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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하지만 소중한 삶터를 일궈가는 황준익씨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2. 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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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테랑 구두수선공"
허름하지만 소중한 삶터를 일궈가는 황준익씨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희경(dijini83) 기자   
▲ 열심히 구두를 수선하고 있는 황준익씨.
ⓒ2004 윤태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도로에 인접해서 설치된 한 평 남짓한 황준익씨의 구둣방. 기자가 들어서자 그는 광내던 헝겊을 내려놓고 환한 웃음으로 "어서오세요"라며 손님 대하듯 편하게 의자를 권했다.

구두 수선공 경력 10년차라는 황씨.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그러나 92년, 부도가 나면서 직장과 함께 삶의 의욕도 잃어버렸다.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양복 깨나 입고 다녔던 그였기에 세상 사람들이 '구두닦이'라고 부르는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빚 때문에 부모님의 시골전답을 다 팔아먹고, 형제들의 돈까지 빌려 썼으니 언제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구둣방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구두닦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나이도 서른을 넘었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그가 구두를 '찍어 오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사무실이나 은행의 낯선 사람들에게 '구두 좀 닦으세요' 하기가 진짜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모기만한 목소리도 우물대다가 그대로 도망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사장에서 구두닦이로 변해야만 했던 처음 6개월이 그에게는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려야 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용기를 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그마한 구둣방을 차릴 수 있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개중에 까다로운 손님이 오면 마음 고생을 한다고 한다.

언젠가 일요일 아침, 취객이 손님으로 온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취객이라니 내키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구두를 닦아주었다. 다 닦은 구두를 건네며 "어휴, 술이 과하셨네요. 들어가서 쉬십시오"라고 인사를 했는데, 손님이 신용카드를 턱 내밀며, "계산해 줘"라고 하더란다. 구둣방에 카드기가 있을 리 없다.

결국 카드를 돌려주며 서비스로 해 드릴 테니 다음에 오시라고 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 황준익씨가 이런저런 손님들을 회상하며, 기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
ⓒ2004 윤태
손님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수선용 재봉틀을 '밤손님'이 떼어간 것이다. 가격이 무려 140만원대의 고가라서 큰맘 먹고 장만했는데 출근을 해보니 셔터를 뜯고 신발 깔창, 열쇠 이런 것들과 함께 모두 들고 갔다고. 손해보다도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희귀품이라 살 수도 없어, 수선을 맡기러 온 손님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게 더 속상했단다.

그러나 꼭 이런 손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 번은 칼질을 하는데 가죽까지 찢어지고 말았다. 그는 손님이 언제 찾아올까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구두주인은 호인이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사람이 실수 안 하고 살 수 있나요?"라고 말하더라는 것. 까다로운 손님들도 많지만 이렇게 마음 좋은 손님들이 있기에 기운을 낸다는 황씨.

그는 한 평 남짓한 구둣방에 앉아 있을 때 문 밖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몰아치면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비록 허름하고 좁은 장소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한 너무나도 소중한 '삶터'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시끄럽고, 마음이 불안할 때도 구둣방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위안을 받는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자신의 '삶터'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손님들이 다녀갔다. 딸의 구두 굽을 갈러 온 아주머니, 근처 사무실에서 구두를 닦으러 온 아저씨, 겨울에 신을 부츠의 앞창을 붙이러 온 아가씨…. 손님들이 들어설 때마다 서로 정답게 인사하는 데, 오랜 단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골이 많은가 봐요?
“그럼요. 이 자리에서만 8년 동안 하다보니 대부분이 단골입니다. 작은 구둣방이지만 절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고맙고 감사하죠.”

그때 앞의 상가에서 의류점을 하며 호형호제 한다는 최준빈씨가 구둣방으로 들어섰다.

"뭐야? 이 사람 인터뷰 하는 거야? 뭐 볼 것 있다고 취재를 해? 밥도 안 사고, 커피도 안 사고, 짠돌이도 이런 짠돌이가 없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절약은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했다. 황씨는 불효한 일이 너무 많아 돌아가신 어머니 몫까지 아버지에게 잘해드리고 싶어, 명절 같은 때 용돈이라도 챙겨드리려면 평소에 절약해야 한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황씨 같은 사람 없어. 내가 이 사람을 안 지 한 10년 됐는데, 열심히 잘해요. 못 하나 박고, 굽 하나 갈고, 칼질 하는 것도 허투루 안 한다니까. 예술이지 뭐 예술."

▲ 황준익 아저씨의 허름하지만 소중한 삶터.
ⓒ2004 윤태
황씨는 구두를 수선하는 것도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특히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닦는 것보다 수선을 맡기러 오는 분들이 많아, 손님의 스타일에 맞게 센스를 발휘해야만 마음까지 만족하는 수선이 된다는 것이다.

구둣방을 둘러보던 기자가 다가올 겨울이 걱정돼 "어떻게, 춥지는 않으세요?"라고 물으니 "벌써 여덟 해를 이곳에서 지냈는데 추울 게 있나요. 올해는 그래도 요 녀석이 있어 다행입니다"라며 전기난로를 쓰다듬는다.

겨울이면 한 평 남짓한 내부가 꽁꽁 얼어붙는단다. 기계들이 대부분 쇠인데다가, 가죽들도 딱딱하게 굳기 때문이다. 거기서 30분 정도 녹기를 기다리며 앉아있을 때는 힘들지만 올해는 친구가 구해준 전기난로 때문에 그나마 따뜻하겠다며 소탈하게 웃어보였다.

기자가 요즘 사회문제인 청년실업에 대해 묻자, "젊은 사람들이 펜대 잡고 일하려고만 하지,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니 걱정입니다. 기술이라도 배우면 그래도 밥벌이는 문제가 없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하는 황씨.

매일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항상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진다는 그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작은 구두 가게를 내고 싶다고 했다.

이제 '구두닦이'가 아닌 베테랑 수선공으로서 "구두를 수선하는 것처럼, 손님들의 마음까지 깨끗하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황씨의 얼굴이 말끔하게 닦은 구두처럼 빛났다.
이 글은 <월간 아름다운 사람들> (http://www.finepeople.net) 2005년 1월호에도 송고할 예정


2004/12/06 오후 6:4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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