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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리의 이름_이지애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1. 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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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에세이 ] 2009년 11월호
이지애의 etc / 이지애, KBS아나운서
나의, 우리의 이름

 

“김 선배님”
잔걱정이 많은 A양은 유난히 친절한 그 오빠를 이렇게 부른다. 당신은 딱 거기까지! 절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그 나쁜 년”
좀처럼 누굴 욕하는 법이 없는 K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이다. (물론 더 심하게 부르는 날도 있지만) ‘그런 여자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아웃’이란다.
“자기야”
무뚝뚝한 그 남자 S는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 그녀의 심장이 되고 싶다고, 여름날 아침이슬 같이 사라질지라도 그녀 곁에 머물고 싶다고.

우리는 매일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까? 살인마, 사기꾼, 패륜아. 정말이지 입에 담기조차 힘든 흉악한 이름들이 매일 신문지면을 가득 메우는 요즘. 내가 이미 가진 이름으로, 그저 불리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문득 나는 나로써, 혹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

지애(智愛) ‘지혜롭고 사랑스럽게’라는 뜻의 내 이름. 어릴 시절에는 좀 평범한 것 같아 불만이었지만, 그 이름만큼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혹은 부모로, 어딘가에 소속된 학생으로, 직원으로 부여받은 각자 우리의 이름들. 우리는 과연 그만큼 살아내고 있는 걸까? 연쇄살인범과 이름이 같다하여 개명신청을 한 사람도 있단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어딜가나 놀림을 당해서. 그 이름 만으로 그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생긴다니 억울할 만하다. 그렇게 보면 죽어서 가죽 대신 이름을 남기는 인간으로서 행복해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어디가서 누군가를 만날 때 제일 먼저 받는 질문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적어도 그 질문에 내 이름 석 자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 꽤 괜찮게 살아낸 거 아닐까. 그 이름만큼만 살아내도 참 복받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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