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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9. 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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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는 나만의 사생활은 없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정현순(jhs3376) 기자   
언제부터인가 집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다. 수시로 무슨 번호를 부르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것이 무슨 소리일까? 저 앞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소리가 들릴 적마다 나는 궁금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사람과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복잡한 사거리로 둘러싸여 있다.

▲ 파란 하늘과 감지기
ⓒ2004 정현순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려고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여기는 시청 교통과입니다. 지금 00마트 앞에 불법주차 되어있는 00자동차, 경기 0000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 됩니다"하는 그 목소리는 집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던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난 그때서야 그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그것은 멀리 있는 시청에서 불법주차 차량들을 잡기 위해 설치해 놓은 CCTV였던 것이다. 시청은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신호에 걸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가도 20여분 거리에 있다. 그 소리가 들리자 자동차 주인들은 재빠르게 자동차를 옮기기에 바빴다. 그러기 전에 그곳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주차를 시킬 수 있었고 나도 가끔씩 애용했던 곳이기도 했다.

어떤 운전자는 자동차 안에 있으면서도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파악을 못했는지 그 자리에 한동안 있기도 했다. 난 그 기계를 보고는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이지 이젠 어디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곳이 그렇게 변해 있는 사정을 아는 사람 중에는 늦은 밤 시간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밤10시쯤에 안심하고 주차를 시켜놓기도 했다가 화들짝 놀라 자동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 기계의 효과는 굉장했다. 언제나 불법주차한 차들로 복잡해서 사람이 다니기가 불편했었는데, 이제는 한가하다 못해 쾌적한 느낌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곳은 복잡한 공공장소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공공장소가 아닌 곳에서도 흔하게 CCTV가 설치된 것을 볼 수 있다. 나도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순간부터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있다. 6개월 전인가부터 내가 사는 아파트에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도 CCTV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끔씩 발생하는 도난사고로 불안해 하는 주민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때 나는 그것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이 사이에 고춧가루는 없는지 확인도 해보고, 스타킹을 다시 잘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다는 그것이 설치되어 경비실에서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들짝 놀라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직도 그 버릇이 종종 나오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는 나만의 사생활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CCTV를 설치하고는 거짓말처럼 아직까지 도난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하주차장 입구에, 각 아파트 통로입구에, CCTV를 설치했다는 스티커를 붙여 놓은 효과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위험과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니 좋은 점도 있는 것이다. 한참 잦은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관리실에서 조심하라는 안내 방송을 할 땐 낯선 사람을 보면 일단 경계가 되곤 했었다. 그리고 집을 비우기가 왠지 불안했었다.

요즘은 백화점, 지하철 등 공공장소 화장실에서도 무심코 볼일을 보다가도 그런 생각이 나면 부쩍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한다.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대사회에선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고, 많은 부분은 사람의 손을 덜어주고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이웃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대문을 열어놓고 이웃집을 왔다 갔다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대문을 안 잠그고 외출을 해도 우리 집은 도둑이 가지고 갈 것도 없어"했던 그 여유로움이, 넉넉함이 간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곳 역시 CCTV가 나를 입력하고 있다. 어딘가 운전하고 가는 도중에 저 멀리서 '속도위반감지기'가 또 나를 보고 있다. 운전대를 잡은 내 손과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던 내 발이 서서히 긴장하기 시작한다.

2004/09/22 오전 9:54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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