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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는 나는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고향 집 마당 한 켠에 묻어 놓은 김장독 속에 김치를 넣어두기 위해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운기를 소유한 마을 형님에게 달려가 밭 갈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립니다. 마을 형님 덕분에 밭을 갈고 못줄을 띄워 반듯하게 한 두둑씩 고랑을 치고 두둑에 비닐을 씌웁니다.
"올해는 각자 심은 배추를 뽑아가게 헐랑게 잘들 심읏쇼. 하여간 정성 들여 안 심으면 다 죽은 게 알아서들 헛쇼." 농사일,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지만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배추모종 심는 일 또한 쉽지 않습니다. 줄줄 흐르는 땀방울 옷소매에 닦아가며 한 포기씩 정성 들여 심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 몇 번씩 일어났다 앉았다 몸부림치며 시원한 그늘만을 생각합니다. 힘든 농사일 할 때마다 느끼지만 농사일 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주말에 가끔씩 하는 농사일이지만 몹시 힘들어 인내와 끈기가 무척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뒤돌아 서서 배추모종 심어놓은 곳을 바라보면 새파란 새싹들이 참 예쁘기만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심어야 할 두둑을 바라보면 언제 끝날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어이, 동생 나도 쬐께만 줘 볼랑가. 오랜만에 일헝게 힘이 딸려서 못허것고만. 술기운에 일해야 헐랑가벼." 젊은 시절, 일을 했다 하면 손동작이 빨라 제일 먼저 끝내던 둘째 형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님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일을 하려고 하면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피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자 뽑아갈 배추 한 두둑씩 책임을 지고 심는 바람에 형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형수님과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다 보니 아마 목이 탔던 모양입니다. 4남 2녀 형제들 가끔씩 고향에 찾아와 부모님께서 농사짓던 고추밭을 주말농장으로 짓고 있는데 일 년 농사 중 배추농사가 우리 가족들에겐 가장 큰 한 해 농사입니다. 형제들 모두가 고향에서 기른 배추로 김장을 담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나는 형님과 내가 심은 두둑이 몹시 신경 쓰이는지 밭고랑을 몇 번씩 쳐다봅니다. 형님과 내가 심은 두둑에 배추 심는 간격이 들쭉날쭉하고 또 배추 심는 구멍 하나하나 비닐을 뚫어가며 심다 보니 속도가 워낙 느려 애가 탔던지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꼭 기계가 뚫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뽕뽕 구멍을 내고 지나갑니다. 배추 모종을 심고 나서 밭둑으로 나오니 누나가 비닐 구멍을 뚫으며 흙과 함께 집어 뜯어서 그런지 비닐 조각들과 흙들이 뒤섞여 봉지 속에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저 거름진 흙들, 비닐과 함께 쓰레기 속으로 보낼 순 없지. 어머니 아버지 손톱 속에 끼었다 다시 뿌려진, 손발을 닳게 했던 저 곰삭은 흙들, 내 자식들과 후손들 손톱 속에 끼었다 다시 뿌려질 찰진 저 흙들, 그냥 버릴 순 없지.'
"거그 안거서 뭐더요. 비닐 속에 뭐 귀한 것이라도 들어 있소." "아니라우. 아까 배추 심을 때 누나가 비닐구멍 뚫으며 흙과 함께 집어 뜯어서 그런지 흙들이 쬐께 들어 있어서 털어내고 있고만이라우. 거름 진 흙이라 버릴 수 없어서 비닐만 개리내고 도로 밭에다 넣어둘라고 허요." "하먼, 그리야제. 어메 아부지가 힘들게 가꾼 밭인디, 어치게 흙을 함부로 버릴 수 있것어. 참말로∙∙∙. 절대로 버리면 안 되제."
일하고 난 뒤 배가 고파서 그러겠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던 반찬을 누나가 똑같이 해주기 때문에 고향 집에 온 식구들은 평소 식사 양을 훨씬 초과하여 수저를 놓습니다. '과식하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하면서도 눈깜짝할 사이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수저를 놓을까 말까 망설이다 "쬐께만 더 묵어볼까"하며 빈 밥그릇을 쳐다봅니다. 아침 식사 때 둘째 형님이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자 형수님은 "오빠는 밥 맛 없으면 진뫼에 오면 금방 찾는당게. 아침밥은 아예 숟가락 들 생각을 안혀. 근디 진뫼만 오면 저렇게 맛있게 식사 허는 것 보면 참 요상시럽당게" 합니다. "아, 진뫼만 오면 밥맛이 땡긴디 어쩔것여. 여기 있는 요 반찬 그대로 전주 집으로 가지고 가서 오늘 점심 때 묵으면 또 요로케 맛있게 못 묵어."
각양각색의 풀벌레들 노랫소리를 흉내 내봅니다. 입소리로, 휘파람 소리로 따라 해보지만 도저히 흉내낼 수 없어 연필을 들고 글로써 써봅니다. 그러나 글로써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가 없습니다. 풀벌레들 노랫소리에 소쩍새까지 가세하여 나는 더 이상 누워 있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루로 나갑니다. '또르르, 또르르' 옥구슬 굴러가는 저 맑고 고운 풀벌레들의 오케스트라 연주소리를 나는 예의도 없이 누워서 듣고 있었구나. 풀벌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를 듣다가 또 흉내를 내봅니다. 그러나 턱없이 모자라는 흉내에 그만 입 속에서 맴돌다 포기하고 맙니다. 맑고 곱게 들리며 가냘프고 여리게 들려오는 풀벌레들 노랫소리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찾아오며 신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음악소리로 들려옵니다. 풀벌레 소리 조용히 듣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 걱정들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풀벌레 노랫소리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마루에서 뜰 방으로, 다시 마당으로, 돌 담 아래로, 장독대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풀벌레 소리 가까이 들리는 곳으로 다가가 조용히 귀기울여봅니다. 찌르르 찌르르, 또르르 또르르, 찌찌찌 찌찌찌, 귀뚜르 귀뚜르, 이름 모를 풀벌레들 노랫소리가 지금 삼천리 금수강산 숲 속에서 밤마다 한창 펼쳐지고 있습니다.
"너도 일찍 못자겄제. 달도 떠올라 요로케 밤경치가 좋은디 모정으로 나와서 놀다 자랑게. 일찍 잔다더니 어찌 나오냐." "풀벌레들이 어찌나 울어대던지 도저히 못자것고만요∙∙∙." 강으로 나가니 강물은 농로용 시멘트 다리를 넘어 콸콸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달은 두둥실 산마루에 떠올라 작은 강변 마을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습니다. 달뜨지 않는 밤이면 마을은 컴컴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로등을 켜놓으면 곡식들이 몸살을 해대니, 그래서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켜놓지 않습니다. 밤이면 곡식들도 편히 쉬며 잠을 자라고 논이나 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골목에 서 있는 가로등 한 개만을 켜둡니다. 그러나 오늘 밤은 둥글게 떠오른 달빛 분위기에 젖어 곡식들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새벽녘이나 잠이 들 것 같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며 들려오는, 아름다운 풀벌레들 노랫소리 들으러 가족들과 함께 오늘 밤 가까운 숲으로 저녁 산책 나가보세요. '귀뚜르 귀뚜르' 여름이 갔다고, '또르르 또르르' 가을이 왔다고 여러분들 발목을 붙잡고 환장하게 아름다운 노래들을 선사할 테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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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0 오전 7:3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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