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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오마이뉴스]자폐아 청이가 한글을 배우다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3. 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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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인 청이가 한글을 배우다
병과 더불어 살며(4)
  남궁현(kolick15) 기자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의 소원은 아이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 다른 아이들처럼 말을 잘하게는 안 되겠구나" 느끼게 되고 어느덧 한계를 인식하면서 벽을 인정하게 된다.

그다음 소원으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있다. "말을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한글을 배울 수 있을까"하고 단지 희망사항으로만 생각했었다.

청이는 특수교육원에 다니면서 오후엔 집에 와서 빈 시간이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학원엘 데려갔다. 그 학원은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주로 다니는 속셈학원이었는데 유치부 어린이 반도 있었다.

아내는 그냥 지나치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학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청이에겐 도움이 됩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동물의 그림책이라도 선생님이 보여 주시면 안 될 까요."

청이의 상태를 설명을 드렸는데 뜻밖에 나이가 지긋하신 원장님은 다음 날부터 청이를 보내라고 말씀하셨고 청이를 어느 여선생님이 맡게 되었다.

그 후 청이는 그 학원엘 계속 나갔고 내가 데리고 가는 날도 많았다. 한 30분쯤 지나면 다시 가서 밖에서 기다리다 청이가 나오면 데리고 집으로 왔다.

청이는 학원 가방을 들고 가기가 싫지 않은 듯 꾸준히 다녔다. 가방 안에는 연필도 없고 공책이 한 권 달랑 들어 있었다. 연필은 잊어버리거나 가지고 다니는 것이 힘들까봐 선생님이 일부러 그러셨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한 달쯤 지나 청이의 공책에는 비뚤비뚤 서툰 글씨체로 "가, 나, 다…"라고 써 있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은 모음도 써 있었다.

두 달쯤 뒤에는 공책이 한글 그림책으로 바뀌고 청이는 사과나 배 등의 과일 그림아래에 있는 빈 칸에 과일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원에 가서 작은 칸막이 교실 안을 보니 여선생님은 청이를 혼자 놓고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아버지 할 때 아", "오이 할 때 오", "자동차 할 때 자" 그렇게 노래를 부르시면 청이는 선생님을 한 번 쳐다보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도 하다가 그 글자를 적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선생님의 얼굴이 기억이 안 나지만 아내나 나나 고마움은 말할 수 없다. 우리로선 참 어렵고 내심 포기했던 청이가 한글 익히는 일을 물 흐르듯이 매끄러운 방법으로 가르쳐 주셨다. 청이에겐 참으로 훌륭했던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청이는 지금 한글을 잘 안다. 책을 펼쳐들고 여기저기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글자를 물어보면 한 글자 한 글자는 발음을 하지만 단어나 문장을 이어 읽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요즘도 청이는 말하기를 아주 싫어한다. 작년부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엄마의 핸드폰을 가져다가 문자메시지란에 "우유" "과자"등의 낱말을 적어 놓는다.

나는 가끔씩 예전의 그 선생님이 청이를 계속 가르쳤더라면 청이가 낱말이나 문장을 이어서 읽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05/03/15 오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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