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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든 김밥 드셔보셨나요?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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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든 김밥 드셔보셨나요?
어묵과 단무지, 그리고 멸치가 들어있던 어머니의 김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순희(sinchoon07) 기자   
어제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이틀 동안 하늘은 잔뜩 찌푸렸지요.

딸아이의 학교에서는 지난 주에 소풍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전날 무심한 하늘이 비를 뿌렸습니다. 결국 소풍은 한 주 뒤로 연기되었습니다.

행여 이번에는 괜찮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서 지난 휴일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연일 내릴 것 같다고 하더군요. 딸아이는 그 예보를 접하고는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태연한 척 "또 미루면 되겠지요" 하더군요. 속이 있어서 그런 소릴 했는지 아니면 무심코 던진 것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도 비가 빨리 그쳐서 화창한 봄 소풍을 갈 수 있길 내심 기도하는 듯했습니다.

다행이도 4일 오늘 아침, 하늘이 흐리긴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딸아이보다 제가 더 기분이 좋아져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딸아이를 깨워서 창밖 하늘을 보게 했습니다. 우산 들고 소풍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 딸아이의 마음이 하늘로 전해져서일까요?

아무튼 이른 새벽부터 딸아이가 먹을 김밥을 정성스레 쌌습니다. 끓인 보리차에 얼음도 몇 개 띄우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과자도 넣었습니다. 돋보기며 돗자리까지 챙겨 작은 가방에 한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평소에도 김밥을 즐겨먹습니다. 그래서인지 김밥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먼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맛소금으로 간을 했습니다. 거기에다 이미 사 놓은 몇 가지의 재료들을 넣어 돌돌 말아 놓으니 맛있는 김밥이 완성됐습니다.

그렇게 김밥을 몇 줄 말다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났습니다. 저의 학교 생활에서 소풍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평소에 먹기 힘든 김밥을 그나마 먹어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보다 행복한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학교 때까지 어머니가 싸 주신 김밥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아서 장날이 아니면 김밥 속 재료들을 사기가 힘들었습니다. 일년 내내 농사일과 밭일로 그리고 집안일로 바쁘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장날이 되어야만 농사일에서 벗어나서 쉬엄쉬엄 장을 보실 수 있었습니다.

소풍을 앞둔 때면 어머니는 미리 장날에서 어묵과 치자로 물들인 노란 단무지를 사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재료의 색상을 갖추기 위해 밭에 가셔서 정구지(부추)도 베어 오셨습니다.

어머니 특유의 굵직한 틀에 맞춰 밥을 깔고 단무지와 어묵을 놓고 그 위에다 정구지 삶은 것을 몇 가닥 척하니 걸쳐서 둘둘 맙니다. 그 재료 속에 빠트릴 수 없었던 재료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머리를 손질하지 않은 채 고추장에 볶은 멸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멸치를 김밥 속으로 넣어 말았습니다.

그렇게 말고 난 어머니의 김밥은 참으로 궁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 옆에서 앉아 김밥 끝 부분을 얻어먹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저는 얼른 어머니가 김밥을 썰어주시길 바랬습니다. 행여나 그 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그 긴 김밥을 통째로 입속에 넣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의 김밥이 최고로 맛있고 예뻤으며 다른 그 어떤 김밥보다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를 가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사춘기 시절이어서 일까요? 종이 도시락 안에 들어 있던 어머니의 멸치 김밥은 차츰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맏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싸온 김밥에는 계란도 들어 있고, 귀한 햄도 들어 있었습니다. 정구지 대신 시금치를 넣었고, 색깔의 빛을 내는 여러 가지 재료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김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밥을 썬 단면에는 멸치 머리가 삐져 나와 있었고, 멸치를 볶은 고추장이 밥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단무지의 노란 색까지 합쳐져 밥은 온통 붉고 노란 빛이었습니다. 한입에 먹기에는 너무 굵었던 그 김밥이 너무 창피해 차마 도시락 뚜껑을 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만치서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서 김밥을 먹었습니다.

그 때는 젊은 어머니를 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혼자 먹고 있는 저에게 친구들은 자기들 김밥을 건네며 제 김밥도 하나 집어 먹었습니다. 자기들이 싸온 김밥과는 조금 달랐겠지만 친구들은 맛있게 먹어 줬습니다.

겉이 뭐 중요할까 생각하면서도 그때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김밥 두개를 먹을 때 저는 하나밖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어머니가 싸 준 김밥이 두툼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김밥은 종이 도시락에 두줄 정도만 썰어 넣으면 꽉 찰 정도로 투박했습니다.

친구들의 김밥은 1단도 아니었고 2단 내지 3단이나 되는 얇은, 보기에도 좋은 그런 김밥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비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김밥이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작은언니가 김밥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는 다른 친구들이 싸오는 그런 김밥을 1단도 아닌 2단씩 올려 아주 보기 좋게 싸주었지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후가 됐습니다. 흐렸던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집에 들어온 딸아이는 신나게 놀아서인지 얼굴 표정이 밝습니다. 딸아이는 엄마가 정성스레 싸 준 김밥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그 순간, 섭섭함이 들었습니다. 새벽부터 신경을 써서 분주하게 싸 준 도시락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딸아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그 옛날 어머니의 김밥을 창피하게 여겨 몇 개씩이나 남겼던 저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멸치 넣은 김밥에 온통 밥 전체를 노란 물로 만들었던 단무지를 괜히 탓하면서 어머니를 원망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김밥,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김밥이 오늘따라 유난히 먹고 싶어집니다.

아주 가끔씩 김밥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서 고향에 내려갑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제가 싼 김밥을 맛있게 드십니다. 한번은 아껴서 드신다면서 조금씩 드시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를 위한 맛있는 김밥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때의 멸치김밥보다 맛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어머니, 어쨌든 어머니의 그 김밥은 최고였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터진 김밥 몇 개를 주워 먹던 그때가 정말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깨소금 듬뿍 뿌려주셨던 고소한 멸치 김밥을 저 역시 언제 한번 다시 먹어볼 수 있을련지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2004/05/04 오후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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