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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과 부처님이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정말 오랜만에 도시에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하도 궁금하여 먼 길을 쉬지 않고 왔으니 무척이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깜박 잊고 지갑을 두고 왔습니다.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을 수 있을 텐데,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던 그 옛날 생각만 하다가 온종일 쫄쫄 굶었습니다. 하도 배가 고파 아파트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파트, 이름도 괴상했지만 보이는 게 아파트뿐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물을 사 먹으라니"
닭장처럼 생긴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이라 문을 두드리면 사람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도 열어주지 않고 안에서 자기네들끼리 중얼중얼하더니 잠잠했습니다.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하도 목이 말라 지나가는 아주머니한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물이라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은데 아파트마다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아주머니는 별 미친놈들 다 봤다는 듯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물은 저어기 슈퍼마켓에 가면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으니 얼른 가보시오." 두 분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물을 사 먹다니? 언제부터?
두 분은 배도 고프고 목이 말라 아파트 상가로 갔습니다. 어찌나 자동차가 많은지, 사람 다니는 길까지 자동차를 세워 두었습니다. 상가에는 술집 노래방 노래주점 모텔 여관 찜질방 목욕탕 식당 식육점 할인점 은행 학원 예배당 병원 약국 한의원 따위들이 즐비했습니다. 3층 전체가 이비인후과,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치과 따위의 병원으로 가득 찼습니다. 얼마나 아픈 사람들이 많기에…. 옛날에 없던 것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생겼는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 했습니다. 두 분은 그제야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빛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굶주린 늑대처럼 눈빛이 사나워보였습니다.
두 분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날은 자꾸 어두워졌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돈을 구해, 밥도 먹고 싸구려 여관이라도 빌려 잠을 자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특수 자물쇠를 이중 삼중으로 채워 놓고 문을 열어주지도 않는 도시 사람들한테 버림 받은 두 분은, 마지막 끈이라도 붙잡기 위해 수십 억 수백 억 들여 지은 성당으로, 예배당으로 찾아갔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대답뿐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어디서 행패냐? 돈도 없는 거지같은 것들이 원, 재수가 없으려니…" 십일조니 주일헌금이니 교무금이니 기도 접수비니 지랄염병을 하면서 돈에 눈먼 인간들은 두 분을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모든 곳에는 돈, 돈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은 할 수 없이 꿈을 버리고, 수십 년 전부터 애기 울음소리 끊어진 적막한 농촌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직 그곳에는 사람 냄새가 나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약과 구약을 팔아서 먹고 사는 약장사들(신부, 수녀, 목사, 집사…)은 도시에서 약 팔아먹기에 바빠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일에 지치고 그리움에 목이 말라 쓰러져 있었습니다. 젊은 것들이 농사지어 노인들을 먹여 살려야 하거늘, 노인들이 힘든 농사를 지어 젊은 것들을 먹여 살리다니, 두 분은 또 놀랐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뒤집혀도 그렇지.
두분이 눌러 앉은 곳 '농촌'
두 분은 들녘에서 돌아온 늙은 농부들과 밤이 깊도록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한 잔 나누다가, 어느새 술기가 올랐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팔아먹는 엉터리 약장사도, 그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고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 바보 같은 인간들도 없는 외로운 농촌 들녘에 하염없이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 되는 것인데, 돈은 돌지않고 사람이 돌아버린 세상에 내려오신 불쌍한 예수님과 부처님은 그만 들녘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지친 몸으로 술까지 몇 잔 마셨으니….
한평생 땅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늙은 농부들은 잠든 두 분을 고이 안아 집으로 모셨습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들은 예수님이 누군지 부처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수 천 년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한 식구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잠이 깬 두 분은 깜짝 놀랐습니다. 낮고 허름한 천장과 빛바랜 벽지와 아무렇게나 놓인 물그릇과 이빨 빠진 오래된 밥그릇들…. '여기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내가 찾아 헤매던, 가난한 백성이 있는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두 분은 이곳에 눌러 앉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분을 위해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막걸리도 만들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오늘도 두 분은 늙고 병든 농부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농사일 힘들고 지칠 때는 막걸리 몇 잔에 알큰하게 취해 어깨춤 추고,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며….
/서정홍(시인·경남생태귀농학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