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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금요일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영등포역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가 다 되어갔다. 밖에는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대낮도 아닌데 역내에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난 웬일인가 하는 생각에 그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들은 노숙자들이었고 내리는 비를 피해 모두 역 안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특히 젊은 남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더 안쓰럽게 했다. 그동안 TV나 신문에서 보아온 일들이 내 앞에 생생한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이 일자리를 잃고 쓰러지니깐 가족이 흩어지고 붕괴된 가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있을 남편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 며칠 동안 여행 얘기를 하고 난 뒤 짐을 풀면서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거실 한쪽에 남편의 작업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난 그 작업복을 보면서 "이거 빨 거면 빨래 통에 갖다 넣지 왜 여기다 놨어?"하니깐 남편은 "아니 아직 한 번 더 입고 빨아도 돼. 방에 놔두면 먼지 떨어질까봐 거실에 놓은 거야" 한다. 그 날은 남편의 작업복이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보였다. 남편은 신사 정장보다는 작업복 차림을 더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신사 정장은 집안에 경조사나 있어야 입을 정도다. 남편은 사무실보다는 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런 남편은 이 옷 저 옷 갈아입기가 귀찮다고 하면서 아예 작업복 차림으로 출퇴근을 하는 것을 편안해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남편은 "어때, 나만 편하면 되지"하곤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 어떤 싫은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또 나는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복 빠는 것을 귀찮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업복은 30년 동안 우리 가정을 지켜주었고, 우리 가족들이 먹고 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아이들 교육과 성장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 값진 옷이었다. 앞으로도 남편의 그 작업복은 우리 가정을 충실하게 지켜줄 지킴이 구실을 아주 성실하게 해줄 것이다. 일을 안 하면 골이 아파온다는 남편이 그날은 무척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난 남편의 작업복을 정성스럽게 빨고 있다. 작업복이 마르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옷걸이에 반듯하게 끼워서 걸어놓는다. 그런 모습을 본 남편도 기분이 좋았는지 "뭘 이걸 이렇게 걸어 놨어"하며 웃는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진작부터 그러지 못한 내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역에서 봤던 노숙자들이 생각난다. 날씨가 추워지면 그들은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언제쯤 경기가 좋아져 그들이 일자리를 찾고 흩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그들의 그늘진 얼굴에 하루라도 빨리 웃음이 깃들기를 기대해 본다. 다가오는 이 겨울, 그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가져본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편안해 하는 그 작업복을 입고 출근했다. "요즘 가장님들 어깨가 많이 무거우시죠? 힘들 내세요." | ||||||||||||
2004/11/13 오후 7:3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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