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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막걸리 한 되를 받아 오라 하셨다. 정지문 안쪽에 걸린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를 챙겼다. 마을 앞 도랑 가에 있는 주막에 가기 전에 물로 한번 주전자를 흔들어버리고 뛰어서 갔다. "*지시오?" "막걸리?" "예." 은순이 아버지는 술독에 든 막걸리를 훌훌 저어 가득 담았다. 넘치도록 담을 게 뭐람? 나는 막걸리 냄새도 맡기 싫어 손을 멀리 뻗어 편치 않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술 받아왔어라우." "애썼다." "근디 뭔 술을 고로코롬 꽉 채운다요?" "많이 준께 좋제 그냐?" "어디다 둘까요?" "응 *말래다 올려놔라." "예"
마침 아버지 어머니께서 손에 가시를 찔려가며 꺾어오신 두릅나물이 있다. 아버지는 막걸리 한 되로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물이 끓기 전에 '꿩알'을 삶는다. 적당히 익을 무렵 알을 꺼내 찬물에 담그신다. 다시 끓는 그 물에 '두릅'을 넣고 한번 휘 저어주고는 바로 꺼내셨다. '초고추장'도 순식간에 시큼하게 만드셨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바로 꿩알이다. 삶아도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고 온통 푸르스름한 꿩알 아홉 개. "아부지 한나 드실라요?" "느그들 묵어라." 하나씩 까서 소금에 찍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엄마 *꽁알." "아가 우리 막내딸이 엄마 줄라고 가져왔어?" "응." 동생은 아직도 재롱과 이쁜 구석이 남아 있다. 무슨 음식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먹는 버릇 말이다. 나는 손이 멋쩍었지만 이미 한입에 알을 넣고 씹고 있었다. 굵은 소금을 더 넣어 간을 맞췄다. 형제 둘 차지로 각 2개, 동생 3개, 어머니 2개씩 돌아갔다. 꿩알은 약간 풋내가 나는 듯했고 노린내도 풍겼다. 그 맛은 달걀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곤달걀 삶은 맛이다. 포근포근하기는 더했다. 간혹 삼밭에서도 주워왔던 꿩알은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추억을 안겨주었다.
"한나 묵으께라우." "느그들은 가시에 찔린께 쬐끄만 것으로 묵어." "예." 각자 세 개씩을 먹고는 '더덕' 껍질을 벗겼다. 더덕 뿌리를 칼 없이 긴 손톱으로 둘둘 돌려가며 껍질을 벗긴다. 그래야 진한 향이 날아가지 않는지라 평소 어른들께 배운 대로 벗겼다. 그 자리에서 물에 씻지 않고 바로 드려야 아버지께서는 하나라도 드셨다. "규환아 정말 찐하다." "형 여그 봐봐. 하얀 찐이 질질 흐르네." "글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까치더덕은 없디?" "그것 찾으러 갈 새가 어딨어? 꼬사리 꺾느라 정신없었다니까." "글면 내일 형아랑 같이 가자. 그게 덜 쓰당께. 달짝지근허고." 여동생과 형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더덕 껍질을 벗기니 금방 끝났다. 귀한 것은 이렇게 몇 개 맛보면 봄이 떠나간 줄 모르게 쉬 갔던 기억이 있다. '딱주'도 벗겨 놓았다.
솥뚜껑이 움직이며 밥 익는 소리가 요란하자 불을 꺼냈다. 밥솥보다 약간 작은 국솥엔 우리 집만의 별미 국이 풀풀 끓고 있다. 다름 아닌 고사리국이다. 고사리국이 우리 집 별미인 것은 다른 집에서 끓여 먹는 걸 아직 보지 못한 때문이다. 고사리국은 한번 삶은 고사리를 남겨뒀다가 물에 우려서 독을 빼서 넣고 고사리 끝에 달린 고사리밥도 떼지 않고 칼로 한두 번 잘라 된장 조금 풀고 고춧가루 넣고 멸치를 싹싹 비벼 넣고 간만 맞춰 푹 끓인 국이다. 고사리 꺾는 보름 동안 우리 가족은 고사리국을 물리도록 먹었다. 그 맛은 뭐랄까 시원했다. 고사리 줄기는 물컹하면서도 날줄만 있는 듯 한쪽으로만 연신 잘게 부서져 찢어지므로 쫄깃함이 더하다. 여기에 고사리 잎으로 자랄 고사리밥은 식물에서 얻는 밥인데 고소함과 감칠맛이 난다.
먹던 두릅, 더덕, 딱주와 삶은 취나물, 생 취나물, 쑥부쟁이와 원추리 순을 고사리국까지 한 그릇씩 차려지니 상다리가 휠 지경이었다. 먼저 고사리국에 밥을 말아 식기 전에 후루룩 떠먹고 온갖 나물을 넣고 고추장 조금에 쪽파로 만든 장을 끼얹고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양푼에 둘둘 비벼서 게눈 감추듯 봄을 질겅질겅 씹었다. 어른들은 더 먹으라 하셨지만 옆에서 주워 먹은 거에다 꿩알까지 먹고 나물 반찬에 비벼 먹으니 무척 배가 불러 아쉬운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밥을 먹고서도 밖엔 습기가 많으니 어머니는 애써 꺾은 고사리가 조금이라도 마르도록 방으로 들여와 한번 더 비벼주고 군불을 넉넉하게 때고 고루 펴 너시느라 잠을 뒤척였다.
글쓴이 註 *지시오: 계시오 *말래: 마루 *꽁알: 꿩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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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6 오전 9:56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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