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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은 젊고 건강한 어머니였다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9. 18.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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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은 젊고 건강한 어머니였다
섬진강에 있는 섬과 그 섬을 품고 있던 백사장 이야기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최형식(ipopo890) 기자   
나도 어린 시절 한때는 서울깍쟁이로 살았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젊고 거침없던 시절, 나는 양옥집이 즐비한 장충동에서 부자를 꿈꾸며 충무국민학교를 5학년까지 다녔다.

그러나 빚에 몰려 시골로 이사하던 날, 아버지와 함께 서울역 밤 열차에 오른 나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때 유행하던 이미자의 '서울이여, 안녕'을 속으로 흥얼거렸던 제법 세련된 열 두 살짜리 소년이었다.

시골에 오니 좋은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공짜가 많다는 것이었다. 뒷산 뽕나무에 오디열매도, 앵두나무 빨간 열매도 공짜였다. 동네사람들은 팔뚝만한 옥수수도, 소불알만한 고구마도 거저 주었고 늦가을 말식이네 홍시도 말만 잘하면 내 것이었다.

어느 날 동네 아이들과 들판을 걸어갔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갑자기 무밭에 뛰어가더니 마치 제 것인 냥 무를 쑥 뽑아오는 것이었다. 아이는 익숙한 솜씨로 무 윗줄기를 두둑 꺾어내고 무에 묻은 흙을 쓱쓱 닦아 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내 코앞에 쑥 내밀었다.

나는 엄청 놀랐다. 남의 것을 거리낌 없이 취하는 아이들의 대범함에 놀라고, 처녀 장딴지처럼 크고 허연 무맛에 놀랐다. 아삭아삭 달고 신선했다. 아이들은 반쯤 먹다가 무밭으로 던졌지만 난 제법 큰 그걸 다 먹어치웠다. 그 후 한동안 내 별명은 '무시뿌렝이'였다.

▲ 백사장을 잃어버린 경조개등.
ⓒ2004 최형식
그러나 알짜배기 공짜는 따로 있었다. 섬진강 경조개였다. 흔히 재첩이라 부르는 그것을 섬진강 사람들은 아직도 경조개라 부른다. 옆으로 누워 넉넉히 흐르는 섬진강 하류와 나란히 하여 옹기종기 모여 살던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경조개는 여름철 내내 고마운 양식이자 돈벌이였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삶아먹고 내다버린 경조개 껍데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아주 먼 옛날 우리 동네가 생기고 사람이 모여들 때부터 문밖에 쌓였을 경조개 껍데기. 이미 자디잘게 부서졌는데도 밟고 지나가면 또 가볍게 부서지는 그 소리가 지금도 발바닥을 간질이는 듯하다.

경조개를 잡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경조개등'이라는 섬으로 가야했다. 상류에서 떠내려 온 모래가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만든 섬이었다. 경조개는 섬 주위를 둘러싼 넓은 백사장 모래 속에 살고 있었다. 눈부신 모시자락을 펼쳐 섬을 두른 듯한 백사장은 썰물 때이면 강 건너편에 닿을 듯 엄청 넓었다.

바쁜 농사일이 아니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그 경조개등 백사장에 모여들었다. 별다른 요령도 경험도 필요 없었다. 어른들은 댓살을 엮어 만든 소쿠리를 끌며 경조개를 잡았고 우리 같은 꼬마들은 발끝으로 모래를 헤집으며 걸어 다니면 됐다.

그러면 모래 속에 숨어있던 경조개가 수줍은 듯 매끈한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것은 황금빛 이 감도는 것이 어른 손톱만 했다. 바라만 보아도 예쁜 생물이었다. 우리는 소풍을 온 듯 모래와 더불어 놀았고, 강물은 일 하는 어른들의 지친 발목을 적셔 주었다.

백사장에 밀물이 들고 땅거미가 내리면 우리는 강가에 세워둔 리어카까지 이고 지고 잡은 경조개 포대를 옮겼다. 한 자루 가득이면 만만찮은 경조개 무게였지만 그 무게만큼 뿌듯한 노동이었다. 그런 날이면 저녁 밥상 뿌옇게 우러나는 경조개국 한 그릇만으로도 행복했다.

부지런하고 동네 사람은 잡은 경조개를 장에 내다 팔아 돈을 사고, 더 부지런한 젊은 아낙들은 밤새 경조개국을 끓여 인근 도시 진주까지 가서 머리에 이고 다녔다. 경조개등의 눈부신 모래밭은 젊고 건강한 어머니의 모유처럼 가난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섬진강 모래를 실어 나르는 배가 보였다. 모래의 질이 좋아 건축공사자재용으로 비싸게 팔린다는 거였다. 우리는 도시 사람들이 그까짓 모래가 귀해 사러 온다는 것에 우쭐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래를 가득 실은 큰 배와 제 몸보다 훨씬 큰 그 배를 옹골차게 끌고 가는 '난치선'이라는 작은 배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 후 객지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경조개등 근처를 지나가던 어느 해였다. 나는 문득 경조개등 백사장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한참 썰물 때인데도 맞은 편 전라도에 닿을 듯한 그 넓은 백사장이 보이지 않았다. 왜소할 대로 왜소해진 경조개등만이 겁에 질린 듯 움츠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내 유년 행복한 어느 시절을 담고 있던 백사장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하동과 광양을 잇는 섬진강 다리를 지나면 경조개등이 보인다. 그 모습이 아름답던 생김생김 다 잃어버린 내 어머니 모습 같아 더욱 애처롭다.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올린 글을 다듬었습니다.

2004/09/17 오전 2:01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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