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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쇼핑몰에서 2002한·일월드컵 공식구였던 피버노바를 주문했다. 친구들은 "동네 애들이 사용하는 1만원짜리 비닐 축구공이나 살 것이지 왜 그렇게 비싼 걸 샀냐"고 나무랐다. 축구공을 거의 차본 일이 거의 없는 그들에게는 내가 거금 3만원을 들여 축구공을 구입한 것이 쓸데 없는 행동으로 비쳤을 지도 모르겠다. 난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조기축구 모임에 참여하곤 했다. 유치원생이 축구공을 제대로 찼을 리가 없지만, 그저 운동장과 축구공이 좋았다. 일요일이면 아버지, 오빠를 따라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아버지가 차는 공을 오빠와 내가 주워오기도 하고, 아버지가 직접 우리들에게 공차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오빠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클수록 오빠와 체력적인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여자중학교시절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이 하는 체육은 그다지 격렬한 운동이 아니다. 고작 뜀틀, 줄넘기, 멀리뛰기, 달리기 정도.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구기 종목으로는 발야구나 피구가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내가 즐기기에 너무나 심심했다. 다행히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남자애들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다는 특별활동 축구부. 다행히 "여자들은 정원 외로 받아준다”는 체육 선생님의 말에 나와 내 친구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축구를 거의 해본 적이 없던 내 친구들은 몇 번 만에 금세 싫증을 냈다. 공이 발에 잘 맞지도 않고, 공이 뻗어나가는 느낌도 없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나는 어렸을 때의 경험이 있어 즐겁고 끈질기게 축구부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 애들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축구 경기에 키 158cm에 불과한 내가 끼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 위축감과 괴리감 때문에 나는 골대 뒷편에서 그물을 향해 혼자 공을 찼다. 그러다가 내가 찬 공이 골대를 넘어가 경기 중이던 남자애들 머리를 몇 번 맞힌 후로는 주로 ‘벽차기'만 했다. 조회대나 건물 벽을 향해 공을 날리고, 튀어 나온 공을 다시 차는 것의 반복이었다. 대학에 오니 중고등학교 때보다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여자대학이라 학과별 축구대회도 있었고, 온라인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하는 대회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축구는 남자들처럼 일상적으로 하는 운동은 될 수 없었다. 그저 대회 때 잠깐 땀 흘리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난 마땅한 주력 분야도 없고, 패스 능력도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몸싸움을 할 정도로 체격이 좋지도 못했다. 경기를 읽는 눈? 안타깝지만 그것마저도 없다. 무엇보다 평소에 같이 축구를 할 사람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인지 축구는 단체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난 홀로 하는 축구에 익숙하다. 며칠 내내 신문의 일기예보를 유심히 살폈다. 어제 도착한 피버노바로 맑게 개인 하늘 아래 학교 운동장에서 ‘벽차기’나 하려고 말이다. | ||||||||||||
2004/05/13 오전 10:5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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