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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왜냐면 | 등록 2004.03.17(수) 19:22 |
그래도 민주주의는 전진한다 2004년 3월12일은 한국 정치사에서 치욕스러운 날이자 희망의 날이었다. 대통령 탄핵을 통해 구시대 정치가 자신의 낡은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한 날이었고, 더불어 새로운 정치로 도약할 계기를 마련해준 날이었다. 탄핵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그동안 구시대 정치 속에서 억압되어 있던 민주주의의 본질을 깨닫게 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것은 국민이 주권자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헌법의 정신을 후퇴시킨 사건이었다. 국회는 현행법에 의거하여 다수결에 의해 대통령을 탄핵했다. 하지만 그것은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구시대의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새로운 대통령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낡은 대표자들이 새로운 대표자를 탄핵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국민의 뜻을 대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거슬러 국민 다수의 뜻으로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몰아냄으로써 간접결정(의회)이 직접결정(대통령)을 탄핵한 사건이었다. 의회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에 종속되어야 하며, 주권자인 국민에 종속돼야 한다. 말하자면 의회의 결정은 끊임없이 국민의 뜻에 의해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들은 마치 자신들의 뜻이 국민의 뜻인 양 행동했다. 만약 국민들의 뜻이 감정적인 것이라면 의원들은 이성적, 합리적 토론을 통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대의제도의 중요한 의미다. 그런데 탄핵 결정과정은 이런 절차를 무시했다.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결정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최종 결정 이전에 국회에서 찬반토론을 활발하게 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역으로 국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고 감정적으로 탄핵을 결정했다. 결국 탄핵은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국민들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던 셈이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대다수 의원들은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힘든 약한 정치적 명분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물론 대통령 측근비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탄핵을 정당화하는 것은 자신들의 과거를 모르는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민생파탄은 또 무엇인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각종 개혁입법들을 후퇴시켜 민생의 안정을 가로막은 자들은 바로 그들이 아닌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다수 국민이 원해서 뽑은 대통령을 몰아낸다는 것은 국회가 할 짓이 아니다. 만약 탄핵이 가능한 의원 수를 가진 그들이 정정당당했다면, 입법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을 실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반개혁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각종 개혁입법의 발목잡기가 힘들어지자 마침내 탄핵으로 승부수를 띄우려 한 것이 아닌가 선거법 위반은 더더구나 납득하기 힘든 명분이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며, 민주적 정당정치에서 대통령은 특정한 정당에 소속되어 특정한 이념과 정책을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내세우고 자신이 속해 있거나 지지하는 정당을 밝히는 것은 이념과 정책 대결을 지향하는 선진적 정당정치에서는 그야말로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정부의 조직을 동원하여 특정한 정당 후보들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거 게임의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켜야 할 것은 이념적, 정책적 중립성이 아니라 절차적 중립성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결코 사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정책 대결을 위해 장려돼야 할 사항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탄핵은 구시대적인 낡은 정치문화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정치문화의 싹을 잘라버린 사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구시대 정치문화를 도려내고 새로운 정치문화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탄핵 정국은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있으며, 잠재돼 있던 민주주의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수 국민들의 탄핵 반대 의견은 내심 탄핵을 통한 지역주의적 동원을 기대했던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낡은 정치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이것은 구시대 정치로부터 새로운 정치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고, 정치문화를 발전시킬 것이다. 우선 다가오는 4·15 총선은 낡은 정치세력과 구시대 정치문화를 쓸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같이 국민의 의사를 좀더 잘 대표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요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이를 통해 진정한 이념대결과 정책대결이 가능한 선거문화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열린우리당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바로 이런 국민들의 기대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자기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들 역시 구시대 정치인이 될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여 열린우리당은 새로운 이념 및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을 비롯하여 다른 정당들과, 보수 대 진보, 신자유주의 대 복지국가 등과 같은 이념 및 정책 경쟁으로 선진 정치문화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구시대 국회의원들은 새로운 세대에게 새로운 정치를 물려주어야 할 역사적 의무를 저버렸고, 젊은 정치인들까지 이에 동조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의회민주주의의 후퇴일 뿐 진정한 민주주의의 후퇴일 수는 없다. 그들은 낡은 정치의 관행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다수 국민의 뜻을 저버린 채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스스로의 무덤을 팠다. 국회의장은 탄핵의 현장을 마무리하면서 “민주주의는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계속 전진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전진할 것이다. 이미 다수 국민들은 주권자의 이름으로 구시대 정치인들을 탄핵하면서 민주주의를 전진시키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손에 의해 계속 전진할 것이다.” 정태석/전북대 사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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