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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자연의 품에 안겼습니다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5. 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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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자연의 품에 안겼습니다
<포토에세이>수채화 같은 봄 풍경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4 김민수
이양하 님의 <신록예찬>이라는 맛깔 나는 글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 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봄 중에서도 오월을 가장 아름답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오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감할 수 있는 산행을 했습니다.

▲ 물찻오름
ⓒ2004 김민수
개구리들과 새들의 노랫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며 만들어 내는 교향악이 들려오는 깊은 산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녹조 현상인가 했습니다. 그러나 녹조 현상이 아니라 작은 호수를 온전히 감싸고 있는 연록의 나뭇잎들이 물들여 놓은 흔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마치 연록의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여 붓 한자루와 도화지만 있으면 '봄'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멋지게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봄이 되면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이 새순을 냅니다. 물론 그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활엽수들의 연하고 아릿한 아름다움 만큼 부드럽지는 못합니다. 봄의 나무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까닭은 지난 겨울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목으로 겨울을 난 후 언제 봄이 오려나 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 나무는 연한 녹색의 이파리를 내보입니다. 그러다 화선지에 떨어진 연록의 수채화 물감이 번져가듯이 어느 날 순식간에 들과 산을 연록색으로 물들입니다.

ⓒ2004 김민수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 새로워진다는 것은 이렇게 버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버려야 할 것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으면 결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물수제비를 떠 봅니다. 유년의 시절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이면 논에 들어가 우렁이도 잡고 동그란 돌을 집어 물수제비를 떴습니다. 작은 돌이 물 위를 유영하면서 저편 논두렁까지 가면 얼마나 통쾌하던지 어깨가 뻐근할 정도로 물수제비를 뜨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신록의 향기며 풍경이 너무 좋다며 조금만 더 있다 가자고 합니다. 점점 자연의 맛을 알아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2004 김민수
신록의 나무 아래서 나뭇잎의 색을 닮은 물을 바라봅니다. 제 마음도 저렇게 푸르게 물들어 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래서 오월이 계절의 여왕이고, 그렇게 신록예찬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대학 시절에는 5월만 되면 눈이 아팠습니다. 최루가스로 뒤범벅이 된 교정에서 작은 돌멩이에 분노를 담아 던졌습니다. 그 때에는 계절의 아름다움, 특별히 오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만 같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오월의 분노도 아름다웠습니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이제 다시는 그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물에 비친 풍경
ⓒ2004 김민수
물은 투명합니다. 투명해서 하늘도 담고 나무도 담을 수 있습니다. 잔잔한 물에 비친 풍경도 아름답지만 조금씩 흔들리는 물결에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물은 자기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컵에 담기면 컵 모양으로, 대접에 담기면 대접의 모양으로, 바다에 담기면 바다의 모양을 합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물은 늘 낮은 곳을 향합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입니다. 낮은 곳을 향하는 마음은 가장 넓은 마음이 됩니다. 물은 평등합니다. 어느 곳에 담겨 있어도 늘 수평을 유지합니다. 물은 부족한 곳은 채우고, 충만한 곳에서는 조금 부족한 듯합니다. 그렇게 물은 늘 수평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물은 평등합니다.

이렇게 자연의 품에 안기면 편안합니다. 자연 속에서 님의 숨결을 느끼고, 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의 찌든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은 바로 자연입니다.

온 식구가 함께 한 산행. 어느 누구도 집에 가자고 하는 이 없이 종일 자연의 품에 안겼다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우리 식구들 마음은 모두 싱그러운 연녹색으로 물들었습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4/05/06 오후 7:20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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