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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다시 만나 부부된 사연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7. 5. 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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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폭격으로 헤어진 남녀,
60년만에 다시 만나 부부된 사연
[해외리포트] 영화보다 감동적인 미국 휴먼 러브스토리
텍스트만보기   한나영(azurefal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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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이 : 한나영 기자
방송일 : 2007.05.03
방송시간 : 2분
대역폭 : 320Kbps

위대한 사랑을 일궈낸 휴와 홀다. 그 유명한 부부를 만나기 위해 그들의 보금자리인 VMRC 파크 플레이스를 찾았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 집답게 214호 현관은 아름답고 ...

사랑에 빠진 소꿉친구... 그러나

때는 바야흐로 1920년. 한가하게 창공을 나는 갈매기의 날갯짓과 파도소리만이 요란한 한적한 크래드도크의 어촌마을. 나른한 이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건강한 남자아이 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4달 뒤, 같은 마을에서 여자아이 홀다가 태어난다. 휴와 홀다는 특별하게 놀만한 거리가 없던 이 마을에서 말을 타거나, 바다에서 헤엄을 치거나, 밤에 라디오를 들으며 지낸다.

아, 하나 더 있었다. 휴는 동갑네기인 홀다네 집 앞마당에서 그네를 타고 놀았다. 홀다의 아버지가 집에 가라고 성화를 댈 때까지. 순진한 어린 시절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이렇게 소꿉친구로 자라난 휴와 홀다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들은 각기 다른 대학으로 진학을 한다. 홀다는 동부의 명문인 윌리엄 앤 메리로, 휴는 버지니아텍으로. 대학에 가서도 이들의 데이트는 계속된다. 자연스레 결혼 얘기도 오갔다.

아름다운 청춘 남녀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은 뒤에야 결혼을 하는 게 당시 풍속인지라 두 사람은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이들의 애틋한 사랑을 가로막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전쟁이었다. 일본군의 진주만폭격으로 야기된 전쟁은 당시 피 끓는 청년들을 징집하게 된다. 대학생이었던 휴도 징집을 당해 학업을 중단한 채 멀리 캘리포니아로 떠나야 했다.

"우리 두 사람이 헤어져야 할 만한 사건은 없었어요. 다만 전쟁이 원인이었죠."

▲ 휴의 어린 시절 사진. 홀다는 벽에 걸린 휴의 사진들이 정말 아름답다고 여러 번 말했다.
ⓒ 한나영
캘리포니아가 어떤 곳인가. 대서양이 보이는 동쪽 끝자락에서 3천마일(4800㎞)이나 떨어진 먼 곳이 아니던가. 맘 먹고 자동차로 쉽게 찾아갈 수 없는.

전쟁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그리고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던가. 홀다는 다른 해군병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

그런데 홀다가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바로 캘리포니아였다. 옛 애인 휴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이들 옛 연인들의 재회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휴가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또 다시 휴와 홀다 사이에 3천마일의 거리가 생겼다.

고향으로 돌아온 휴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두 남녀 모두 각기 다른 사람과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리고 60년의 세월.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결코 끊어진 게 아니었다.

동화 같은 청첩장... "옛날 옛적에"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사랑의 마법, 사랑의 방정식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이와 비슷한 법칙이 존재한다.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는 노인이 젊은 양치기에게 들려주는 감동적인 진실이 나온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휴와 홀다의 사랑도 그랬다. 두 사람을 시샘하는 악한의 방해공작이 분명 있었다. 이루어질듯 하다가 그만 이루어지지 못한 걸 보면 말이다.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아쉽게 세상을 떠날 뻔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휴와 홀다의 숙명적인 사랑은 결국 승리의 결실을 맺게 된다. 운명이란 놈은 마침내 휴 바이어와 홀다 챔피언에게 부부의 인연을 허락하게 된다. 감동적인 사랑을 일궈낸 두 부부의 청첩장을 읽어보시라.

▲ 한 편의 감동적인 동화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실린 청첩장.
ⓒ 한나영
옛날 옛적, 바다가 보이는 버지니아의 한 외딴 마을에 휴라는 어린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왕자가 태어난 지 4개월 뒤, 바로 이웃에서는 홀다라는 공주가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교회를 다니며, 같은 학교를 다니며 늘 함께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휴와 홀다는 서로를 사랑하게 됩니다. 결혼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1941년이 될 때까지만 해도 말이죠.

동화에는 불행이 꼭 들어갑니다. 이 두 사람의 동화에서도 '진주만 폭격'이라는 불행이 생기고 맙니다. 이 전쟁은 젊은 왕자를 공주에게서 떼어내 수천 마일 먼 외딴 곳으로 데려가 버리고 맙니다.

1년, 2년, 3년.

그들은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백발이 된 휴는 마침내 홀다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대서양 연안과 태평양 연안이라는 끝과 끝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편지와 전화를 나누며 애를 태웁니다.

동화에는 나쁜 일도 생깁니다. 휴와 홀다가 주인공인 이 동화도 예외는 아닙니다. 휴는 이제 앞이 안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강건하고 눈부시게 총명합니다. 홀다가 그의 눈이 되어줄 것입니다. 홀다 역시 암이라는 장애물로 수 십 년을 고생해 왔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법적인 장애물이나 신체적인 어려움을 물리치고 또 다른 크로스컨트리를 뛰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 끝날 까지 해리슨버그의 '바이어랜드'에서 행복하게 살 겁니다(휴의 성(姓)은 '바이어Via', 그래서 휴의 집이 바이어랜드가 되었다).


한 편의 동화가 들어간 청첩장이다. 청첩장의 주인공인 휴 바이어와 홀다 챔피언은 지난 달 14일, 해리슨버그의 한 실버타운(VMRC: Virginia Mennonite Retirement Center)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방년(?) 87세의 나이로.

▲ 지역일간지에 크게 실린 결혼식 사진. '드디어 하나 되다'
ⓒ 한나영
ⓒ 한나영
이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지역 일간지 토요판에 <마침내 하나-어린 시절 스위트하트 '휴와 홀다', 60년의 세월을 넘어 마침내 결혼하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신문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큰 지면에는 이들 신혼부부의 달콤한 키스사진이 실렸고 사진 아래는 휴와 홀다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신혼부부의 행복한 사진을 배경으로 실려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하늘의 계획이었어요. 우리는 온 우주를 무대로 뛰었던 선수들일 뿐이었고요." (휴)

"여든 살이 되어서는 로맨스라는 게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어요. 사실 저는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에요. 그래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휴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갑자기 깨달았죠.

'아,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구나' 그건 정말 믿을 수 없는, 경탄할 만한 일이었죠. 제 인생이 갑자기 새로워지고 아름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홀다)


두 사람을 갈라놓았던 3천마일의 거리를 뛰어넘어 옛 애인을 만나러 간 휴의 얘기도 감동적이다.

지난해 10월, 휴는 홀다를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이미 호호백발이 된 연인들이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 혹시 실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은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60여년 공백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등교육을 받았던 두 사람, 서로에게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책과 같은 그림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

그리고 또 시(poem)였다. 두 사람을 묶어준 것은. 휴와 홀다는 고등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휴가 한 편의 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어제의 들판을 지나 종종 그가 나를 찾아오네

휴가 암송한 시를 홀다도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한 단어도 빠트리지 않고 다 외울 수 있었다.

"두 분이 오랜만에 만나셨는데도 아주 잘 통한다는 걸 금세 깨달았어요. 그 연세에도 스파크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로웠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두 분…."

캘리포니아에 사는 홀다의 막내아들 챨스의 증언이다. 홀다는 휴가 돌아간 뒤에 편지를 쓴다.

"당신은 내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어요. 사랑해요. 홀다."

▲ 60년간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가 된 휴와 홀다 부부. 인터뷰 중에도 꼭 맞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 한나영

▲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 한나영
그리고 지금...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위대한 사랑을 일궈낸 휴와 홀다. 그 유명한 부부를 만나기 위해 그들의 보금자리인 VMRC 파크 플레이스를 찾았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 집답게 214호 현관은 아름답고 화려했다.

기자를 맞아준 사람은 파란 폴로티를 입은 휴와 하늘색 스웨터를 입은 홀다였다. 두 사람 모두 블루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87살인 홀다는 입술을 빨갛게 그린 새댁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 신혼부부이신데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세상에는 홀다밖에 없어요. (휴는 홀다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홀다 "휴는 눈이 안 보여요. 한 쪽 눈만 아주 희미하게 보일 뿐이고요. 귀도 잘 안 들려요. 저는 암 투병한 지 삼십 년이 넘었고요. 무슨 암이냐고요? (웃음) 온 몸이 암 덩어리예요. 처음엔 유방암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뒤로 폐암, *암, *암으로 다 퍼졌어요."

- 건강하게 보이시는데요.
홀다 "지금 사는 인생은 덤이죠. 캘리포니아에서 좋은 의사를 만나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예요. 암 치료 때문에 그동안 머리를 네 번이나 잘랐어요. 가발도 세 개나 가지고 있고요. 휴는 눈과 귀가 약하긴 하지만 건강은 좋은 편이에요."

-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가교 역할을 한 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홀다 "사실은 제가 휴의 여동생을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어요. 그 동생과는 이따금 연락을 하고 지냈죠. 그런데 암에 걸렸던 30년 전에 휴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아마 동생이 오빠에게 제 소식을 전했던 모양이에요."

-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옛 애인에게 왜 편지를 보내셨죠?
"동생으로부터 홀다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홀다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편지를 보냈죠. 그건 순전히 친구로서 보낸 거예요."

- 무슨 내용이었나요? 혹시 편지 내용이 기억나세요?
"로맨틱한 편지는 아니었어요. 홀다는 이미 남의 여자이고 저 역시 남의 남편이었던 터라 사랑을 고백하는 따위의 편지는 아니었죠. '(암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끝까지 잘 이겨내라.'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 와, 대단하네요. 옛 애인이 보내온 진심어린 격려가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홀다 "네, 맞아요."
"정말 그 때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요. 그래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힘을 내라고 편지를 보낸 것이었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꼭 성취하세요"

▲ 신혼부부가 사는 집 '바이어랜드'.
ⓒ 한나영
- 다시 만나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면서요.
"홀다가 혼자되어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동생으로부터 들었어요. 저도 제 아내가 몇 년 전에 죽어 실버타운에서 혼자 살고 있었고요. 혼자 살면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동생이 홀다 얘기를 해주더군요. 그래서 연락을 하고 캘리포니아로 달려간 것이었죠."

- 홀다에게 어떻게 프로포즈를 하셨나요?
"캘리포니아에 가서 홀다를 만나고 온 뒤 마음을 정했어요. 그래서 전화로 프로포즈를 했죠. '나와 결혼해 주겠소?'"

- 뭐라고 하시던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예스, 예스, 예스' 하더군요. 무려 세 번이나."
홀다 "호호호."

- 신혼여행은 가시나요? 신문에는 남태평양이나 지중해, 아니면 데이튼의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으로 가신다고 했던데요.
"그럼요. 가야죠. 글쎄 어디로 갈 지는 아직 안 정했어요. 신부에게 물어봐야죠. 어디를 가고 싶은지."
홀다 "하하. 남태평양이나 지중해는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일 테고요. 아마 데이튼에 가게 될 것 같아요."

-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영화 제의가 오면 OK를 하실 건가요? 저도 두 분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시나리오로 써 보고 싶은데요. 만약 출연 제의가 온다면 응하실 건가요?
"누군가를 즐겁게 하기 위한 상업적인 영화 제작은 싫어요. 그냥 우리의 러브스토리는 한 편의 동화라고 보시면 돼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

- 젊은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홀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꼭 성취하세요."
"사랑 안으로 뛰어들라는 거죠. 거기서 피하지 말고요."

귀가 잘 안 들리고 앞이 안 보이는 휴, 온 몸에 암이 다 퍼진 홀다. 두 사람 모두 8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테를 두른 노년이었지만 이들의 가슴은 여느 청춘 못지않게 뜨거웠다. 인터뷰 내내 웃음꽃이 피어났고 이들은 은근하지만 열정적인 스킨십을 과시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를 배웅하러 홀다가 엘리베이터까지 나왔다. 홀다를 발견한 어느 할머니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안녕, 홀다. 신혼여행 다녀왔어요?"
"아직이요. 곧 갈 거예요."

결혼식을 마친 휴와 홀다 부부의 허니문은 이곳 실버타운에 있는 모든 가족들의 관심사였다.
2007-05-03 14:5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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