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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수의 곡학아세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2. 1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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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인위적 실수’ ? 황교수의 곡학아세
김용철의법과세상
▲ 김용철 기획위원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하자, 노한 백성들은 왜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궁궐에 불을 놓았다. 수천년 왕정을 거친 백성이었는데도, 해방 직후 좌우대결은 심했지만 왕정복고의 목소리는 없었다. 백성을 배신하고 망국을 초래한 무능한 왕조에 대해 한없이 실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50년 ‘서울을 사수한다’는 육성방송을 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대전에 도망가 있었고, 명령에 따라 한강다리를 폭파한 군인은 총살됐다.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은 ‘시내 진입을 하지 않는다’고 방송한 뒤 비무장시민들을 무차별 살상하며 기습진압작전을 감행했다. 이후 통수권자가 된 전두환 장군은 5년 동안 무려 1조원대의 뇌물을 수금한 것이 드러났다.

 

권력자들에게 한없이 배신당해온 국민은 그들에게 더 이상 실망할 일도 분노할 일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과학자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엊그제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기자회견을 하며 ‘인위적 실수’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다. 정치가나 외교관이라면 모를까, 과학자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외교적 질병’이란 외교관이 불편한 자리를 피할 때 흔히 병을 칭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상으로는 관행적으로 용인되는 일이라 이를 두고 거짓말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30대에 주검찰총장을 거쳐 40대에 미국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이 어린 인턴사원과 불륜을 시인할 때 ‘부적절한 관계’라는 절묘한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정치인이자 변호사였다.

 

과학자인 황 교수로서는 “욕심이 과한 나머지 논문조작이라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시인했어야 했다. 또 다른 사람에 대해 수사 요청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검찰에 나가 범행을 신고해야 했다. 그나마 그것이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은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줄기세포의 유무를 떠나 ‘인위적 실수’로, 세계를 상대로 논문을 조작하여 온 백성을 부끄럽게 하고, 국가신인도 추락으로 막대한 국익 상실을 초래하고, 수백억원의 국고를 우연히 개집에서 날아든 일개 곰팡이 때문에 날린 그는, 그의 고백대로라면 희대의 사기범(인위적)이거나 세기의 과실범(실수)임에 틀림없다.

 

범죄수사가 직무인 검사가 기업인인 양 경제를 생각하고 기업인은 정치인인 양 나라 일을 걱정하더니 마침내 과학자마저도 그 곡학아세가 정치인인지 사기꾼인지 잘 모를 정도가 됐다. 우울하다.




김용철 변호사 kyc0327@hani.co.kr

 

 

애국주의 광풍 편승 ‘신문지로 진실 덮기’
[‘줄기세포’ 파문 확산] 본질 외면한 언론보도
김규원 기자 윤영미 기자
▲ 여성민우회·언론개혁시민연대·불교언론대책위·한국언론정보학회 등 언론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14일 오전 서울 언론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신학림(맨 오른쪽)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란에 대한 올바른 언론 보도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호기자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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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황우석 사건은 한국 사회의 여러 질곡을 쏟아냈듯 언론 보도의 병폐도 한꺼번에 드러냈다. 언론 보도의 가장 중대한 문제점은 이번 사건의 본질과 진실에 대한 추구를 소홀히 했거나 오히려 진실을 덮으려 했다는 데 있다.

 

‘조선’ ‘YTN‘ 등 보수언론, 취재윤리 보도등 ‘물타기’
‘프레시안’, ‘PD수첩 녹취록 입수 ‘사진 불리기’ 폭로

 

이를테면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 6일 4면에 “황 교수 휘청하는 사이…‘세계 첫 논문 일본에 선수 뺏겨’”, 지난 8일 1면엔 “섀튼 교수팀 파견 연구원, 미 영주권 신청 움직임” 기사를 썼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황우석 교수팀의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수립의 진실성이라는 점에서 벗어난 것이며, 그런 진실에 대한 추구를 오히려 방해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기사들은 오보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본질·진실 가리기 보도는 방송에서도 이어졌다. 뉴스채널 와이티엔은 지난 4일 피츠버그대학에 있는 김선종 연구원을 단독 인터뷰해 “피디수첩이 ‘황 교수는 다음 주 구속될 것이며, 논문은 취소될 것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신원 보장을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취재 윤리와 관련한 이런 보도는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와이티엔은 논쟁거리인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가 진실인지, 문제점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취재했으며, 김 연구원의 거의 일방적인 진술을 듣는 형태로 취재함으로써 취재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이에 대해 홍상표 와이티엔 보도국장은 “현재 <피디수첩>의 보도가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취재가 부족했던 점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수 언론과 일부 방송사가 진실에 대한 추구가 아닌, 취재 윤리 비판이나 황우석 감싸기에 몰두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언론을 포함해 국민 다수가 진실을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진실을 두려워했다”며, “이것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중대하고 위험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진실에 대면하고자 하는 욕구나 논리가 사그라든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애국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일제 때부터 우리에게 내면화한 애국주의 때문에 한 황우석 지지에서는 보수 언론을 포함한 다수 언론들로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는 “애국주의 물결 외에도 취재 윤리 위반이라는 큰 실수를 한 피디수첩쪽의 문제도 언론들이 진실을 추구하는 데 위축될 만한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언론 보도 과정에서 또 하나 드러난 특징은 황우석을 놓고 일종의 ‘편가르기’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동아일보> 7일 사설 ‘삼성·황우석 때리기로 일본 돕는 사람들’에서 황우석·삼성을 비판하는 일이 “결국 우리나라를 가난으로 몰고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부역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황우석·삼성에 대한 찬반으로 사회를 나누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일부 언론의 이런 ‘편가르기’ 보도 태도는 보수 신문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방송간의 대립이라는 또다른 원인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는 “이번에 피디수첩 보도에 대한 보수 언론의 비판이 많았던 것에는 이념적 대립, 시장에서의 경쟁 등을 둘러싼 보수 신문과 방송간의 갈등도 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 한국 언론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이용성 한서대 교수(지역신문발전위원)는 “애국주의와 진실 앞에서 기자들이 어떤 윤리와 태도로 취재·보도해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하고 성찰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과학 문제를 다루는 기자들의 전문성은 정확한 과학 보도를 위해 필수적인 덕목임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윤영미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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