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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가 위헌이냐 아니냐를 논하다니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2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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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가 위헌이냐 아니냐를 논하다니
<뉴욕칼럼> 민주주의 'demo' 해보자
 
채수경
 

한국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다시 배우는 영어 중의 하나가 ‘데모(demo)’일 것이다. 이승만 독재 이래 숱하게 반정부 시위를 벌여온 한국인들은 ‘demo’ 하면 화염병과 최루탄을 떠올리지만 ‘demo’의 원형은 ‘demonstration’이고 ‘demonstration’의 뿌리는 ‘-로부터’를 뜻하는 접두사 ‘de-’와 ‘보여주다’라는 의미의 ‘monstrare’가 붙은 라틴어 ‘demonstrare’로서 “어떤 것의 실체를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것”을 뜻하는 바, 미국인들은 ‘demo’하면 머릿속에 새로 나온 주방기기 따위를 보여주고 시연(試演)하는 것 또는 음반 제작자에게 들려주기 위한 녹음 등을 떠올린다. 물론 ‘시위’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시위’로서의 ‘demonstration’은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위세를 과시하는 것을 말하고 정부나 회사의 조치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protest’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아 이른 바 민중의 힘으로 요구사항을 관철시켜야 하는 나라에서는 ‘demonstration’이 많고 민주주의가 발달하여 정치인들이 민중의 의사가 잘 반영해주는 나라에서는 ‘protest’가 많다.
 

▲   야간집회를 막겠다는 정권이 민주주정부인가  © 뉴민주.com


 

국민 개개인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demonstration’과 ‘protest’를 전통적인 자유권으로 간주하여 법적으로 보장한다. 그걸 ‘집회·결사의 자유’라고 한다. 대한민국 헌법 21조에도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자랑스레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박정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족쇄를 채워놓은 이래 빛 좋은 개살구가 돼버렸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민주정부 들어 독소조항들이 많은 완화되긴 했으나 그런 법률이 남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의 발목이 꽉 붙잡혀 있음을 본다.


지난해에도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트집 잡아 촛불 시위를 벌이다가 무려 935명이나 불구속 기소됐었다. 반면 촛불 시위 반대 집회나 친 이명박 정권 집회에 참가했다가 체포되거나 불구속 기소되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바, 그로 인해 이명박 정권이 편파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걸핏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개대중이’ ‘노개구리’ 욕설을 퍼부으며 화형식까지 거행하던 보수꼴통들이 지금에 와서는 “촛불시위 벌이는 놈들은 다 잡아가둬야 한다”고 침 튀기는 것을 볼 때는 가소롭기만 하다.
 
지난 해 10월 당시 서울중앙지법형사 7단독재판부 박재영 판사가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 재판을 진행하던 중 “헌법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야간옥외집회를 사전허가제로 운영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데 대해 어제 헌법 재판소가 야간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와 벌칙을 규정한 23조 1호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매우 당연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이 아직도 그렇고 그런 수준에 있는 것을 재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입맛이 쩝쩝 다셔지기도 한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밤중에 광장으로 몰려가 촛불 켜드는 것도 볼썽사납고 막장 인생들이 자기 인생 구겨진 거 화풀이하기 위해 길거리 막고 기물 파괴와 화염병 투척을 일삼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못난 짓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런 일부 못난 사람들의 행위를 트집 잡아 민주주의의 금과옥조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짓밟고 이런 저런 악법과 언론장악으로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정권의 무지막지를 향해 던지는 계란 같아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그런 계란을 얼마나 많이 던져야 하나? 아직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장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기에는 너무나 답답하다.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정권과 그런 정권에 ‘demo’와 ‘protest’로 맞서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demo’해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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