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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상대보단 성역 허물고 싶었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3. 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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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상대보단 성역 허물고 싶었다”


△ 2년 반 동안 열과 성을 바쳤던 〈피디수첩〉을 떠나는 최진용 부장은 “친일인명사전 예산이 국회에서 삭감됐을 때 이를 선도하지 못해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피디수첩’떠난 최진용

최근 얼마 전까지 방송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희한한 팝업창 하나가 있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진행하던 최진용 부장이 최근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 받은 것은 방송사 쪽의 정규인사에 따른 것으로 방송위원회와는 무관하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위원회가 개별 방송사의 인사를 두고 해명까지 하는 이례적 풍경이 벌어진 데는 까닭이 있다. 최근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친일파2’ 편을 두고 〈피디수첩〉에 경고 조처를 내린데다 얼마 되지 않아 최 부장의 인사까지 나자 “탄압 아니냐”는 네티즌의 의견이 방송위 게시판에 폭주했기 때문이다. 최 부장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민감한 시기에 인사가 있다 보니 이런저런 오해를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할 만큼 했고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취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그의 진술은 겸양일 수 있다. 시사교양국 안에 최 부장처럼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거대 담론을 깨뜨려야 한다는 쪽과 상대적으로 일단 해결 가능하고 대안 제시가 가능한 문제부터 건드려야 한다는 쪽의 두 가지 의견이 존재해왔다는 점과, 그가 자신의 인사가 날 것이란 얘기를 바로 전날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쨌건 그는 “2년반 동안 열과 성을 다하며 정도 들고 시청자들이 아껴준 프로그램이라 아쉬움은 남지만 새로 온 송일준 책임피디와 남은 멤버들이 잘 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사실 그가 부장을 맡은 동안 피디수첩은 굵직한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내며 ‘소신있는 피디 저널리즘’의 길을 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천 여중생(효순·미선) 장갑차 압사사건 때 세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루며 촛불시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지난해 초에는 국정원 등 4대 권부를 해부하는 연작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가 하면 방송에서는 거의 최초로 삼성그룹의 무노조 신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올초에는 지도층의 일관된 반개혁 전선을 해부하면서 기득권층의 혼맥도를 만들고 공개해 수많은 인쇄 매체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또 친일인명사전과 친일진상규명법에 보인 제작진의 관심 또한 각별했다. 그는 “친일인명사전 예산이 국회에서 삭감됐는데도 당시 막강한 매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선도하지 못해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만한 상대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구조화되고 큰 힘을 발휘하는 거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팀원들과 다짐했다”며 “한번 건드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성역들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해왔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익숙하고 만만한 것들, 접하기 쉬운 것들에만 함몰돼 있다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악의 세력들은 계속 존속할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알아야 할 것에도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최 부장은 그동안 프로그램과 관련해 이러저런 외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피디수첩〉도 내공과 저항력을 길러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경고 조처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력하게 비난했다. “‘친일파’ 편은 선거방송심의위의 심의 대상이 아닌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부 심의위원들이 심의를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의해 한나라당 입장을 대변한 게 아닌가하고 느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문화방송은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을 검토한 결과 승산이 높다고 보고 조만간 소를 제기할 방침이다.

1985년 회사에 입사한 최 부장은 그동안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 〈인간시대〉 〈피자의 아침〉 등을 만들었고 평피디로 〈피디수첩〉에서 1년 동안 활약하기도 했다. 고3과 중1짜리 아들과 함께 여의도에 사는 그는 집이 가까워 “음주운전 안해서 좋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팀원들과 술을 많이 마셔서 몸은 많이 망가졌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교육비에 대해서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면서도 “안 시킬 수는 없어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피디가 아니라 아버지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최진용 부장은 친일파 문제에 여전히 많은 미련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청산해야할 역사다. 정치적으로 지금 해결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첫단추를 잘못 끼워 다시 단추를 끼워야 하는데, 그것이라도 지금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이야말로 〈피디수첩〉 제작진에게는 대장금의 50% 시청률에 해당하는 격려가 된다며 올 하반기쯤 중장기 다큐를 들고 다시 자신을 사랑해주는 시청자들을 찾겠노라고 전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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