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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정년퇴임 후 환경미화원 변신한 최형복씨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9.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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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한 도울 겁니다"
교사 정년퇴임 후 환경미화원 변신한 최형복씨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윤태(poem7600) 기자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어려움을 감내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꼭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약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게 요즘의 세태입니다.

반면 어려운 삶 속에서도 오히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에 보답을 하기 위해 묵묵히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최형복씨(70세 환경미화원)이야기를 통해 나약한 마음을 가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아침에 눈 뜰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최형복씨에게 요즘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엉뚱하게도 최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동문서답이라니….

“허허허, 미안합니다. 오늘도 눈을 떴으니 이렇게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살아있으니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허허허.” 기자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 왜소한 체격의 최형복씨. 그러나 정신력은 강하다.
ⓒ2004 문학세계 이승희
최형복씨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아파트 청소일은 분명 허드렛일이다. 그것도 나이 70에 40kg 밖에 나가지 않는 왜소한 체격으로 그 일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더 놀라운 일은 그가 전직 교사였다는 것이다. 무려 36년 동안 교편을 잡았던 그가 퇴직 후 아파트 청소 일을 하게 된 것. 그래서 동네 아이들은 최형복씨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비록 정년퇴직을 했지만 선생님 이라는 호칭에 최씨는 힘이 난다고 한다.

그런데 무릇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그가 청소일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쉽게 허락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 반대가 없었겠습니까?”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최씨는 지그시 눈을 감고 그때 일을 회상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가족들에게 말을 할 수 없어 산책 나간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서부터 최씨는 달라졌다.

과거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최씨는 아파트 청소 일을 하면서부터 많이 밝아졌다. 마음이 밝아지니 자연스럽게 몸도 좋아졌다. 이러한 변화를 이상하게 여긴 식구들의 추궁 끝에 최씨는 결국 털어놓게 되었고 아내와 자식들도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일 하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허허허, 힘들죠. 어떤 날은 신주(계단 미끄럼 방지틀)를 100개 정도 닦고 나면 팔이 아파서 숟가락을 못 들 정도예요.”

그러나 신주를 닦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정작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파트 주민들이나 관리인으로부터 청소를 잘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형복씨는 결코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민들의 지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더 깨끗이 청소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씨가 이처럼 힘들게 일을 하고 받는 급여는 50만원이다. 이중에서 10만원은 교통비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남을 돕는데 사용한다. 혹자 중에는 “50만원 받아서 뭐가 남는다고 남을 도와?” 라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공짜로 얻은 인생입니다.” 그렇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말년에 새로운 인생을 얻었다고 한다.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데 그깟 돈이 뭐가 중요하냐고 되레 기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낌없이 그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는 말없이 남을 돕는다. 통장 집에 찾아가서 혼자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의 집을 알아내고 쌀가게에 돈을 주며 배달을 시키는 것이다. 선행을 기자에게 말하는 것조차 꺼려하던 그는 “남 돕는다는 얘기는 빼주면 안돼요” 라고 요청해 취재하는 기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의 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죽어서까지 남을 도우려고 그는 이미 마음을 먹었다. 각막, 심장, 신장, 폐, 간 등 온갖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들이 허락할리 없었지만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자녀들의 도장을 몰래 가져와 동의서에 찍어버린 것이다.

최형복씨가 이처럼 헌신적인 봉사 일을 하는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최씨가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남의 집 창고에 가마니를 깔고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리죽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 아픈 시절, 최씨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오늘의 최씨를 있게 했다.

“도움을 받아본 사람만이 남을 도울 줄 아는 법이지요.” 최씨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빗자루를 잡았다.




윤태 기자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밝은 사연들을 모아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 (http://www.finepeople.ne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사는이야기' 처럼 따듯한 이야기를 싣는 교양지입니다.



이 글은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 10월호의 <칭찬합시다> 코너에 실릴 예정입니다.
윤태 기자는 시인을 꿈꾸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 작은 흔적들은 그의 홈페이지 (www.yun.speedbook.net)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 홈페이지는‘사연나라’로 부르기도 합니다. 라디오 방송에 보내고 소개된 글들을 엮어 놓았으며 여기에는 눈물과 사랑, 감동과 추억, 웃음, 가족 간의 사랑 등 풋풋한 ‘사연’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2004/09/14 오전 9:30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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