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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불편도 그리운 그 시절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2. 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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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불편도 그리운 그 시절
슬비·예슬이랑 함께 찾은 '근·현대 교육자료 특별기획전-친구야! 학교가자'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돈삼(ds2032) 기자   
▲ ‘근·현대 교육자료 특별기획전-친구야! 학교가자’에서 선보이고 있는 가정집 안방 풍경
ⓒ2004 이돈삼
"아빠! 어렸을 때 이야기 해 주세요."

"응, 아빠 어렸을 때에는…."

슬비와 예슬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매번 저에게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챕니다. 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잠이 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기도 해서 저 또한 곧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습니다. 밑천이 바닥난 것이지요.

"아빠 어렸을 때 이야기 해주세요."

어젯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 줄까? 으음…."

뜸을 들이다가 마땅한 이야기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다. 내일 이야기해줄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면 그만 자야지."

"아∼아빠! 딱 하나만 해 주세요. 으∼응."

"그러면 내일, 아빠가 어렸을 때 썼던 책이랑, 교복이랑 보여줄게. 도시락도. 자, 그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어디서요?"

"응, 목포에서 전시하고 있대."

"꼭 보여주실 거죠."

"그래, 약속."

▲ 기억 나시죠? 비닐우산!
ⓒ2004 이돈삼

▲ 1970년대 학교교실 풍경. 태극기 밑으로 칠판이 있고 그 옆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걸려 있습니다.
ⓒ2004 이돈삼
12일 일요일. 슬비와 예슬이랑 '근·현대 교육자료 특별기획전-친구야! 학교가자'가 열리고 있는 목포자연사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를, 이야기가 아닌 실물로 보여주면 훨씬 현장감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이죠.

전시실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갑자기 시계가 20∼30년 뒤로 돌아갑니다. 현대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격동의 시대로.

지금 생각해 보면 가난과 불편함도 그리움입니다. 검정고무신, 콩나물교실, 몽당연필, 뚜껑이 헐거워 매번 김칫국물로 온통 책과 가방을 적셔놓은 양은도시락, 교복과 모자….

가난하기에 부족했고, 부족하기에 불편했던 시절이었지요. 그것도 불과 20∼30년 전이었습니다.

전시실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교과서와 공책, 문구류 학습교구, 졸업장, 교복 등 200여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정집 안방과 학교 교실, 학교 앞 점방 풍경도 재현해 놓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한 목소리로 노래했던 기억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죠. 아이스께끼 상자 앞에서는 텅 빈 주머니만 만지작거리던 기억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 책꽂이. 실력수련장과 표준전과가 눈에 띕니다.
ⓒ2004 이돈삼

▲ '친구야 !학교가자' 특별기획전에는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2004 이돈삼
슬비와 예슬이는 교실풍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슬비는 대형 주판을 만져보면서 셈법을 물었습니다. 예슬이는 칠판 앞에 서서 분필로 무엇인가를 쓰면서 선생님 흉내를 냈습니다. 이 의자, 저 의자에 앉아보면서 먼지 나는 책을 떠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장작을 땔감으로 하는 난로 위에 포개져 있는 양은도시락은 압권이었습니다. 슬비와 예슬이는 말로만 들었던 양은도시락을 열어보면서 지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도시락이죠?"

"이것이 반찬통이에요?"

슬비와 예슬이가 크고 작은 도시락을 들고 서로 확인을 요구합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도시락을 꺼내 난로 위에 올려놓고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쉬는 시간마다 열어본 기억이 새록새록 묻어났습니다. 큰 주전자에다 보리차를 넣은 물을 끓여 밥에다 말아먹던 기억도 되살아났습니다.

슬비가 풍금을 연주하자 금세 음악시간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되돌아보면 매우 열악한 교육환경이었지요. 하지만 인간적인 정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대한 향수에 흠뻑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전시물건은 이밖에도 더 있었습니다. 애틋함이 묻어나는 책가방과 '추억'이라는 표지를 달고 있는 졸업앨범, 수·우·미·양·가로 구분돼 있는 통지표, 그리고 별로 인연이 없던 상장과 가로길이가 더 긴 졸업장도 있었습니다.

▲ 장작난로 위에 포개져 있는 양은도시락을 들어보이고 있는 예슬이와 슬비.
ⓒ2004 이돈삼

▲ 옛 교복. 남학생 하복과 여학생 동복, 남학생 동복 그리고 교련복이 보인다.
ⓒ2004 이돈삼
공책과 필통, 몽당연필 같은 문구류와 산수, 승공통일의 길, 방학공부 같은 교과서류 그리고 검정고무신, 마징가제트 운동화 등 그리움을 자극하는 물품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소풍날 어김없이 들고 다녔던 물통과 '동명화판'이란 글씨가 선명한 미술교구. 콩이나 팥 또는 모래를 넣어 헝겊으로 싼 오자미 등. 오자미는 운동회 때 박 터트리기에 쓰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근·현대 교육자료 특별전-친구야! 학교 가자'는 추억의 화로나 다름없었습니다. 골목마다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깔사탕이나 꽈배기로 아이들을 유혹하던 점방은 당시 아이들의 모습을 잔잔히 머금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난해도 정겨웠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나던 그때였죠.

먼지 나는 신작로에서 동무들과 뛰어놀다가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신기한 듯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지요. 여름에는 물놀이로, 겨울에는 썰매타기와 눈싸움으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온 시간들…. 마냥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이었습니다.

슬비와 예슬이한테도 아빠가 학교에 다닐 적 교육환경을 직접 보여 주면서 세대간 문화적 이해의 폭을 넓힌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문화의 발자취도 되짚어 볼 수 있었고요.

목포자연사박물관과 목포문화원이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내년 1월9일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 특별기획전 '친구야! 학교가자'가 열리고 있는 목포자연사박물관 전시실
ⓒ2004 이돈삼

▲ 목포자연사박물관 전시실
ⓒ2004 이돈삼
'근·현대 교육자료 특별기획전-친구야! 학교 가자'가 열리고 있는 목포자연사박물관은 세계와 지역의 자연 생태와 공룡 화석, 운석 등 지구과학 그리고 문화예술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사박물관입니다. 연면적 2700여 평에 자연사관과 문예역사관 등 모두 13개 전시실로 꾸며져 있지요.

자연사관 중앙 홀에는 대형 초식 공룡과 디플로도쿠스를 공격하는 일로사우루스 등이 실제 크기로 연출돼 있습니다. 지질관에는 화석, 운석, 보석 등 690점이 전시돼 지구 역사 46억년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육상 생명관에서는 동물 박제와 두개골 등 160점과 각종 식물, 곤충 표본 및 화석 630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수중 생명관에서는 바다 속 생물과 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이 2.5m에 이르는 초대형 가오리와 바다의 사냥꾼인 상어, 밍크고래의 진품 전신골격도 볼 수 있습니다. 지역생태관에는 우리나라 서남해안 자연생태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기증품 전시실에서는 목포 출신 김성훈 박사(전 농림부장관)가 직접 수집한 세계 각지의 조개, 고둥류 등 2300여 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서남해안 갯벌 생태계와 천연기념물인 황소가리, 어름치 등을 직접 기르거나 보여주는 디오라마와 기획전시실도 있습니다. 기존 향토문화관을 정비한 문예역사관은 수석전시실, 운림산방 4대 작품실, 오승우 작품실, 문예역사실, 화폐전시실로 이뤄져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쉽니다. ☎ 061-276-6331

2004/12/13 오전 11:3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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