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펌글/오마이뉴스]요즘 소도시 초등학교 전교회장 선거

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3. 18. 20:08

본문

728x90
"여러분의 반창고와 고약이 되겠습니다!"
요즘 소도시 초등학교 전교회장 선거 이렇습니다
  송주현(songjh03) 기자
▲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부터 선거하는 날까지는 교문이 늘 이렇게 시끌벅적합니다. 매우 치열할 것 같아 보이지만 잠시만 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 표를 부탁하는 아이나 유권자인 아이나 그저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어 합니다.
ⓒ2005 송주현
선거철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정치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급 초중고교의 학생회장 선거를 말합니다. 이미 머리가 커버린 중고등학교의 학생회장 선거는 당연히 그렇다치고, 초등학교에서 하는 전교회장 선거는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언제 저런 면이 있었나 싶게 점잖고 무게 있는 유세를 하는가 하면, 가능하면 자기 반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하여 선거운동을 자처하는 친구들의 봉사가 어른들의 선거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간혹 아이들의 선거에 부모들이 개입하여 자장면을 사주네 햄버거를 사주네 하는 보도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그럴 시간과 여력이 있는 일부 동네의 이야기일 것이고 적어도 제가 근무하는 이 곳 지방 소도시의 선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소도시에서의 회장 선거는 학생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이런 저런 친인척으로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인 데다가 얼굴만 보아도 대부분 뉘 집 아들, 딸인지 아는 처지라 누가 회장으로 선출될지 관심이 제법 큰 편입니다.

▲ 출마한 후보자들이 계단에서 유권자들의 눈길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냥 대충 손들어서 반장 뽑던 옛날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지요?
ⓒ2005 송주현
그렇다고 어른들이 선거 운동을 시켜줄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선거에 더 열중하게 되고 투명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이들 선거라지만 어른들의 선거처럼 절차와 형식이 똑같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자 등록을 받고 선거운동을 하고 유세를 한 다음 투표를 하는 절차. 투표가 끝나면 개표를 하고 즉시 선거 결과를 발표하면 환성을 지르는 아이도 있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지요.

후보로 출마한 아이는 종이를 길게 잘라 만든 어깨띠를 하고 아침마다 교문 앞에, 또는 점심시간 급식소 앞에서, 쉬는 시간 계단마다 서서, 혹은 교내 청소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애씁니다.

얼굴이 발갛도록 서서 선거 운동을 해야 하지만, 누가 이런 일을 시킨다고 하겠습니까? 유권자들(4-6학년)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후보들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하고 간절해 보입니다. 선거가 이렇게 진행되고 회장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절차와 책임감을 중시하는 사회로 바뀌지 않을까요?

▲ 선거위원회 위원장 어린이가 사회를 보고 한 명씩 차례로 나와 자기가 전교회장이 되어야 하는 까닭을 힘주어 설명합니다. 방금 전까지도 웃고 농담하던 아이들이 진지해지면 그렇게 똑똑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2005 송주현

▲ 선거일이 다가 올수록 마음이 급해지는 건 오히려 유권자들입니다. 대부분 아는 동네 형, 누나들인데 정말 누굴 찍어야 하는지 난감한 것이지요. 즐거운 고민입니다.
ⓒ2005 송주현
드디어 선거일인 오늘(17일). 아이들은 저마다 유세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학교 방송실에서 방송연설을 한 번 더합니다. 각 교실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마치 대국민 선거 유세를 보듯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저학년 동생들에게 무조건 운동장을 양보하겠다는 포부부터 어릴 때부터 회장 되는 것이 소원이었으니 한 번만 뽑아 달라는 읍소형까지. 유권자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또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후보로 나가고 싶다는 꿈을 키워주기도 하는 어린이 선거.

전에는 공부 잘하는 어린이들만 후보로 나온 적도 있지만 요즘은 성적 제한이 없어서 개성 있고 재미 있는 어린들이 회장으로 선출되는 경향입니다.

▲ 기표소와 투표함은 대개 그 지방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빌려다 씁니다. 국회의원 선거 하는 엄마를 따라 갔다가 본 기표소에서 자기도 투표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옵니다.
ⓒ2005 송주현

진지한 경쟁과 깨끗한 승복.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줄반장이라도 맡게 되면, 아이들은 걷는 폼부터 의젓해집니다. 우리나라 모든 어린이들이 회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선생님, 이거 몇 번 접어서 넣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형 여러 명인데 다 찍으면 안되나요?" 직접·비밀투표 등 민주적인 선출방식에 아직 익숙하지는 못하지만 이것이 민주시민의 첫 경험인 건 분명하지요?
ⓒ2005 송주현

2005/03/17 오후 4:29
ⓒ 2005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