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뒷북이 심하다. 남들이 다 좋다는 영화나 노래, 책을 한창 인기 있는 그 당시에 같이 보는 게 아니라 꼭 한참 지난 후에 몰래 도둑질 하듯 보는 거다. 남들이 좋아하는 배우나 아이돌 그룹의 멤버도 마찬가지다. 다들 좋아하는 당시에 같이 좋아하는 게 왠지 줏대 없어 보이고 취향이 없어 보이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이상한 이유에서다.
최근에 내 뒷북 상대는 바로 잘 생긴 영화배우 에단호크다. 사촌오빠와 추억 속 영화 이야기를 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 얘기가 나와서 뒤늦게 다시 찾아 본 영화 속에서, 데뷔 시절의 풋풋한 에단호크를 만났다. 그가 나온 영화를 찾아 연대순으로 하나 둘 보면서 남들은 이미 두 번도 좋아하고 남았을 90년 대판 꽃미남 에단호크에게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가장 도드라진 작품은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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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은 내 일이나 방송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가까워지면서 종종 소개팅이라는 이름으로 이성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상대방은 이미 인터넷 검색과 풍문을 통해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고, 나 또한 일차적으로 걸러진 정보를 통해 그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까지 내리고서 만난다. 이미 서로의 배경이나 취향에 대해 많이 아는 두 남녀의 만남에 무슨 설렘이나 기대, 뜻하지 않은 흥미로운 돌발 상황이 존재하겠는가. 나 역시 몇 번의 이런 부자연스러운 만남 후에는 아예 보기도 전에 상대방을 섣불리 판단해버리는 못된 습관까지 생겨버렸다.
그래서인지 일에서건 일상에서건 더 자연스럽게, 미리 계획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 깊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요즘이다. 이렇듯 사람과의 관계에, 내 일에 조금은 면역력이 약해진 나를 추스르기 위해 조만간 훌쩍 미국 여행을 떠나려 한다. 경험상 낯선 곳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때로는 잃었던 내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해 주는 좋은 약이 되기도 하니까. 무작정 혼자 브로드웨이 어느 극장으로 가서 뮤지컬 표를 살 것이다. 가을 낙엽이 좋은 보스턴 캠브리지 근교 찰스강 근처를 지칠 때까지 걸어 볼 테다. 그리고 비온 뒤 안개 낀 샌프란시스코 골든 브릿지를 배경으로 약간은 촌스러운 포즈로 기념사진도 찍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번 여행에서 에서 주인공 제시가 그랬던 것처럼, 약간은 지치고 상처받은 내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예기치 않은 만남이 꼭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1980년 대구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미스코리아 선(2001). <음료의 소비문화-물에서 술까지>(공저, 2009), 현재 <불만제로><스포츠 매거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