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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는, 새순이 움트고 있잖아"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4. 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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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는, 새순이 움트고 있잖아"
감귤농원에 새 친구들이 이사왔어요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강임(kki0421) 기자   
지난 일요일 감귤농원에는 새 친구가 이사왔다. 그 새 친구는 키도 작고 이파리도 아주 연약한 어린 나무들이었다. 이파리가 넓적하고 키가 큰, 수령이 많은 감귤나무에 비하면, 이 새 친구들은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한라수목원에서 이사 온 그 친구들의 이름은 앵두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홍매화다.

ⓒ2004 김강임
"어! 이거 혹시 죽은 거 아니예요?"
검은 비닐 봉지에서 어린 나무를 꺼내는 순간 나는 놀랐다. 그 이유는 무슨 나무가 몽둥이처럼 이파리 하나 없이 막대기만 앙상하게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린 나무는 처량해 보였다.

"죽긴, 자세히 들여다 봐! 여기 새순이 움트고 있잖아?"
매사를 현미경으로 쳐다보는 것처럼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들여다 볼 줄 아는 남편은 이번에도 한치의 오차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과연 모과나무와 앵두나무, 홍매화 가지에는 아주 작은 새순이 움트고 있었다.

ⓒ2004 김강임
삽으로 흙 구덩이를 파고 있던 남편은 움트고 있는 새순이 행여 다칠까 봐 어린애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어린 묘목을 다루었다.

ⓒ2004 김강임
지난 토요일이었다. 한라수목원에서는 제주도청에서 마련한 '내 나무 갖기 운동 캠페인' 일환으로 도민들에게 나무 나누어 주기 행사를 개최했다. 물론 미리 인터넷으로 접수된 1천명만이 그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 행사에서 내가 받은 나무는 홍매화와 앵두나무, 모과나무였다. 사실 지난해 감귤 간벌 작업으로 감귤농원에 빈 공터가 많이 생겼는데 늘 그 빈자리만 보면 마음이 허전했다.

그런데 이 기회에 그 허전한 자리를 채우게 됐으니, 내 마음은 어느새 부자가 된 듯했다. 내 마음은 벌써부터 앵두나무와 모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릴 열매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볕이 따사롭게 쏟아지는 감귤농원의 감귤나무들은 새로 이사온 친구들에게 인사라도 하듯 손처럼 이파리를 흔들었다. 이들도 새 친구가 생겼다고 기뻐하는 것이다.

ⓒ2004 김강임
잔 뿌리와 긴 가지를 가위로 자르고 흙 구덩이를 파는 남편도 오랜만에 자기의 세계에서 해방이 된 듯 흙을 만졌다. 정말 오랜만에 만져 보는 흙은 보송보송 했다. 제주의 땅은 척박하다. 어디 그뿐인가. 조금만 땅을 파내도 돌멩이가 쏟아져 나와 제주도의 땅이 얼마나 척박하고 돌이 많은지를 실감케 한다.

흙 구덩이에 어린 나무를 묻고 흙을 덮었다. 그 다음 손으로 다지고 발로 꽁꽁 밟아 주었더니 나무는 금방 생명력이 있는 나무처럼 의젓해 보였다.

ⓒ2004 김강임
흙 속에 감춰진 뿌리는 또 다시 새 뿌리를 뻗고 새순을 틔울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이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감귤나무와 친구가 되어 에덴 동산을 이룰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에덴 동산을 생각하며 감귤농원을 에덴 동산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일, 다시 말해 자연을 훼방을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마음속으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햇빛은 새로 이사온 친구들에게 한없는 따스함을 보내고 있었다.

2004/03/31 오전 12:28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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