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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그릇은 작게 해야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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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행복그릇은 작게 해야


 

대학시절 뛰어넘어/취직시험 돌파하고/사내연수에서 피를 흘린 후/승진시험마저 깨끗이 패스/명함에 새겨진 직함은/신규사업2과장/얼씨구,ОО철강과장일세/명함에서 읽히는 것은/직함뿐이고/샐러리맨에게 얼굴이란 없네」


일본에서 공연했다는 「샐러리맨의 금메달」이라는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가사라고 한다. 거대한 조직에 끌려다니는 샐러리맨들의 비애는 일본이나 우리나 별로 다를 것이 없나 보다. 신입사원일 때 자신이 왜 이렇게 작고 미미한 존재일까 하고 푸념하던 친구들이 이제 직장생활 십수 년이 되니 아랫사람들이 생기고 의자도 높아졌다. 부장이 되고 지점장이 되어 제법 무게들이 잡혀간다. 그러면서도 신경과민인 경우를 본다. 이렇게 힘써 주었는데도 알아주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등을 마음속에서 뇌까리는 것이다.

 

잘 관찰해 보면 확고한 신념이 없는 사람을 상관으로 섬기며 사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 같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군림하는 그들에게 아양까지 떨어야 한다. 그들의 단 한 번의 차가운 눈길 때문에 온 마음이 얼어붙는 일도 많다. 온종일 싫은 일, 궂은 일 열심히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달리 면서 원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마음에 없는 너털웃음으로 술대접하며 아부를 해야 하고, 그러는 자신이 싫어지고 미워져 마음 내키지 않는 술을 더 마신다. 그리고는 늦은 밤 시간, 비로소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눈바람 속 미끄러운 거리를 더듬으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속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의지하고 설 가치관도 근본에서부터 흔들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딸린 식구들이 원하는 게 많아지고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게 많아질 때마다 '돈이나 왕창 벌었으면'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결국 자유로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솟아난다.


그러나 사람마다 서로 사는 방법이 다르고, 길들이고 익숙해지고 아는 게 다를 뿐 어느 쪽에 잘나거나 못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대로 늘 쪽배하고 풍랑 앞에 서 있는 듯 하다. 매일매일 대출받기 위해 은행장실 앞에 죽친다. 여러 관공서를 다니면서 방아깨비 노릇을 해야 한다. 초라해 보이거나 돈이 없어 보이면 더욱 무시당한다. 그래서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음식점을 다녀야 한다. 계속 빚은 늘어나는 데도 있는 체 해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웃는 체 하지만 손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접대 후 혼자 술집에 남아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타고 가는 승용차를 통해 눈에 들어오는 옆의 만원버스에 앉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게만 느껴진다. 그들에게는 비록 담장 낮은 대문 안에서라도 연약한 죽지를 서로 의지하고, 용기를 돋워주며, 나무라고 책망하고 원망함이 없이 위로를 나누는 안정과 평화와 잔잔한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깊이 들어가 보지 않아 잘 알 수는 없지만 부도를 앞둔 중소기업 사장들의 비감은 말만 들어도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떤 사람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귀갓길의 한강교각에 일부러 부딪쳐 자살하기도 한다. 또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다시 한번 재기하려는 몸부림으로 가족을 놔두고 외국으로 도망을 가기도 한다. 국제적 고아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전화를 통해 가족 소식을 물으면서 우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다. 그저 안쓰럽기만 할 뿐 무기력한 내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돈이나 자리가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승격한 현대 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팔아서 그것을 장만하려 한다. 마침내는 나 자신까지도 상품으로서 시장에 내놓아야 하고, 돈이나 직위는 바로 나의 값을 정하는 평가의 척도가 된다. 그런 속에서 모두들 개미 보다는 매미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로 떠나갈 곳이 없다. 우리의 마음속에 접어둔 장소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으며, 우리가 생각해 놓은 물건에는 모든 주인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나 신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들 앞에선 자신 있는 척 부유한 척 병들지 않은 척 연기를 하지만 자기 앞에서까지 그 연기를 계속하기엔 자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불평하기 시작하면 그것도 점점 늘어나기 일쑤여서 영영 밝은 해와는 등지게 되고 만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부분을 조금씩 소유하고 있다. 술 마신 기분으로 보석반지를 사다주는 남편보다는 따스한 호떡 한 봉지를 사들고 들어오는 마음 씀이, 식기 전에 가족에게 먹이고 싶은 선량한 가장의 잔정이야말로 오히려 가정을 밝히는 아늑한 행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늦어버린 깨달음이요, 너무 늦어버린 듯한 눈뜸일지라도 분명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혜가 아닌가. 그래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생은 늘 새로울 수 있다.


결국 삶이'이건 아니구나' 생각했을 때 필요한 것은 확고하게 자기를 지키며 휩쓸림을 거부하는 용기이다. 물론 이 때 이상에 못 미치는 현실이 아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처를 겁내는 사람은 자유를 느낄 자격이 없다.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자유인의 자격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성실을 다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허황된 것에 뜻을 두지 않는 남성, 그런 남성만이 진정한 자유인이 아닐까.


철학자 러셀이 '행복의 길은 출세욕과 금전욕에 구애되지 않고 눈을 밖으로 돌리는 데 있다'고 한 말을 되새겨 본다.

출처 : 좋은생각 1993년 04월호


퍼온 곳 : 좋은생각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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