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윤달 수의, 부모님도 진짜 기쁘실까?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25. 14:21

본문

728x90
윤달 수의, 부모님도 진짜 기쁘실까?
수의는 고사하고 영정사진도 마련하지 못한 며느리의 변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혜원(happy4) 기자   
요즘 홈쇼핑 방송들은 몇 년만에 돌아오는 윤달을 맞아 특수가 예상되는 윤달수의 판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도 윤달 수의에 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작게는 100여만원, 크게는 400만원이 넘는 윤달수의를 광고하는 쇼핑 호스트들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수의를 장만해 드리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며 효도를 다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아직까지도 수의를 마련하지 못한 시청자들이 마치 불효라도 저지르고 있다는 듯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바로 효심을 자극해서 판매량을 올리려는 속셈이죠.

고도의 판매 전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약간은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시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값비싼 수의를 장만하려면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을 떠나 저로서는 도무지 살아계신 부모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부모의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자식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엄마들은 아이와의 기쁜 만남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출산 준비물을 준비합니다. 기저귀 감을 끊어다 적당한 크기로 마름질을 하고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잘 휘감친 후에 몇 번을 삶습니다. 이 모든 번거로운 과정 하나 하나가 모두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즐거운 노동입니다.

그 반대로 부모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일은 그 어느 자식에게도 결코 즐거울 리 없습니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 사진사를 보고 기왕이면 영정 사진도 고인을 추억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남겨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상을 가 보아도 미리 준비한 듯한 깔끔한 영정 사진에는 자꾸 눈이 가지만 주민등록증 사진이나 스냅 사진을 확대해 급하게 세워 놓은 사진은 왠지 고인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 같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시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하나 마련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께 도무지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었습니다.

눈치 빠르신 어머니는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면 무엇에 쓸 사진인지 금방 알아차리실 것이 뻔한데…. 며느리가 시어머니 손을 잡고 당신의 장례식장에 놓일 사진을 찍으러 가는 모양을 연상하니 마음이 썩 편치 않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 마치 '저승 사람'이라도 된 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향해 앉아계실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요즘처럼 혈색도 좋으실 때 예쁘게 사진을 찍어두면 나중에라도 어머니의 고운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맴돌고 있기도 합니다.

시어미니 영정 사진을 찍어 두려고 십수년을 망설였지만...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칠순 때부터 찍어두려고 했던 사진을 여든다섯이 되신 지금까지도 못 찍고 있습니다. 툭하면 "얼른 갈 데로 가야지"라는 말을 버릇처럼 일삼는 어머니지만 막상 당신의 죽음을 자식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면 어떠실까요? 정말 수의를 판매하는 홈쇼핑의 광고 모델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실까요?

어쩌면 자식들이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서글픔을 느끼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분명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텐데…. 그런 이유로 굳이 당신의 죽음을 환기시켜드리고 싶지 않은 것이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칠순 때도 그랬지만 십오 년이 흘러 여든다섯이 되신 지금도 저는 우리 어머니의 장례를 위한 준비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늘 그렇게 우리 곁에 오래도록 함께 계실 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저는 어머니께 함부로 농도 건네고 말도 안 되는 떼도 쓰고 제멋대로 골을 부리고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봐도 그저 데면데면한 고부간인 데다가 살가운 구석이라곤 찾아 보기 어려운 며느리인 제가 아직은 어머니를 떼어내고 싶지 않은 것은 또 무슨 얄궂은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2004/03/24 오후 11:25
ⓒ 2004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