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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에 다시 없을 마지막 사랑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0. 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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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에 다시 없을 마지막 사랑…
13일 여수 남산요양원에서 노부부 한쌍 '황혼결혼식'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정송호(yeosuin) 기자   
▲ 생의 마지막 사랑을 이룬 황혼녘의 두부부
ⓒ2004 정송호
지난달 21일 소개된 노부부의 사랑 "죽기 전에 소원 이뤘지요"의 주인공 정철(81), 김영진(71) 두 노인의 아름다운 황혼결혼식이 지난 13일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남산요양원 정원에서 주변의 축하 속에 전통 혼례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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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사랑 "죽기 전에 소원 이뤘지요"



▲ 신랑입장
ⓒ2004 정송호
이 황혼 결혼식을 총 지휘하는 집례자가 "신랑출"을 외치자 한아름 꽃바구니를 든 소녀와 그 뒤에 홍등·청등을 든 두 소녀가 앞장을 서고 건장한 청년 네 명이 사인교에 사모관대를 한 늙은 새 신랑을 태우고 식장에 들어섰다.

하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좋겠다. 나이 들어서 또 장가가고." "야, 얼마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 정절 상징 기러기
ⓒ2004 정송호
전통혼례에는 꼭 기러기가 등장한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서로 인연을 끊지 않는다고 해 길조로 여겨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기러기가 상위에 올랐다. 신랑이 혼례식을 하늘에 알리고 맹세의 뜻으로 북쪽을 향해 재배했다.

하지만 정철 할아버지는 절을 하지 못하고 목례를 했다. 왜냐하면 몇 해 전 무릎 수술을 한 데다가 골다공증을 심하게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식 내내 거동의 불편함을 애써 참고 있었다.

신부측 기러기가 상위에 오르고 집례자가 "신부출"을 외치자 신부를 태운 가마가 식장으로 들어왔다. 가마 속 신부의 주름진 얼굴에 험난했던 세상살이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은 얼굴에 핀 환한 미소를 보면 엄연한 새 신부였다.

▲ 신부
ⓒ2004 정송호
할머니는 선천성 장애로 집례자의 말을 듣지 못했지만 혼례식 내내 정철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화촉이 밝혀지고, 몇 번 절이 오가고 또 술잔도 교환해 마시면서 어느덧 혼례식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신랑신부와 함께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료 어르신들도 휠체어에, 의자에 앉아 부러운 눈빛으로 행복을 기원해 주고 있었다. 혼례식을 치르기 위해 일일 찻집 준비부터 신혼방 꾸미기 그리고 혼례식 당일 하객 접대까지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남산요양원 가족들은 저마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 밝혀지는 화촉
ⓒ2004 정송호
"신랑·신부 각 합석", "방안면"을 집례자가 외치자 처음으로 신랑 신부가 한자리에 섰다. 신랑이 옆에 서자 신부는 손을 내밀고 얼굴을 들어 생의 반려자인 신랑 얼굴을 바로 보았다. 이것으로 혼례식 막이 내렸다.

신랑과 신부가 한자리에 서고 혼례식이 끝나자 하객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펴지고 노부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혼례식을 준비했던 남산요양원 위덕훈 원장은 "오늘 결혼한 노부부는 이번 사랑을 놓치면 여생을 후회하고 살 사람들"이라며 두 노인의 사랑이 극진함을 말해주었다.

이번 황혼 결혼식에서는 여수시 여성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봉사활동을 펼쳤고 우리소리예술단, 한울림풍물단이 축하공연을 펼쳐졌다.

▲ 노부부의 결혼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는 동료들
ⓒ2004 정송호
특히, 혼례가 끝나고 한울림풍물단의 축하공연이 이어지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연신 "잘한다"를 외치며 흥겨워했다.

이 날 전통혼례식에는 돌산 백초초교 우두분교 학생 37명이 서은주 선생님의 손을 잡고 체험 학습을 와 시종일관 진지하게 전통혼례식을 지켜보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노부부의 전통혼례에 대한 학생들 반응은 다양했다. '신기하다', '절차가 복잡해서 나는 이렇게 결혼 안 해', '옛날에는 결혼식 한번 하기 너무 힘들었겠다' 등등.

▲ 현장체험학습을 온 인근 백초초교 우두분교 학생들
ⓒ2004 정송호
이 황혼결혼식을 도와준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객들을 위해 떡을 해 온 인쇄업자인 후원자. 야채불고기를 가져온 식당 사장, 호박을 키우며 남을 돕는 숨은 후원자, 지역 봉사단체 대표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객들을 찾아 일일이 악수를 하며 고마움에 대한 답례를 하던 할아버지는 어느덧 얼굴이 붉어졌다. 하객들이 건네는 축하주에 홍조 띤 얼굴이 되었던 것이다.

말 못하는 신부는 이런 새신랑을 보고 손짓으로 옆에 앉게 해 자신들만이 이해하는 대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새로운 부부의 연을 시작해 갔다.
이기사는 새여수신문(www.newyeosu.com)에도 송고 되었습니다.

2004/10/23 오후 12:01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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