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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날입니다. 우리 가족은 동네 뒷산에서 새로운 한 해를 여는 태양을 맞았습니다. 아들은 “태양을 낳으려고 산과 바다와 구름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하지만 출산에는 고통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음을 저가 어찌 알리요? 나는 소원을 빌고, 또 몇 가지 다짐도 했습니다. 그 첫째가 일주일에 한 번씩 설거지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막내 처남이 결혼을 하는 날이므로 아내는 아침부터 부산합니다. 아침밥을 대충 챙겨 먹고서 밥상을 그대로 물려둔 채, 아내는 처제와 처형을 싣고서 음식준비를 하기 위해 처갓집으로 향했습니다. 나도 네 분의 누나들과 막내형님이 어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집에 왔다는 전화가 와서, 아이들에게 “너희 스스로 점심밥을 차려 먹으라”고 이르고는 서둘러 고향집으로 출발합니다. 형제들과 헤어진 후 오후 여덟 시경에 집에 도착하였으나, 아내는 아직도 친정에 있습니다. 된장찌개를 데우고 김치를 썰어서 접시에 담아내고, 김 두어 장을 구어서는 아이들과 저녁밥을 먹습니다. 하루 동안 사용한 그릇들이 꽤 됩니다. 아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딸은 텔레비전을 봅니다. 두 번째 결심은 저 놈의 텔레비전을 아예 치우는 것인데,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실행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내가 부엌에 나타나면 “사내 자식이 정지에 들락거리면 고추가 떨어진다”고 하시며 호통을 치셔서 아예 부엌에는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눈을 부비면서 마루에서 난 쪽문으로 부엌을 보면, 어머니는 하얀 사발에다 물을 가득 담아서는 손을 싹싹 비벼댑니다. 그리고 행주를 깨끗하게 빨아서 밥솥과 부뚜막을 정성들여 닦습니다. 그리고 황토로 된 부엌바닥도 몽당 빗자루로 곱게 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부엌은 언제 봐도 반질반질 윤이 났습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나는 부엌에 나가길 꺼려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므로 부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도 항상 아내나 아이들에게 물심부름조차 시켰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도 부엌을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아내가 없을 때는 더러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 먹인 적은 있으니까요. 이제 싱크대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앞치마는 입지 않았습니다. 거추장스럽기도 하거니와 몸에 걸쳐보니 영 낯설고 어색합니다. 물론 고무장갑도 익숙하지 않아 끼지 않습니다. 우선 물비누를 빈 그릇에 부어놓고 물을 조금 탑니다. 그릇에 남아있던 음식물 찌꺼기들을 비닐봉지에 담습니다. 그리고 개수통 하나를 완전히 비워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고, 빈 그릇들을 넣습니다. 5분 정도 물에 불린 그릇들을, 물비누를 잔뜩 묻힌 수세미로 여러 번 닦습니다. 닦은 그릇은 비어있는 다른 개수통에 모아둡니다. 이제 밥솥과 찌개냄비를 씻습니다. 검게 눌어붙은 때를 철수세미로 힘을 주어 빡빡 문지릅니다. 아내가 결코 벗겨낼 수 없던 묵은 흔적들이 조금씩 지워집니다. 아들이 돕겠다고 옷을 걷고 나서지만 “너는 장가가서 네 마누라한테나 해 주어라. 이건 아버지의 몫이다”며 자리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나는 다시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둡니다. 씻은 그릇들을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수도꼭지를 조금 틀어서 흐르는 물에 행굽니다. 몇 번을 맨손으로 문지르자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납니다. 마른 행주로 그릇에 있는 물기들을 훔쳐서는 건조대 위에 엎어 둡니다. 개수통과 그 안에 있는 음식물 받이통을 비우고, 마지막으로 개수통과 싱크대, 가스렌지를 깨끗이 닦습니다. 행주는 남은 물비누로 깨끗이 빨아서 널어 둡니다. 이 행주들은 아내가 삶아서 말리겠지요. 아내는 저녁 8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옵니다. 그릇을 씻으러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참 후 아내는 조용히 저를 안아 줍니다. 아내에게는 일상적인 일들이 저에겐 특별한 경험이 됩니다. 손에 미끄러운 세제가 묻어서인지 그릇을 몇 번씩이나 놓치면서, 그동안 한 번씩 그릇을 깨트렸던 아내에게 “자~알 한다”면서 조소했던 일들이 부끄러워집니다. 나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랑받는 주부가 되려 합니다. 동참하실 분! | ||||||||||||
2005/01/03 오후 8:55 ⓒ 2005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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