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된 기녀(妓女)
천관(天官)은 신라조 진평왕(?-632년, 재위 579-632년) 때 기녀(妓女)였다.
천관은 포동포동한 우윳빛 살결의 소유자였다.
얼굴 또한 매우 청초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악기도 잘 다루었으며 노래도 잘 불렀다.
그녀는 화랑 중에서도 특히 소년 김유신을 매우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랐다.
김유신(595-673년)도 그녀에게 반해 틈만 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래 찾아와
그녀의 집에서 술과 색으로 세월을 보낼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져 지냈다.
그녀 또한 자기 품에 안겨 오는 김유신을 감미로운 육체의 향내로
감싸안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이런 달콤하고도 은밀한 관계가 한 달 남짓 지속되었다.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뜨거운 육체적 관계 및 정신적 관계는
점점 깊어만 갔다.
둘의 육체와 영혼은 서로의 애틋한 애정 안에서
농도 짙게 녹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열애는 오래가지 못하고 말았다.
어느 날 피골이 상접하여 집에 돌어온 김유신을 보고
질겁한 그의 모친이 아들을 엄히 나무랐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네 한 몸이 입신양명하여 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거늘
이 어찌 된 거냐?
네가 눈에 정기가 없고, 밤낮으로 여색에 탐욕하니 통탄할 일이로다.
너는 우리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단 말이냐?"
이후 김유신은 뼈저리게 깨달은 바 있어,
천관의 집 출입을 뚝 끊어 버렸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는 여전히 천관을 사랑했다. 그는 그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천관 또한 바람소리만 들려도 방문을 열고 나가 꼿발로 서서 그를
애타게 기다리곤 했다.
천관은 갑자기 발길을 끊어 버린 연인이 너무나도 야속하였다.
그녀가 찔끔찔끔 울며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자꾸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름다운 놀빛이 산야를 곱게 단장할 즈음,
갑자기 말을 탄 김유신이 천관의 집에 당도하였던 것이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천관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사립문 밖까지 뛰쳐나가 연인을 눈물 글썽이는 눈으로 맞이하였다.
"어찌 그리도 무정하단 말입니까?"
눈길을 곱게 흘리며 그녀는 그에게 앙탈을 부렸다.
그때서야 김유신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는 심난한 마음을 달랠 겸해서 그날 하루 종일 벌판으로 나가
활을 쏘면서 무예훈련을 했었다.
그러다가 시름에 잠겨 귀로에 올랐었는데,
그가 탄 말이 그만 평소 주인이 자주 다니던 천관의
집으로 그를 데려와 버렸던 것이다.
이윽고 마음을 추스린 김유신은 갑자기 검은 눈썹을 무섭게 치뜨더니,
칼을 빼어들어 말머리를 힘껏 내리쳐 버렸다.
말 머리와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나면서 검붉은 피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천관은 이때 너무 놀라 몸을 웅크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김유신이 혼잣말로 '그 놈의 말이 눈이 멀었어!'라고 중얼거리며
어스름 속으로 총총 사라져 버린 뒤에도,
그녀는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설 줄을 몰랐다.
그 후 김유신은 오직 무예훈련과 정신수양에만 정진하여,
신라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까지 강인한 의지의
영웅답게 살아나갔다.
한편, 천관은 그 후로 김유신이 말머리를 벤 곳,
즉 참마대(斬馬臺) 근처에 절을 지어 천관사라 이름 짓고,
자기는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그곳에서 한 평생
김유신의 영달을 빌면서 살다가 조용히 일생을 마쳤다.
- 좋은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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