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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에 고자질하는 정치’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0. 2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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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에 고자질하는 정치’

행정수도 이전 작업에 빗장이 걸렸다. 이 문제를 두고 그동안 여야는 날카롭게 맞선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힘을 빌려 그 답을 찾아낸 셈이다. 여야가 합의하고, 절대다수 의원의 찬성으로 태어난 법이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으로 내팽개쳐진 형국을 맞았다. 삼권분립 원칙 아래 국회가 행사한 입법권이 또하나의 헌법기관에 의해 무참하게 저지된 것이다. 뜻밖의 ‘소용돌이’는 몇가지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국회에서 행사한 입법권의 정당성을 헌재에 확인하는 일은 합당한 일인가. 삼권분립 정신이 훼손될 위험은 없는가.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초하는 일은 아닌가? 물론 헌재는 헌법 체계의 정상적인 운용을 돕는 ‘마지막 문지기’로 일컬을 만하다. 헌재가 1987년 민주항쟁의 산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헌법정신을 짓밟는 철권통치를 막을 파수꾼으로서의 책무가 헌재에 맡겨진 터다. 그러나 헌재가 입법의 간섭자는 아니다. 국회의 입법활동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입법권이라는 고유권한을 부여받은 만큼 그 권능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여야가 합의해 만든 법이라면 그 존재의의를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국회가 만든 법을 헌재에 들고 가 ‘허락’을 받는 꼴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는 입법의 주체인 국회의 권능을 부정하는 난센스 아닌가. 스스로 만든 법이 사망선고를 받는 날, 환호하는 일부 의원들의 모습은 대한민국 국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헌재의 ‘자의적인’ 법 해석도 새삼 곱씹어 볼 대목이다. 행정수도 이전 작업을 중단시킨 헌재 결정에 동의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었다. 이른바 ‘관습 헌법’의 실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터다. 적어도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입법 과정과 그동안의 논란을 돌이켜 보면 ‘관습 헌법’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지난해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도 힘을 보태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법이 통과됐다. 전체 국회의원 273명이 ‘관습’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지역과 지역, 정파와 정파 사이에 벌어진 논란과정에서도 ‘관습’은 제기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등장한 각종 토론마당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헌법재판관 7인의 법해석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4700만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존재하는 어긋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관습 헌법의 결정적인 요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중적인 법감정’ 아닌가.

 

우리는 ‘헌재에 고자질하는 정치’의 부작용을 경계한다. 어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여권이 추진하는 4대 개혁입법에 대해, 헌법 체계에 어긋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행하면 ‘투쟁의 외길’을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안도 굳이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의 이번 결정을, ‘관습을 깨는 일’ 곧, 개혁을 가로막는 버팀목으로 악용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레 4대 개혁입법이 표류할 수 있다는 성급한 예측이 나오는 현상을 주목한다. 그러나 시대흐름은 이미 개혁의 편을 들고 있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고 있다. 이른바 ‘관습’은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은 국회의 비생산성과 ‘낭비구조’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국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로 한 헌재의 결정은 국회에 대한 ‘금치산 선고’와 다를바 없다. 바야흐로 국회가 본연의 권한과 책무를 되찾는 일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개혁이 법과 제도의 변화를 의미하는 만큼, 국회는 입법권을 제대로 써 불명예를 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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