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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100년 안에 소멸된다?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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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100년 안에 소멸된다?
우리말 현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때다
박종국 (jongkuk600

“얘야, 아침 먹어라.”

“엄마, 노타임이에요, 샴푸하고 린스하려면. 더구나 오늘 체육수업은 그라운드에 나가는 날이라 선 크림도 발라야 해요. 그냥 토스트에다 주스 한 컵으로 패스 할래요. 토마토 주스 줘요!”

“그런데 어쩌나? 토마토 주스 다 떨어졌는데, 오렌지 주스 먹으면 안 될까?”

“그러죠 뭐. 에그 프라이 하나 서비스하세요.”

“알았다. 어서 씻어.”

 

이런 대화는 입시를 앞두고 학생을 있는 집이라면 일상적인 아침대화다. 요즘은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바쁘다. 여느 집이나 마찬가지다. 아들들과 얼굴 맞대고 밥 먹을 겨를이 없다. 자정 가까이 귀가하는 아이 이것저것 챙기고 나서 꼭두새벽에 잠들고 나면 아침마다 잠 깨워서 등교시키기에 바쁘다.

 

늘 잠 부족에 겨운 아이는 거의 잠을 깨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아침마다 시간에 늦지 않게 밥 먹이고, 등교시키기 위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전략전술이 총동원된다. 그러나 아들은 그나마 낫다. 딸아이를 둔 집안에서는 어떨까?           

 

그렇지만 정작 하고픈 이야기는 다른 데 있다. 우리말 현실 때문이다. 집에서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세상 좋게 어울리는 놀이마당에서, 함께 여행이나 등산을 하면서 무시로 엿듣게 되는 요즘 아이들의 말투에 무척 신경이 쓰인다. 그냥 상스러운 욕지거리라면 다그쳐서라도 바로 잡아주겠지만, 국적불명의 외래어나 외국어를 함부로 내뱉는 데는 얼굴이 찌푸려진다.

 

우리말 현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때다

 

그렇다고 내가, 평생을 바쳐가며 우리말, 한글을 지키려는 지킴이는 아니다. 당연히 한글지킴이라면 작고하신 이오덕 선생님이나 현재 한글문화연구원 박용수 이사장 같은 외고집을 가져야한다. 두 분은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입말을 살려 쓰고, 겨레말이 사랑받을 수 있는 길 찾기에 온 힘을 기울이셨다.

 

지금 우리말의 현실은 어떤가?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동네 간판을 쳐다보아도 옮겨 쓸 우리말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제는 미국에 의해, 미국말에 의해서 한국어는 물론, 외래어조차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길거리마다 영어학원이 미워터지고, 전국 곳곳에 영어마을이 성업중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있는 법. 원어민 강사들이 대거 영입되고 있다!

 

단지 잘못된 교육정책만을 탓할 게 아니다. 어차피 해방이후 반 백년을 반신불수로 살았고. 한글보다는 남의 나라 글공부시키는 것에 더 혈안이 되었던 까닭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학교에서 배운 외국어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몇 해 전 유네스코는 “한국어가 100년 안에 소멸 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부시지 않는데 남이 그냥 알아서 챙겨줄 까닭이 없다. 영국의 섹스피어와 독일의 괴테, 인도의 타고르를 봐라. 그들의 모국어에 대한 자존심이다.

 

"유네스코, 한국어 100년 안에 소멸 될 것"

 

또한 유려한 프랑스어와 인디언들의 자연어를 보라. 민족고유어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은 그 어떤 사회정치경제적인 것보다 우선한다. 천박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자본주의 잣대로 함부로 엉겨 붙지 않는다. 결코 버터 발린 말버릇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런데 불현듯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한 대목이 명치끝을 억누르듯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선생님은 교단에 올라서서

"여러분, 오늘은 나의 마지막 수업입니다.

베를린으로부터의 명령으로 내일부터는 알자스와 로렌의 학교에서는 독일말로만 가르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 하였다.

나는 그제야 선생님이 정장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학교의 교실 안에까지 들어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지 못했으나,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꾸짖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까지 내게 많은 꾸중을 들었지? 오늘의 공부를 내일로 연기하는 것이 라자스 어린이들의 가장 나쁜 버릇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부모님도 또 선생인 나도 나빴던 것이다."

선생님의 깨우침은 내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프랑스 말은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굳센 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들의 국어만 유지하고 있다면 자기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업이 끝나려고 할 무렵 프러시아 군의 나팔 소리가 울려 왔다. 그러자 선생님의 얼굴은 창백해지며 무척 아쉬운 듯이

"여러분, 여러분, 나는…나는…"

하고 할 뿐 말을 더 잇지 못하였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프랑스라고 하는 하나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들을 억지로 주입시키는 게 아닌, 마음속에서 스스로 우러나게끔 하는 게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다.

 

토박이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 정작 우리가 생활하는데 가장 밀착된 말이 토박이 말이요, 입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방송을 비롯한 매스콤 탓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낯붉어진다. 당장에 어른들이 그런 말을 쓰는 것을 꺼려하니까 모방본능이 강한 아이들이야 단박에 잊어버리고 만다.

 

지금의 돌아가셨지만 평생 학교문턱을 드나들어 본 적이 없어셨던 필자의 외할머니께서도 가끔씩 왕림하셨을 때는 어찌나 유창하게 남의 나라말을 줄줄이 말씀하셨던 지 놀라웠 때가 있을 정도였다.

 

"리코콘 어데 있노? 테레비 뉴스 좀 보구로. 근데 야는 와 이러카구 섰노. 젖은 머리는 드라이로 말리면 될낀데, 그리고 에미야, 믹스로 토마토 좀 갈아온나. 긴 글라스에 목이 긴 티 스푼도 하나 갖고 온나."

"저 탈란트 옷은 꼬라지 좀 보래이. 패션 스타일이 영 제로다. 요즘 아이들 눈이 얼매나 높나. 칼라가 맘에 안든다. 뭐라쿠노, 필이 안 꼽힌다아이가."

"허허허, 할머니도 신식이네요?"

"야가 뭐라카노?"

 

그랬다. 외할머니는 숫제 한글 'ㄱㄴㄷ'은커녕 영어 알파벳 'ABC'로 모르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런 분이 입말은 온통 한글과 외래어, 영어로 비빔밥이었다! 실상이 이러한데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이 그냥 줏어듣는 말이 전부다 우리말인 것처럼 즐겨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구상에는 3000 여 가지의 말이 있으나 그중에 글자로 정착된 것은 불과 50 여 종에 불과하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바로 사라지지만, 글자는 영영토록 남는다. 물론 입말도 구전 형태로 전승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온전한 전달을 할 수 없다. 입말도 글자가 있어야 생명감을 더한다. '마지막 수업'에서 보듯 자기 글자(언어)를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영어(囹圄)의 상태에서도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시로 사용하는 입말에 보다 애착을 가져야

 

그러나 비관할 까닭은 없다. 요즘들의 방송이나 인쇄매체들에 보이는 한글 사용에 대한 성의나 거리의 간판들의 보면 희망적이다. 다들 우리말을 아름답게 잘 살려쓰려고 애쓰고 있는 흔적들이 역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동아리 이름만 봐도 눈에 띠는 우리말 이름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이름도 '빛나' '하늘' 새미' 초롱'이 등으로 정답다.

 

'한글, 100년 안에 사라진다!' 그냥 흘러들을 충고가 아니다. 항간에 인터넷 신조어나 축약어가 범람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게 바로 잡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방송을 비롯한 각종의 언론매체들이 일정 여과없이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겠다. 낙숫물에 커다란 바위가 구멍이 뜷리듯이 조그만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다. 무시로 사용하는 입말에 보다 애착을 가져야겠다. 그래야 한글은 영영토록 사라지지 않는다.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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