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아버지인 박춘식씨가 남측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옆에서 며느리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약 60년만에 서로의 생사를 눈으로 확인한 이산 가족들의 재회로 금강산 자락이 또다시 눈물에 젖어들었다.
추석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가 시작된 29일, 1,2차 행사 통틀어 최고령자인 김유중(100) 할머니를 포함한 남측 이산가족 431명은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북측 상봉단 99명과 눈물 속에 재회했다.
최고령자 100세 할머니, 유일한 '부부상봉자'까지...이날 상봉단 일행은 오전 강원도 속초 한화콘도를 떠나 동해선 육로로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 오후 1시25분께 행사장인 금강산에 도착해 3시경부터 만남을 가졌다.
올해 만 100세로 이번 행사 최고령자인 금유중 할머니는 경기여고 1학년이던 1951년 이별했던 셋째 딸 리혜경씨(75)씨를 만났다. 김 할버니는 딸의 얼굴을 말없이 비비며 3분여간 울먹였고, 혜경씨는 "엄마, 울지마세요"라며 눈물을 닦아줬다.
이번 상봉행사의 유일한 '부부상봉' 대상인 남측 아내 장정교(82)씨와 북의 남편 로준현(81)씨도 이날 59년만에 재회했다. 아내 장씨는 "오늘 오나 내일 오나 기다리다가 내가 시부모님도 다 모시고, 잘 모셨다고 상장까지 받았어요"라고 소식을 전했고, 로씨는 "시부모도 다 모셔주고, 네가.."라며 울먹였다. 장씨는 혼자서 딸 선자(63), 아들 영식(60)씨를 키웠고 남편 로씨는 북에서 재혼해 7남매를 뒀다.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인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딸 리혜경 씨가 최고령자인 남측 어머니 김유중(100) 씨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로준현 씨의 눈을 꼭 잡은 남측 아내 장정교 씨가 눈물을 흐리며 엎드려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살아있는 사람을 제사지내면 되나"...국립묘지에 모셨던 형과 소설같은 재회 이번 상봉행사에선 국군출신 북측 상봉단 3명과 남측 가족의 만남도 이뤄져 관심을 모았다.
한국전쟁 당시 모 사단에 소속됐던 석영순(78)씨는 남측 동생 태순(74), 창순(65)씨와 , 8사단 민간보급대 출신의 박춘식(85)씨는 남측의 아들 삼학(67), 이학(64)씨와 각각 만났다. 또 아버지를 대신해 국군으로 징집됐던 리윤영(74)씨는 남측 동생 찬영(71), 대영(67), 진영(65)씨와 상봉했다.
북쪽 형 석영순씨가 면회소에 들어서는 순간 남쪽 동생 태순, 창순씨와 삼촌 석호근씨는 "살아 있었구나"라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영순씨는 울먹이는 삼촌 호근씨에게 큰절을 올리며 "옛 얼굴이 남아 있습니다"라며 달랬다.
당시 이들은 한국전쟁 기간 국군으로 징집돼 전쟁터에 나갔다가 가족과 헤어졌지만, 이듬해인 1951년 가족들에게 통지문을 보내 석씨가 징집 3개월만인 1950년 10월18일 전사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이들은 '국군포로'로 분류되지 않았고 1997년에는 위패가 국립묘지가 봉안되기도 했다.
동생 태순씨는 "형이 소속된 사단은 6.25때 팔공산 전투에서 전멸당하듯 했다고 들었다"며 "1997년 육군본부에 위패 신청을 해서 국립묘지에도 봉안했고 제사도 지냈다"고 말했다. 이에 영순씨는 동생의 이런 얘기를 듣고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제사를 지내면 되나"라며 크게 웃었다.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 28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석영순씨 남측 형제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박춘식씨는 8사단 21연대에서 계급과 군번도 없는 보급대원으로 복무하다가 가족과 이별한 경우다.
박씨는 남측 아들 삼학씨에게 북에서 새로 결혼해 낳은 5남매의 사진을 소개했고, 삼학씨는 "아버지와 연세가 같으신 동네 어른들은 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북쪽에 살아계시다는 것만으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며 울먹였다.
또 리윤영씨는 1.4후퇴 때 서울 신당동 집에서 아버지 대신 국군에 징집됐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리씨의 남쪽 동생 찬영씨는 "동생들이 전부 어려 피난은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징집대상이 된 아버지 대신 국군으로 나갔다가 소식이 끊겼다"며 "죽었다고 생각해서 호적 정리도 끝낸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찬영씨가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형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들어야 했는데, 13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전하자, 윤영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윤영씨는 이날 북한군 훈장 11개를 들고 나와 "북에 정착한 뒤 열심히 일해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동생들을 안심시켰다.
단체상봉단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후 7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환영만찬에 참석, 약 60년 만에 한 자리에 앉아 가족의 정을 나눈다. 이어 30일 개별상봉과 야외상봉을 하며 다음달 1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다시 기약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인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가족과 남측 가족이 부둥켜 안고 울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인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남측 동생 신정순씨가 북측 오빠 신종철 씨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인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아버지 전기봉씨가 훈장을 달고 나와 남측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북측 아버지 박춘식씨가 절하는 남측 며느리들에게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첫날인 28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루어진 가운데 영상으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