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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잡이 한창인 채석포구의 하루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9.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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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게 어딨어? 죽지못해 하고 있구먼"
대하잡이 한창인 채석포구의 하루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송성영(sosuyong) 기자   
▲ 채석포구의 고깃배들
ⓒ2004 송성영
사흘 전 모 방송국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충남 태안군에 자리한 자그마한 포구에 다녀왔습니다. 주로 꽃게와 큰 새우, 대하를 잡고 있는 채석포구에는 60여척의 크고 작은 고깃배들로 그득했습니다. 그 며칠 내내 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새벽녘에는 바람도 심하게 불었습니다.

채석포구는 평온했습니다. 새벽부터 빗줄기가 오락가락했지만 한낮의 쨍쨍한 채석포구는 그물 손질이 한창이었습니다.

채석포구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 이른 아침부터 그물 손질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는데, 점심나절에도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할머니는 잡어나 해초보다는 라면 봉지나 폐비닐 같은 쓰레기들을 더 많이 떼어냅니다.

▲ 성어기가 돌아오면 하루 종일 그물 손질에 매달린다는 채석포구 할머니
ⓒ2004 송성영
반농 반어의 채석포구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아들은 고기잡이를 하고 할아버지는 열세 마지기의 논농사를 짓고 며느리와 함께 그물 손질은 물론이고 천여 평의 밭농사를 짓고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그야말로 '싸가지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물 손질하시는 거 보다는 밭일이 더 손쉽지요?"

"으이그 징그러!"

할머니는 때마침 손질을 끝낸 그물을 휙 던져 놓습니다.

"고걸 말이라구혀, 쉬운 게 워딨어! 죽지 못해 하고 있구먼,"

대꾸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화난 듯이 쏘아붙였지만 할머니는 곧바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배시시 웃었습니다.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해질녘까지 그 자세로 앉아 쓰레기 투성이인 그물코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전두환 독재 정권의 군대를 막 제대한 나는 20대 중반 한창 젊은 혈기를 믿고 고깃배를 타보겠다고 포구를 찾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포구에 가면 소주병을 옆에 꿰차고 '구릿빛 선원들', '소주병 나뒹구는 포구', '토악질하거나 피 터지게 드잡이 하는 선원'이 어쩌구 저쩌구 팔자 늘어진 시인들의 그럴듯한 시어들을 떠올리곤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어 나부랭이들은 그야말로 말장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04년 초가을, 채석포구에서는 그런 시시껄렁한 시 나부랭이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고깃배가 다 들어온 포구의 밤은 적막하리 만큼 조용합니다. 대하를 맛보기 위해 어쩌다 찾아온 낯선 외지인들의 자동차들만이 오락가락할 뿐,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만 들려 옵니다.

새벽 두 시 반. 빗줄기가 빗금을 치고 태극기가 펄럭이는 포구. 선원들의 자동차 불빛이 하나 둘씩 비바람 몰아치는 포구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선주는 출항 신고를 하고 선원들은 새벽 출항을 서둘러 준비합니다. 2~4미터의 풍랑주의보를 뚫고 거친 바다로 향하는 '행복호'에는 선원들을 함부로 부려먹고 품삯 떼어먹는 악덕 선주도, 독기 품은 선원도 없어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다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어린 자식들이 있고, 늙은 부모님이 계십니다. 꽃 같은 애인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뱃놈'이라는 거친 이미지와 '행복호' 선원들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입니다.

바다에서 돌아와 취기로 비틀거리는 선원들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행복호' 선원 7명 중에 배 안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단 두 명 뿐이라고 합니다. 힘든 뱃일에서 돌아오면 짧은 휴식을 마치고 새벽 뱃일을 나서는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비바람이 막아서면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는 날입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행복호'에는 열 두 명의 선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고 바다를 누볐던 그 무렵, 3.5톤짜리를 지금의 8톤짜리 고깃배로 바꿨을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원이 7명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고기잡이가 시원찮다고 합니다.

▲ 갓 잡아온 큰 새우, 대하
ⓒ2004 송성영
우리가 채석포구에 머물던 그 무렵, 꽃게잡이를 하던 행복호가 갑자기 대하잡이로 그물을 바꿨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뜸했던 큰 새우, 대하가 심심찮게 잡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4년만에 대하잡이로 재미를 보고 있답니다.

10톤급 이상의 고기잡이배들은 전국의 바다를 누빌 수 있는데 8톤급 '행복호'는 위로는 경기도, 아래로는 전라북도를 경계로 충남 지역의 바다에서만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 새벽 세 시에 출항, 고단한 뱃일에서 돌아온 선원들은 저녁나절까지 그물 손질에 매달려야 한다.
ⓒ2004 송성영
늘 그래왔듯이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선원들은 쉴 틈이 없습니다. 새벽 세 시쯤에 바다로 나갔다가 오후 네다섯 시 무렵에 포구로 들어와 저녁나절까지 그물을 손질합니다. 그물에 걸린 해초나 작은 게들을 제거하고, 그물을 정리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 포구 선착장 가로등에 앉아 있는 갈매기들
ⓒ2004 송성영
포구에는 선원들의 그물 손질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구경꾼이 있습니다. 끼륵끼륵거리는 갈매기들입니다. 높은 가로등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 고깃배에서 나온 잡어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멋모르고 가로등 아래를 지나치다가 녀석들의 배설물 세례를 받기도 합니다.

ⓒ2004 송성영
이제 막 고깃배에서 내려진 대하는 수산 센터로 넘겨집니다. 행복호 선주의 아내, 임옥녀(43)씨는 그물코를 너무 넓은 것을 써서 대하가 좀더 잡히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물을 당길 때 대하들이 많이 빠져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물을 조정하면 앞으로 좀더 많이 잡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임씨는 상품이 떨어지는 대하를 따로 챙깁니다. 시부모와 자식들 몫이랍니다.
대하는 성미가 급해 거의 대부분이 잡히면 이내 죽어버리기 때문에 횟집에 살아 있는 놈들은 대부분 양식이라고 합니다. 자연산은 크고 통통하며 수염이 길고 등 부분이 밝은 색이며 배와 꼬리 쪽이 붉은 특징이 있고 양식은 작고 등 부분이 검은빛입니다. 채석포구에서 나오는 자연산 대하는 1kg에 3만6천원 정도입니다.

2004/09/18 오후 1:00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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