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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이 뭐길래? 미셸 콴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6. 2. 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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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이 뭐 길래?
[해외리포트] 미국 피겨스케이팅 3수생 미셸 콴의 경우
텍스트만보기   윤새라(tomos) 기자   
▲ 미 언론들은 미셸 콴 관련기사를 앞다퉈 소개했다.
통상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여자 피겨스케이팅. 인기도를 반증하듯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동계올림픽 막바지에 일정이 잡혀 있다. 4년 전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벌어진 동계올림픽의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자그마치 3천만이 넘는 미국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올해 토리노 올림픽의 '꽃'도 여자 피겨스케이팅이기는 마찬가지다. 21일~23일(현지시각), 강호 러시아와 미국이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일 예정이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10년간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얼굴이었던 미셸 콴(25)이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출전권을 받았지만 결국 중도포기한 것. 2월 12일, 올림픽 출전권을 자진 반납하겠다는 미셸 콴의 결정은 막 시작한 동계올림픽을 중계하던 미국에서 단연 가장 큰 올림픽 뉴스였다.

미국 피겨스케이팅의 얼굴, 미셸 콴

여기 한 소녀가 있다. 어렸을 때 이미,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될 불멸의 업적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던 야무진 여자 아이.

"어렸을 때 난 이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내가 죽고 나서 천 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이 날 기억할까? 금메달이 없다면… (기억되지 않겠죠)."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후, 위키피디아)

그 아이가 바로 중국 이민자의 딸로 캘리포니아 토랜스에서 태어난 미셸 콴이다. 그녀의 부모는 비틀스의 노래 '미셸'에서 그녀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미셸 콴이 1993년 성인 무대로 데뷔한 후 내온 성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미국 선수권대회에서 우승만 9차례고 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5번이나 거머쥐었다. 그런데 문제는 늘 올림픽이었다. 미셸 콴은 올림픽에만 나가면 작아졌다. 피겨스케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점프 때 실수가 잦았던 것.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첫 출전한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성적은 은메달, 두 번째 출전이었던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에서는 아예 한 계단 더 내려간 동메달에 그쳤다. 두 번 모두 미국에서는 금메달감이라고 추켜세웠던 터라 실망감은 더욱 컸다.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토리노 행

ⓒ 오마이뉴스
보통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세 명이다. 이들은 올림픽이 열리기 조금 전에 열리는 미국 선수권대회에서 1~3위에 입상한 선수들이다.

미셸 콴은 훌륭한 성적으로 미국 선수권대회를 거쳐 자력으로 떳떳하게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부상을 이유로 올해 1월에 열린 미국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미국 피겨스케이팅협회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

피치 못할 부상 때문에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으니 개별적으로 자신을 심사해서 출전권을 줄지 판단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1월 27일, 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2주 전쯤 미국 피겨스케이팅협회 위원들이 캘리포니아에서 미셸 콴의 모습을 지켜봤다. 심사위원들과 미셸 콴의 코치 및 가족 몇 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심사였다. 텔레비전 카메라 촬영도 허락되지 않았다.

미셸 콴은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 선보일 쇼트 프로그램과 롱 프로그램 두 종목을 한꺼번에 연달아 연기했고,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미셸 콴이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할 만한 몸 상태가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미국 선수권대회에서 3위로 입상한 에밀리 휴즈를 밀어내고 미셸 콴이 토리노행 막차를 타게 되었다.

미셸 콴의 토리노 행은 미국 스포츠계에서 논란거리가 됐다. 부상을 이유로 미국 선수권대회를 건너뛰어 놓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편법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얻어냈다는 비난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일반 팬들 중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미셸 콴이 이미 전성기를 지난 마당에 메달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그녀의 올림픽 집착 때문에 협회가 휘둘리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인디애나주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루이 로바는 "미국의 올림픽 출전권 한 장을 그냥 버리는 꼴"이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토리노에서 다시 뒤바뀐 운명

그런데 정작 문제는 토리노에서 터졌다. 미셸 콴은 일찌감치 토리노에 도착해 개막식에도 참가했다. 개막식에서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행진하는 그녀의 예쁜 얼굴과 환한 웃음은 미국 방송사의 단골 표적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첫 연습에 나선 미셸 콴은 점프를 시도하다가 연거푸 실패했다. 그냥 착지가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아예 얼음판에 나동그라진 것이다. 두 번째로 점프에 실패하고 엉덩방아까지 찧고 난 미셸 콴은 연습을 중단하고 링크 가장자리에 있는 측근에게로 가서 눈물을 보였다.

▲ 미셸 콴은 우여곡절 끝에 토리노 행 티켓을 얻어냈지만 연습에서 연이어 실수를 하자 출전권을 반납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연습 장면은 바로 미국으로 송출됐고 올림픽을 중계하는 NBC 방송사 해설가들은 미셸 콴의 상태를 염려했다. 향후 며칠간 미셸이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미셸 콴은 바로 그 다음날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다. 올림픽에서 자진 철수하기로. 연습 중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었고 자신의 몸이 '100%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출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탄원서를 내면서까지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불태웠던 때에 비하면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질문에 미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탄원서를 낼 때는 올림픽이 열릴 즈음해서는 내 몸이 100% 완벽해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내 몸은 100% 완벽하지 않다. 이런 데도 올림픽에 나가기에는 내가 올림픽을 너무나 존중한다. 나대신 제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선수에게 출전권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셸은 자신에 관한 뉴스로 다른 선수들이 올림픽에 집중하지 못하면 안 된다면서 다음 날 바로 집으로 떠났다. 한편 미셸이 반납한 출전권은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3등을 했던 17세 소녀 에밀리 휴즈에게 넘어갔다. 에밀리 휴즈는 2002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우승자 사라 휴즈의 여동생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아닌 자의 차이

매년 선수권대회를 통해 우승자를 배출하는 피겨스케이팅이지만 이는 올림픽 금메달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4년에 딱 한 번 있기에,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인고의 4년을 피나는 연습으로 채워야 하기에, 그래서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다. 때문인지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은 처녀 출전한 겁 없는 10대 소녀들의 차지가 되곤 했다. 1998년 우승자 타라 리핀스키(15)가 그랬고 2002년 금메달리스트 사라 휴즈(16)도 마찬가지다.

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금메달을 따면 홀가분하게 아마추어 시합을 떠난다. 그들에게는 이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명예와 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라 휴즈는 명성을 등에 업고 명문대 예일에 진학했고 다른 금메달리스트들도 대부분 프로로 전향해 미국 등지에서 투어쇼로 쉽게 돈을 번다.

바로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셸 콴은 지난 12년간 미국 피겨스케이팅의 얼굴이 됐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려는 야망이 그녀를 아마추어 판에 붙잡아 둔 동력이었다.

과연 4년 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미셸 콴이 다시 도전할까. 많은 사람들은 회의적으로 본다. 2010년이면 그녀의 나이 29세. 운동선수로서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역대 올림픽 2관왕으로 미국 방송사의 피겨 스케이팅 해설을 하는 딕 버튼은 다르게 생각한다.

"알 수 없다. 미셸이 나이가 많아서 올림픽에 더는 출전하지 못 할 거라는 관측이 어떻게 생겨난 건지 모르겠다. 30세가 넘어서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처녀 출전한 후 두 번이나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도 있다. 미셸이라고 못 하란 법이 어디 있나."

미셸 콴 역시 토리노를 떠나기 전 엔비씨(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2010년 올림픽 출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지금은 알 수 없다'는 말로 정확한 답을 회피해 여운을 남겼다.

도대체 올림픽 금메달이 무엇이기에?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올림픽의 진정한 정신은 금메달을 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고. 그 말을 정말로 믿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천년이 지난 후에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로 기억되기를 꿈꿨던 미셸은 이제 영 잡히지 않는 금메달을 가슴에 묻고 올림픽의 본령을 되새기며 아픔을 위로하는 듯하다.

미국 올림픽 조직위원회장인 피터 우베로스는 말한다. "미셸 콴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미국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큰 의미를 지니는 선수다. 그녀는 늘 리더였고, 우아했으며 그녀는 미국에서 자라나는 어린 선수들을 챙긴다."

'미셸 콴이 금메달을 결국 못 딴다고 해도 그녀의 업적은 그녀가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그녀가 이룬 것들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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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0 15:16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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