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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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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이 시대,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철(pakchol) 기자   
ⓒ2004 느릿느릿 박철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는 유정원(柳正源)을 위한 묘비에 그의 의리를 칭찬하며 이렇게 썼다고 한다.

"선비는 궁지에 섰을 때야말로 그 절개가 나타나는 법이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마음에도 없이 서로 담소하고 웃으면서도, 터럭만한 작은 이해관계에 당면하면 전혀 낯선 사람과 같이 행동하며, 상대방이 함정에 빠졌을 때 손을 내밀어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대방을 밀어 넣고 돌을 던지려는 자들뿐이다."


이 이야기는 결코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올 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행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자기 얼굴에는 잔뜩 똥칠을 하고도 창피한 줄 모르고, 속에는 늑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가장 고상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위장을 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어떻게 하든 상대방에 흠집을 내서 상대방이 피를 철철 흘리면 넘어지게 하기 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 용을 쓰고 있다.

상대방이 넘어져야 내가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다정했던 동지가 오늘 와서 철천지원수가 되어 칼을 들이대고 있다. 모두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도 필요한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예수님을 로마군에 팔아넘긴 유다, 바로 전날까지 충성을 맹세했던 베드로, 모두 예수께서 아끼는 제자들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누군가가 의를 위하여 희생하는 미담에는 감동을 느끼면서도, 막상 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는 의리나 대의명분보다는 이해관계 쪽으로 향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속성인 모양이다.

고생스런 성경보다는 편리한 세상의 가르침에 쉽게 빠져들고, 도움과 희생을 필요로 하는 곳보다는 화려함과 이익이 있는 곳에 관심이 쏠린다.

ⓒ2004 느릿느릿 박철
인생의 즐거움을 우직한 삶에서 찾고자 했던 소박한 마음들이 어느새 세상적인 입신양명 쪽으로 기울어지는 비애를 느끼는 동시에 문득 변질된 자신에 대한 배신감도 맛보게 된다. 순수와 진실이 변절하고 말았다. 인간의 순수와 진실이 일그러지고 파손되면 사회도 덩달아 일그러지고 사람의 모습도 고약하게 된다. 더러운 세상, 더러운 사람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하는데, 이때 더럽다는 말은 때가 끼었다는 말이고, 이 말은 바로 순수와 진실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순수와 진실을 잃으면 모든 인간성을 아울러 다 잃는다. 이와 같이 순수와 진실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다. 순수와 진실이라는 바탕이 있어야만 인간의 정신이 성장을 하고, 행복할 수 있고, 행복을 줄 수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의로움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순수와 진실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와 같이 순수와 진실은 중대한 가치인데도, 수 천 년 계속된 인간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순수와 진실은 어디 가도 무시당하고 짓밟혀 왔다. 그럴듯한 얼굴과 옷차림, 학식과 사회적 지위로 겉을 잘 꾸민 사람이 인정받고 있다. 그 속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이것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이 없어서 내면적 가치인 순수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외면적인 것으로 인간을 평가하는데서 생기는 일이다.

ⓒ2004 느릿느릿 박철
사람이 된 사람은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외면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외면을 보지 않고 그의 내면을 본다. 그래서 인간 내면에 들어 있는 순수와 진실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사람 못된 것들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이 없다. 그러므로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순수와 진실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눈이 없게 된다. 때가 낀 눈, 부서진 양심, 자기 이익밖에 모르는 이성은 물질과 지식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인간은 결코 사람을 바르게 볼 수 없다. 이런 인간들의 눈에는 진리도 악마로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님은 당시의 지식인과 부유한 이들에게 대부분 배척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사람을 바르게 보는 게 아니고 오히려 사람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수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거대한 종교권력과 정치권력, 그리고 그 권력자들이 가진 모든 것을 쓰레기로 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았던 것이 아니고 보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권력과 권력자가 가진 모든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그들만이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죽는 것이 두려워서 그들이 가진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악한 인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악의 도구를 가지고 악을 행하면서도, 겉으로는 성자처럼 행세한다.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도 했고, '양가죽을 쓴 늑대'라고도 하였다. 예수는 이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진리를 전할 수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악령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와 권력이 절대 최고의 가치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2004 박철
그래서 예수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장)고 하였다. 여기서 새 술은 예수께서 전하시는 새로운 진리이고, 새 부대는 소금에 절여 있듯 세속적 가치에 절여 있는 사람이 아닌, 이들과 다른 새로운 사람을 말한다. 이 새로운 사람이 바로 순수와 진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순수와 진실을 가진 이는 그 시대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진리는 순수와 진실 속에만 담기는 것이다. 진리는 다른 곳에 담기지 않는다. 순수와 진실이 없는 이에게 진리를 말하면, 그 진리는 변질되어 버리고 그 진리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절대로 진리는 순수와 진실 이외의 것에는 담기지 않는다. 이들이 다음에 진리를 가지게 되면, 천국에 갈 사람들이다. 천국에 가는 것을 기독교 교리로 말하면 구원이라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순수와 진실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하고 학식이 없는 것이 순수와 진실을 지키게 한다. 재물과 지식이 순수와 진실을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학식 없는 것이 가치 있다. 다시 말하면 순수성과 진실성을 재물과 지식 때문에 잃었다면 그 재물과 지식은 가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재물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순박함을 잃지 않았다면 그 재물과 지식은 가치 있다. 그러나 재물과 지식을 중요시하여 챙기고 내세우면, 그 재물과 지식은 반드시 순박함을 잃게 한다. 진리를 추구하면 재물(財物)을 챙기지 않게 되고, 지식은 하위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할수록 순박하게 된다. 순박함을 잃으면 인간성을 다 잃은 것이므로 재물과 지식은 가지면 가질수록 피해만 끼치게 된다. 그런고로 가난하고 학식 없으면서 순박한 것이 가치 있다.

ⓒ2004 느릿느릿 박철
타락이란 순수와 진실을 잃고 순박함, 소박함을 잃는 것이다. 순박함, 소박함이 천국에 가는 기본조건이다. 이 자격자는 천국에 가는 배를 탄다. 이 배(Ship)가 진리다. 이런 이유로 예수께서 순수하고 진실한 이들은 받들고 그들과 사신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진실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마가 10장). 오늘의 우리사회에도 교회에도 순수와 진실을 극소수다. 그러면서 말로만 '주여! 주여!' 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이들의 신앙은 허구다.

이 시대, 기대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군인가? 이름하여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돼야 할텐데 말만 앞서는 것은 아닌가.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정호승 詩.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박철 기자는 강화 교동섬에서 사는 목사이며 시인이다.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전국회장을 역임했으며 20년 가까이 농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신어림)과 최근 출간한 산문집 <시골목사의 느릿느릿이야기>(나무생각)등이 있다. 현재 <느릿느릿 이야기>(http://slowslow.org)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며, ‘느릿느릿’의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있다.

2004/02/17 오전 6:4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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