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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카투사의 고백 "난 미군만도 못했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6. 3. 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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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카투사의 고백 "난 미군만도 못했다"
"주민들이 시위하는 이유를 너희도 이해해야 해!"
텍스트만보기   유성덕(overcome33) 기자   
▲ 지난 2월 12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옛 대추분교에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를 마친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K-6(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가 인접한 황새울까지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 곳 주민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를 너희도 이해해야 한다. 멀쩡한 너희 집을 군 시설을 짓기 위해 밀어버리겠다고 하면 어떻겠나?"

군 시절, 내 미군 지휘관이 부대 사병들을 모아 두고 안전교육을 하면서 했던 말이다.

나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난 카투사였다. 미군기지 확장 이전으로 떠들썩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에 부대가 있었다.

상병이 되었던 때로 기억한다. 그맘때쯤,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확장 이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철조망 밖으로 보이던 마을 곳곳에 '미군부대 확장이전 반대'라고 쓴 플래카드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옛 대추분교에서는 연일 마을 사람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반미 시위도 부쩍 늘었다.

이런 사실이 미군들에게 반가울 리 없었다. 미군부대 반대 시위 자체가 그들에게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사병들에게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말이면 으레 미군 사병들과 카투사들은 캠프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똑같이 외출하던 카투사들도 외박 금지가 반가울 리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 지난 2월 12일 기지 이전 반대 집회에서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주한미군 없는 세상'을 꿈꾸며 날린 연이 K-6(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 상공을 날자 미군들이 나와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물론 그랬다. 난 더구나 대추리와 맞닿아 있는 경계의 방어팀에 속해 있었다. 주말에 시위가 생기면 외출은 고사하고 혹시 모를 월담에 대비해 장비 메고 근무를 서야 했다. 정말 싫었다. 대추분교에서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하필 주말마다 벌어지는 반미시위가 너무 싫었다.

금요일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안전교육을 하기 위해 미군 지휘관이 사병들을 집합시켰다.

"이번 주말에는 미군부대이전 반대시위가 있으니 외출하지 말 것."

그러면서 울상을 한 부대원들에게 덧붙여 말했다. 저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물론 들여다 보면 고양이 쥐 생각하는 격일 뿐이다. 하지만 미군이었던 그가 훨씬 나았다. 그깟 외출금지에 투덜거리며 속상해 하던, 대한민국 상병이었던 나보다 나았다. 이제 장사 좀 되겠구나 싶어서인지 '우리는 미군기지 평택 이전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커다랗게 써 붙이고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에 반대시위를 했던 한국인 상인들보다는 나았다.

자식 같은 땅을 차마 떠나지 못해 굽은 허리로 시위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돈에 환장한 사람 취급하는, 입 험한 몇몇 한국인들보다는 훨씬 더 많이 대추리 주민들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제대한 지 2년여가 되어가는 지금, 신문에서 진흙 바닥에 구르면서 절규하는 할머니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저리다. 그때 시위하시는 주민들께 왜 힘내라는 한 마디 못해 드렸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투덜대던 미군 사병들이 왜 한국인인 내가 아닌 미군 지휘관에게 대추리 주민들을 이해하자는 말을 먼저 듣게 했는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 흘려 사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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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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