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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서(序)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2. 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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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서(序)
  글쓴이 : 정 민     날짜 : 2006-05-09 16:19     조회 : 1512    

 

이 글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표제로 달았다. 다산 정약용! 그에 대해 무어라 규정을 내리는 일은 참으로 난감하다. 그는 경전의 미묘한 뜻을 낱낱이 파헤친 걸출한 경학자였다. 그 복잡한 예론을 촌촌이 분석해낸 해박한 예학자였다.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정리해낸 탁월한 행정가요, 아동교육에 큰 관심을 가져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 교육학자며, 지나간 역사를 손금 보듯 꿰고 있었던 해박한 사학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현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인문학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화성 축성을 설계하고 거중기와 배다리를 제작해낸 물리학자요 토목공학자였으며, 아방강역고와 대동수경을 펴낸 지리학자였고, 한편 마과회통과 촌병혹치 등의 의서를 펴낸 의학자였다. 그래서 과학자인가 싶어 보면, 또 다시 그는 형법의 체계와 법률적용을 검토한 법학자로 돌아왔고, 어느새 속담과 방언을 정리한 국어학자가 되어 있었다. 백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 시인이었고, 날카롭고 정심한 이론을 펼친 문예비평가였다.  


전방위적 지식경영가


그는 결코 고지식한 지식인이 아니었다. 이론과 현장을 아우를 줄 알았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주자하고도 맞섰고, 실용에 맞지 않으면 임금에게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의 도저한 자신감과 자기 확신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누구의 말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고, 어떤 권위 앞에서도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오직 스스로 따져보아 납득한 것만 믿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늘 합리적이었고 실천 가능한 대안이었다. 그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공리공론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동시에 그것도 아주 탁월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는 내게 하나의 경이(驚異)요, 우리 학술사의 불가사의다. 그를 어떻게 몇 마디 말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한다면 나는 다산을 세계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요구에 맞게 정리해 낼 줄 알았던 ‘전방위적인 지식경영가’라고 부르겠다.


세상에는 지금도 정보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짜가 많고 진짜는 드물다. 정보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정보는 너무 많은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산의 그때도 그랬다. 서책들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현장의 아우성은 높아만 가는데, 정작 정보의 대응 속도나 욕구 대비 만족도는 시원치가 않았다.


탁월한 편집자


그의 작업 진행과 일처리 방식은 명쾌하고 통쾌하다. 먼저 필요에 기초하여 목표를 세운다. 관련 있는 자료를 취합한다. 명확하게 판단해서 효과적으로 분류한다. 분류된 자료를 통합된 체계 속에 재배열한다. 작업은 여럿이 역할을 분담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어떤 헝클어진 자료도 그의 솜씨를 한번 거치면 일목요연해졌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그의 머리를 돌아 나오면 명약관화해졌다. 단언컨대 그는 우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탁월한 편집자’였다.


나는 그의 작업과정을 훔쳐보면서 그의 사고가 너무도 현대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데 놀랐다. 나만 놀란 것이 아니라, 그가 20년 만에 자신의 성과를 들고 귀양지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당대의 학자들도 놀랐다. 놀라다 못해 경악했다. 그의 경악할만한 성과는 대부분 20년 강진 유배생활의 고초 속에서 이룩된 것이다. 한 사람이 뜻을 세워 몰두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그는 몸으로 실천해 보였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이빨과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그는 냉철한 학자이기 전에 유머를 아는 따뜻한 인간이었다. 차기만 하고 따뜻함이 없었다면 결코 이 일을 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식 때문에 조바심을 내던 아비였고, 몰락해가는 집안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가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시대의 아우성에 먼저 귀를 기울였고, 민초들의 삶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현실의 어떤 역경도 그의 앞에서는 문제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산은 읽는 이에게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이 글의 부제는 다산치학 십강오십결(茶山治學 十綱五十訣)이다. 쉽게 말해 이 글은 다산선생의 공부법을 정리한 것이다. 열 개의 강목을 세워 각각 다섯 가지의 방법론을 배열했다. 다산의 정리방식을 흉내 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문목을 먼저 세우고 갈래를 나눠 원고를 작성하는 동안, 다산시문집을 수십 번도 넘게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지난 십여 년 간 연암 박지원에 몰두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18세기의 새로운 지식 경영에 대해 공부하다가 다시 다산과 새롭게 만났다. 그의 글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또 다른 한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넓고 깊다. 연암은 읽고나면 오리무중의 안개 속으로 숨는데, 다산은 읽고 나면 미운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 연암은 읽는 이의 가슴을 쿵쾅대게 하고, 다산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연암은 치고 빠지지만, 다산은 무릎에 앉혀놓고 알아들을 때까지 일깨워준다. 연암과 함께 한 지난 시간들이 벅찼다면 다산과 함께 한 시간들은 나를 설레게 했다. 이것은 누가 낫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연암과 다산을 만나 내 학문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눈길이 깊어진 것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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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 끝에 붙은 숫자는 민족문화추진회 간행, 《국역 다산시문선》의 권수와 면수를 나타낸다. 인용문의 번역은 모두 새로 했지만 앞뒤 문맥을 쉽게 대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집필 중이므로 완성단계에서는 현재 내용의 일부가 교체되거나 바뀔 수 있다[필자 주].  

 

출처: 정민교수의 한국한문학 홈페이지

 http://www.hykorea.net/korea/jung0739/index.asp

 


  글쓴이 / 정민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한국한문학회 편집위원

· 한국 18세기학회 부회장

· 한국도교문화학회 총무이사

· 저서 : <미쳐야 미친다><죽비소리><한시미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마음을 비우는 지혜> 등

 
 여기 실린 글은 2006년 11월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김영사에서 깔끔하게 단장하여 책으로 보는 맛이 새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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