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선배와의 특별한 인연, 송별회서 반추하다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26. 11:32

본문

728x90

선배와의 특별한 인연, 송별회서 반추하다
[사람사는 이야기] 정년퇴임 박용석 선배의 송별식…위로대신 웃음지어
 
김철관

21일 저녁 서울 성동구 한 웨딩홀에서 오는 12월 31일 정년퇴임을 앞둔 한 직장 선배의 송별회 파티가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송별회에는 직장 상사, 선․후배 등 10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예약석을 가득 메웠다.
 
이날 송별회는 서울메트로에서 차량을 정비하고 검수한 2500여명의 직원 중 올해 유일하게 정년퇴임을 하는 사람이 바로 선배였다. 홀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글 뒷부분에서 언급하겠지만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선배이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 동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물론, 직장 선․후배 유대감을 형성하는데도 일조를 한 선배였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상당히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서울메트로 군자차량사업소 검수부 전자시험실 병반(3조 2교대)에 근무하고 있는 직장 동료 박용석(58) 차량과장이다. 
 

▲ 케이크를 자르는 박용석(용식이 형) 차량과장과 직장 상사 동료들. 좌로부터 박 과장과 함께 근무한 김옥주 과장, 이경민 선임, 김석순 노동조합 지회장, 박용석 차량과장, 이재준 군자차량사무소장, 이도선 검수부장, 안진홍 정비부장이다.     © 김철관


지난 90년 초 직장 상사로 7~8년 정도 함께 근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그를 '과장님'이나 '선배님'라고 부르기보다는 '용식이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한 편이다. 그 만큼  격이 없이 지냈다. 물론 제가 붙여 준 별칭이다. 편한 이름을 찾다보니 당시 코미디언 이용식씨의 이름이 생각나 '용식이 형'이라고 부른 것이, 그만 지금까지 부르게 됐다. 그렇게 부르면 지금도 매우 흡족해 한다.
 
또 '용식이 형'이라는 별칭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고백이라고 할까. 돌아가신 조부의 함자가 金자 龍자 錫자(김용석)였다. 조부의 함자인 용자 석자를 붙여 '용석이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할아버지 함자를 부른 것 같아 꺼림직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식이 형'으로 부르는 것이 저에게도 부담이 없고 편했다. 항상 곁에 있을 줄 알았던 그 '용식이 형'이 어느덧 정년을 맞아 퇴임 송별식을 하게 된 것이다.
 
송별식은 21일 저녁 7시였지만 30분전에 미리 가 있었다. 먼저 와 뷔페음식을 접시에 담은 직장 동료도 간간히 보였다. 물론 '용식이 형'도 미리 와 있었다. 그를 발견하자 그와 악수를 건넸다. 악수를 하면서도 씁쓸한 눈웃음만 쳤고,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창 일할 나이(58세)에 직장을 떠나 정년퇴임을 한 그에게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위로 합니다'라는 말은 더더욱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눈짓으로 위로의 뜻을 보내야 했다.
 
이날 행사장에 그는 평소 직장 출근을 할 때 입고 다닌 수수한 검정 잠바 차림이었다. 그리고 행사장 안에서 직장 동료들과 연신 악수를 했다. 그 모습에서 선배가 직장을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술한잔 기울지 못했는데, 떠날 마음으로 일일이 동료들과 악수를 한 모습에서 왠지 마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날 행사장에서 그가 악수를 청한 한 동료가 "오늘의 주인공이 '양복'을 입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웃으면서 "잠바가 편해..."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잠바 입고, 직장 더 다니고 싶어"라고 들리는 듯 했다.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배의 직속상관인 이도선 검수부장의 송별사가 이어졌다. 송별사를 듣고 있던 '용식이 형'은 숙연한 듯 고개를 숙였다. 이 부장의 송별사를 듣고서야 그가 74년부터 서울지하철 전동차를 정비․검수해왔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됐다. 35년 동안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전동차 정비와 검수를 해온 셈이었다. 이날 송별식장에 참석한 한 주임이 74년생이라는 말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주임 후배가 태어난 시기에도 그가 지하철 정비 검수업무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35년간 정든 직장을 떠나야하는 선배를 쳐다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나의 미래를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가까워오는데도 선배는 아직도 정정했다. 지금도 흰머리에 검정 염색만 하면 20대 청춘처럼 보였다. 그만큼 건강하고 정정했다. 그래서 정년퇴임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김석순 서울지하철노동조합 검수지회장의 송별사를 했다. 그도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직속 상사로 1검수에서 함께 근무했다는 말을 강조했다. 이재준 군자치량시업소소장도 인사말을 통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날 모처럼 노사가 함께 모여 정년퇴임식을 빛내줬다.  직장 동료들의 꽃다발과 선물 증정이 이어졌고, 위로와 축하의 뜻을 담은 케이크도 잘랐다.
 
이쯤해서 '용식이 형'과 절친하게 됐던 기억들을 더듬어 올라가 본다. 지난 90년 초 직장 상사로서 그와 함께 근무했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그 선배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중학교 다닌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앞이 캄캄했다. 빈소가 마련된 경희대 의료원 영안실에는 동료 여학생들의 슬픔에 찬 울음이 끈이질 않았다. 가족들의 통곡도 이어졌다. 많은 직장 동료들도 문상을 했다. 나는 발인을 하던 그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을 지켰다.
 
아연실색(啞然失色)한 선배와 형수, 그리고 형제들을 보니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마음을 누가 알랴. 나는 그 선배를 위로하고 또 위로했지만, 멍하니 딸의 영정사진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선배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쭉 지켜봤다. 정년퇴임 송별식장에서처럼, 묵묵히 그를 지켜봤다. 당시 특이한 점은 유일하게 가족을 위로하고 영령을 추모한 선배의 종교를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법사와 신도들이 영정 앞에 모여 독특한 주문 '나무호렌게쿄'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창가학회(Soka Gakkai International, SGI)라는 종교였다. 독특한 주문을 외우는 신자들의 모습이 기이하게 보이기 때문에 일부에서 사이비 일본 종교로 비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많은 신자가 있고 창립자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국주의의 탄압에 맞서 옥사할 정도로 사상적으로 건실한 종교라는 사실을 이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종교에 대한 글을 많이 읽게 됐다.
 
우리에게 SGI로 알려진 창가학회의 기원은 13세기 일본 가마쿠라 막부 당시 활약했던 불교 지도자 니치렌(日蓮)선사에서 기원한다. 니치렌은 천태종과 선종에 심취했지만 실망을 느끼고 <법화경>만이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불교가 내생에만 매달리고 현생을 돌보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귀의한다는 뜻의 나무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연호하며 신앙생활을 하면 누구나 자신의 생명 속에 잠재된 불성을 나타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창가학회는 사이비종교로 알려졌다. 나도 당시 선배 종교를 보고 의아해 했다.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사이비 종교를 믿고 있는 선배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들이 영안실에서부터 화장터까지 열성적으로 영생복락을 비는 모습에서 창가학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그 후 SIG 종교에 대한 서적을 찾아 열심히 읽게 됐다. 물론 선배가 지금도 그 종교를 믿고 있는지는 일수 없으나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니면 막연한 상식을 가지고 숭고하게 믿는 종교를 함부로 사이비 종교로 치부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모든 종교를 숭고하게 생각하고 있다. 딸의 장례식을 치른 후, 며칠 쉰 선배가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열심히 출근했다. 평상심을 찾는 듯했다.  평소와 같이 직장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했다. 가끔 창가학회에 대해 진정성 있고, 건실한 종교라는 말로 자신의 종교를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 선배를 형처럼 존경하고 더욱 친하게 지냈다.
 
선배의 인품을 평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연을 잠깐 소개할까 한다. 선배는 보수적인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도 정치 선거에서 여당을 주로 찍은 모양이다. 그래서 최근 함께 근무한 한 후배가 "그런 후보를 찍으니 '우리에게 구조조정 칼날을 내세우지 않냐'"고 지나친 핀잔을 주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처럼 빙긋이 웃어넘기는 여유를 보이면서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도 이렇게 넉넉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노동조합을 한 후배들이 익살을 부려도, 웃어넘기기 일쑤였다. 그런 넉넉하고 훈훈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정년으로 직장을 떠나는 마음이 못내 아쉽다. 아쉬운 마음으로 선배와 가족, 건강과 행복을 빌어본다.  

기사입력: 2009/12/22 [13:50]  최종편집: ⓒ 대자보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