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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만난 여드름 소녀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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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만난 여드름 소녀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만든 귀한 손님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한나영(azurefall) 기자   
누가 바람을 보았다고 말하는가. 바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흩날리는 머리칼에서 바람의 흔적을 보고, 귓가에 들리는 서늘한 소리에서 바람을 들을 뿐이다.

누가 세월을 보았다고 말하는가. 세월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어난 아기의 옹알이에서 세월의 흐름을 보고, 늘어난 키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뿐이다. 그렇게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인생의 추억은 만들어진다.

'추억이란 세월의 강심 아래로 가라앉은 회수 불능의 시간 보석'
이청준은 그의 산문집 <야윈 젖가슴>에서 '추억'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 딸이 만든 플래카드는 손님이 오는 날 현관에 붙는다
ⓒ2004 한나영
추억을 말하고 그리워하는 나, '회수 불능의 시간 보석'이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가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 가볍지 않은 세월의 더께가 내게도 서서히 쌓여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이 어린 사람은 추억이라는 말을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지금 - 지금의 사람, 지금의 일 - 만으로도 그의 머릿속은 충만하고 그의 입은 분주하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떨궈진 추억은 그래서 결코 나이 어린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바로 그 추억과 관련하여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7년 만에 우리집을 방문하게 된 '귀한 손님'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집을 치우면서 '손님맞이용 플래카드(?)'에 이 날의 주인공인 '미래양'을 덧붙여 현관 밖에 걸어두었다.

▲ 귀한 손님에게 줄 선물
ⓒ2004 한나영
귀한 손님이라고 좀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 귀한 손님은 '중1 소녀'다. 작은 딸의 유치원 동창으로 7년 만에 찾아오는 반가운 얼굴이다. 내성적인 성격의 딸은 제 엄마라도 오지랖이 넓었으면 다른 엄마와의 교류를 통해 친구를 더 사귈 수도 있었으련만 그렇지 못해 혼자서 조용히 유치원에 다녔다.

그 때 딸의 친구로서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한 아이가 바로 미래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눈 앞에서 입증이라도 하듯, 두 아이의 노는 모습은 너무나 정적(靜的)이어서 목소리 하나 문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 두 소녀의 추억거리는 이렇듯 별 대수로울 게 없는 밋밋함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 때를 추억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내 마음은 얼마나 설레고 기쁘던지…. 이 다음에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하면 더 긴장되고 설렐 테지만 말이다.

▲ 유치원 시절, 미래와 함께 송편을 빚고 있다
ⓒ2004 한나영
▲ 예쁜 중학생이 된 두 소녀
ⓒ2004 한나영
















잠시 옛 추억에 젖어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어렸을 때 보았던 꼬마 숙녀가 어느 새 단발머리 소녀로 변했다. 가슴도 봉긋 나왔고 이마에 여드름도 송송하다. 안경이 어느 새 코에 걸렸고 고사리같은 손도 제법 커졌다. 나는 그대로(?)라고 우기고 싶은데 왜 아이들은 벌써 소녀가 되고, 아가씨가 되는지…. 쏜살 같은 세월의 흔적을 보며 새삼 시간의 무게를 느껴본 하루였다.

2004/05/10 오전 7:31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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