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정말 듣기 싫은 학벌 질문
2007년 09월 21일 (금) 독자 webmaster@idomin.com
요즘 학력을 위조한 사람들을 적발해내느라 온 나라가 난리 벚꽃 장이다. 한 사람의 학력위조 추적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진짜 학력을 들추어내고 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학력을 속인 사람도 문제지만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이 사회도 공범일 수밖에 없다. 고졸 출신 대통령을 두 분이나 당선시켰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한 것 같다.
몇 학번인지는 왜 물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공연히 남의 염장을 팍팍 지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기 마련이다. 무슨 단체나 모임에 가더라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그놈의 "몇 학번이에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짧은 글재주임에도 생활 중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펜을 드는 편이다. 투박한 글을 어디에나 막 들이댄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한 번씩 그놈의 "몇 학번이에요?" 소리를 듣는다. 나는 86학번이다. 가방 끈이 조금 짧은 86학번이다. 소주로 치면 2홉짜리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그러려니 하고 말면 되는데 어떤 사람은 꼭 "어느 대학이에요?" 하고 집요하게 물어온다. 그것도 요즘은 익숙해져서 그냥 씩 웃고 만다.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력을 묻는 말에 군색하게 "예, 전문대학 나왔습니다"하고 대답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야릇하게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실망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괜한 질문 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보인다.
예전에 나도 여러 번 학력을 위조한 적이 있었다. 전천후로 사무실이나 현장을 들락거리며 취업을 한 탓에 고졸로 이력서를 제출한 데가 많았다. 학력을 거짓말로 높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낮춰서 취업을 한 것이다. 지금의 직장에도 그렇게 입사를 했었다.
창원의 음악공연장에서였다. 시간이 남아 휴게실에서 대기 하던 중 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회원을 만났다. 지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좀 섞여있는 모임이다.
인사를 나누다가 고교시절 이야기로 이어지더니 또 그놈의 "어느 학교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을 한다. 지금은 인문계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공고였었다. "아무개 고등학교 나왔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이 사람은 집요하게 후벼 판다. "그럼, 연합고사 출신이세요?" 하는 소리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내가 졸업한 학교가 공고인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확인사살 하려고 재차 묻는 것이다.
내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예, 그 당시에는 비인문계였습니다." 얼마나 군색하고 우스운 대답인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공고면 공고, 인문계면 인문계지 비인문계는 또 뭔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한참을 웃었다. 그 사람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인문계를 말하다 보니 한창 유행하던 '신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지식인이면 지식인이지 신지식인은 또 뭐란 말인가. 지식인이 아닌데도 지식인 대접을 해 주겠다는 뜻인가.
"우린 모두 연대지요 하하하"
하여간 말이라고 만들어내면 다 말인가 보다. 그냥 생긴 대로 살지.
사천의 박재삼 시인 문학 모임에서의 일이다.
두 부류의 작가들이 술잔을 부딪쳤다. 예총 계열과 민예총 계열의 작가들이 장르 구분없이 순수한 문학 열정으로 모임을 했었다. 어떤 회원이 자기는 고대출신이라고 인사를 하니 다른 회원이 "나는 연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내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아 그래요 연대 나오셨구나… 어쩐지…" 속으로 웃음을 누르면서 "나도 연대입니다" 하고 슬쩍 농담을 해 보았다.
사실 나는 연대를 좋아한다. 그 회원 나를 보더니 의아해 하는 것이었다. "거시기 연대가 아니라 그냥 연대입니다." 설명을 해 주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연대가 좋은겨… 나도 연대여 연대…" 석사, 박사 실업자보다 공고, 전문대 나온 노동자가 얼마나 떳떳하고 당당한가. 사회에서 은근히 학력을 차별하며 열등감을 부추긴다고 굳이 학위를 취득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연대 출신들 아닌가. 학력차별 철폐 투쟁에 우리 연대출신들이 맞서 싸우자.
/예외석(수필가·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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