범이 잡혀 들어왔는데 울분을 많이 참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와 교도소에 찾아갔는데 무서운 마음에 화 한번 못 내고 어머니 뒤에 숨어있던 게 기억나네요. 지금 같으면 막 화냈을 텐데…."

사고 직후, 아직 뭘 모르던 어린 나이였기에 그는 다리가 불편해도 열심히 뛰어다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신나게 놀던 아이였다. 하지만 학교에 돌아와서는 이따금씩 힘든 일도 생겼다. 가끔씩 놀림을 당하거나 친구들과 싸우기라도 할라치면 결정적 한마디에 그는 서러운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그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쏟는 부모님을 지켜보는 일도 가슴 저리는 일이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회를 그는 가장 싫어했다. 모두들 1등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100m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나 아이들이 운동장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울컥 울음이 쏟아지려 했다. 운동회가 있는 날은 언제나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뜻 깊은 선생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운동회가 있는 그 날도 어김없이 조퇴하러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하지만 담임이었던 박춘규 선생님은 그에게 "자꾸 피하지 말아라"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너도 참여해라"고 그를 설득했고 용기를 갖게해 줬다.

체육복까지 구해다 주면서 참여하게끔 도와준 선생님들로 인해 그 뒤로는 체육대회에 빠지지 않았다. 친구들을 향한 힘찬 응원은 그의 담당이 됐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시절 사춘기를 겪으며 다시 한번 고비가 찾아왔다. 중 3으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에 호주로 여행을 갔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과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른 것이 아닌가. 우리 나라에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자주 느끼곤 했는데 호주 사람은 '아 다쳤구나'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어딜 가도 장애우 시설 역시 잘 돼 있었다.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저한테 자꾸 화를 내는 거예요. 더운데 집에서 왜 의족을 하고 있냐며 말이죠. 의족을 빼고 돌아다녀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호주에 다녀와서는 난 왜 이래야 하나 원망도 많이 했죠. 가장 큰 걱정은 누군가를 진짜로 좋아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어요."

태희군은 마음 고생이 심했던 사춘기를 넘기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힘들지 않다고 자신 있게 답한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을 만나 학교 생활이 너무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교내 봉사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다.

이제는 누군가 자신을 쳐다봐도 그는 무관심하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고 한번 스치면 그만일 사람이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학교에서 다친 이유를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그는 웃으며 얘기해 준다.

"엄마는 저를 걱정하시면서도 표현을 잘 안하세요.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시죠. 부모님께 항상 고맙고 앞으로 멋진 아들이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네요. 그리고 사랑한단 말도요."

여느 청소년처럼 게임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영화 보고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하는 조군은 "남들 눈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장애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는 의젓한 한마디를 남겼다. 그의 꿈은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공무원이 되는 것. 태희군이 두 다리로 서서 희망을 그리는 세상,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2004/03/04 오전 9:39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