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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니 도와드리긴 해야할텐데...'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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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니 도와드리긴 해야할텐데...'

MB비판 나섰던 '정운찬 사단', 총리임명에 '곤혹'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총리직을 수락하면서 진보.개혁 성향의 학자들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케인즈주의자인 정 내정자의 경제철학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특히 구체적인 정책 측면에서 정 내정자는 그동안 한반도 대운하, 감세정책, 금산분리 완화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오다가 내정 직후부터 180도 바뀐 말들을 쏟아냈다. 정 내정자의 제자이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진보.개혁 학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케인즈주의자를 자청하는 정 내정자의 '변신'에 대해 그다지 놀랍지 않은 행보라는 의견도 있다. 케인스주의는 신고전파경제학에서 주창하는 ‘자유로운 시장의 작동에 의한 효율적 시장경제’를 비판하고,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규제를 중시하는 학파다. 특히 단기적인 경기변동 때 경제를 시장원리에 맡겨놓지 말고 정부가 확장적 재정지출을 앞세운 정책 개입을 통해 고용과 물가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 케인즈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에 의한 경제운용과 반대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그러나 세계경제위기가 이명박 정권과 케인즈주의자인 정 후보자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냈고, 그래서 정 후보자가 총리직을 수락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즉,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 내정자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노선'이 국가의 역할 확대를 통한 서민의 고용과 소득수준 향상을 지향하는 케인즈주의 철학과 맞아떨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이 극단적 영미식 신자유주의에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정 내정자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노동 등의 생산 요소들을 극도로 유연화하고, 생산.교환 순환에 연고주의가 관련되는 것을 차단하고, 경쟁.투명성.공정성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처럼 재벌에 유리한 금산분리 완화나 포이즌필, 주주대표소송 제한 등 기업지배권 보호 따위 조처를 취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로 볼 수 없다. 오히려 '4대강 살리기 사업', '녹색뉴딜'과 같은 토목.건설을 통한 '토건주의'가 이명박 정부를 규정하는 데 더 적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 내정자는 올해 초만해도 "뉴딜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으나 총리직 수락 이후에는 "친환경을 고려해서, 주변에 쾌적한 중소 도시를 만든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토건주의'가 반드시 케인즈주의와 불화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이같은 담론 수준에서 굳이 접점이 있다 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을 맡게 될 정 내정자의 총리직 수락은 진보.개혁성향 학자들에게 우려와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정 내정자의 제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 내정자가)이명박 정부의 중도서민 실용노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유력한 분이다. 정 선생님이 그 실용노선이 잘 되도록 기여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강만수 경제특보와 윤진식 경제수석, 윤증현 장관의 입김에 MB노믹스 '얼굴마담'에 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김 교수로써는 소장을 맡고 있는 경제개혁연대가 이명박 정부를 향한 비판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리기 부담스러워진 측면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명박 정부의 재벌규제 완화 정책과, 금산분리 완화, 관주도의 구조조정, 한미FTA 비판의 선봉에 서 왔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선생님이시니 도와드려야 할 텐데, 나야 열심히 정부 비판하는 게 일인데 어떻게 하나"라고 말했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

정운찬 총리 내정자ⓒ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정 내정자의 '수제자'로 불리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당황하는 분위기다. 전 교수는 "관직 욕심이 없던 분이신데, 나도 의문이다. 섣불리 예단하는 건 적절치 않다. 어떤 게 맞는지는 시일을 두고 나타나는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뜻하는 바가 있어 결심했을 것이고, 많은 우려를 떨치고 좋은 방향으로 열매을 맺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 역시 김상조 교수처럼 금산분리 완화, 재벌개혁, 금융감독 부문 등에서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전 교수는 지난 2007년 정 내정자의 대선 예비후보 행보 당시 정 내정자의 대 언론 창구 역할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고 정 내정자, 조순 명예교수와 함께 경제학원론을 공동집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난 5월 출범한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을 맡았는데, 이 센터는 정 내정자가 만든 '금융연구회'의 연구성과를 발전시키기 위해 창립된 연구기관이다. 이처럼 학문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인 제자의 시각은 '기대'보다는 '걱정'에 무게가 실려 있다. 전 교수는 "정운찬 선생은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바른 분'이란 수식어가 적합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런 행동(총리직 수락)이 나중에 성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여태 쌓은 이미지가 일거에 허물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역시 정 내정자의 제자이면서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권영준 경희대 교수도 "(정 내정자 지명이)이명박 정부가 4대강.금산분리완화.미디어법 등 원하는 큰 줄기 정책을 모두 마무리짓고 친서민노선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행한 인사가 아닌가 싶다"며 "정 선생님이 소신 있게 일 하실 역할이 주어질지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정 내정자의 총리직 수락으로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당분간 조준점이 흐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우려 속에 '정운찬 사단'이 거는 마지막 '기대'는 결정적 순간에 정 내정자가 결단을 하는 것이다. 전성인 교수는 개각을 앞둔 지난달 신문칼럼에서 총리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총리 후보는 대통령에게 '안 됩니다'를 분명하게 진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한겨레 8.27)고 했다. 정 내정자의 '정치적 스승'격인 김종인 전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정 내정자의)소신과 배치되고 '저리로 가선 안 되겠다' 싶은 정책이 나왔는데도 묵묵히 있어선 안 된다"며 "수정을 가할 수 있도록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정 총장이 쌓은 명성이 무너질 테니 사전에 대통령에게 말해주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명박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총리가 돼라는 충고들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쓴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용퇴의 수순을 밞는 게 제자들이 기대하는 정 내정자의 미래다. 전성인 교수는 "자칫 정권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입각하실 때 생각하셨던 뜻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미련을 가지실 필요 없으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앞서 드러났듯이 3일 총리직 수락이후 21일 인사청문회까지 드러난 정 내정자의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입장을 꼼꼼히 살펴보면 더 이상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제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일까? 아니면 '트로이의 목마'처럼 위장술을 쓰고 있는 것일까?


'정운찬 사단' 아닌 사람이 없다?


'정운찬 사단'은 직접적으로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제자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광범위한 분류로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국의 거의 대부분의 원로.주류 경제학자들 대부분을 포함한다고 보는 게 맞다. 원로급에서는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이 꼽힌다. 조 명예교수는 1967년부터 사제의 연을 맺었고, 정 내정자의 한국은행 취업과 미국 유학을 주선하기도 했다. 컬럼비아대에서 가르치던 정 내정자를 서울대로 불러들인 것도 조 명예교수였다. 김종인 전 의원은 정 내정자가 전두환 정권의 눈 밖에 나 해직 위기에 처했을 당시 구명한 뒤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여당쪽 인사들 중에는 기획재정부 윤종원 경제정책국장과 금융위원회 이창용 부위원장, 한나라당에서는 이혜훈 의원이 정 내정자의 제자다. 개혁 성향 학자들은 잘 알려진 대로 전성인 , 유종일, 김상조 , 권영준 교수 등이 정 내정자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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