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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명박은 이틀 전(2010.8.25.) 대통령 임기의 반환점을 통과한다. 지난 2년 6개월 간 ‘부동산 버블’ 떠받치기에 갖은 정성을 다했지만 사정은 갈수록 위태위태하다. 자업자득 아닌가. 제2기 버블기(2002~2007)는 그가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하며 추진했던 각종 재개발, 재건축 사업들의 거품들로 시작된다.
2009년 1월 19일 서울시장 오세훈은 전임 이명박의 한강변 각종 재개발 사업들을 한데 포장, ‘한강의 공공성 회복’을 선언한다. 잠실, 압구정, 용산, 여의도, 성산동 등에 아파트 50층, 주상복합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들 올리기다. 그날 밤 삼성재벌이 주도하는 용산 4지구를 두고 국립경찰과 용역깡패들의 합동작전이 준비된다. 자정을 넘긴 신 새벽,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이 불길 속에 비명으로 사라진다. 이에 아랑곳없이 2009년 3월 이명박은 화룡점정으로 ‘제2 롯데월드’ 건설을 승인한다. 공공성 회복의 본뜻은 재벌이 주도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가운데 세입자나 원거주자 등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유산계급 내부에서 “질서 있게” 개발이익을 나눠먹자는 것이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때도 그리고 지금 대통령에 부임해서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안다. 산업정책 차원에서 수출재벌들 못지않게 건설재벌들을 지원하고자 부동산투기의 인프라 깔기에 나선다. 4대강 사업 등 도대체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은 대형 토건사업을 일으켜 건설재벌들을 뒷바라지한다. 자산 가치로 고작 상위 2%가 내는 종부세 부담을 완화시키고 나아가 양도세와 상속세 부담도 축소시킨다. 부자 감세는 서민들 일자리 창출, 부동산 투기는 공공성 회복, 토건사업은 녹색환경사업으로 둔갑시키는, 언어의 오염이 극치에 달한다. 2년 전 촛불시위 때 자신이 쌓아올렸던 이른바 ‘명박산성’의 정상에 오른 것이다.
와중에 한국경제는 골병이 든다. 그가 감축시킨 종부세, 양도소득세, 상속세, 법인세, 소득세 등은 모두 직접세이며, 결국 덜 걷히는 세금만큼 서민들이 부가가치세 형태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조차 직접세와 간접세 비율은 7대 3 정도인데 우리는 거꾸로 4대 6 정도인 판에 ‘시대착오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난데없이 이명박은 금년 8.15 기념사에서 ‘통일세’를 제안한다. 당장 집행될 성질의세목도 아니고 그간 엄청난 부자감세로 구멍이 숭숭 뚫린 재정을 메우자는 술수일 뿐이다. 먼저 부자 감세 100조원을 철회하고 지금의 통일부 아닌 ‘통일방해부’를 원상회복 시킨 연후에 이를 제안함이 일의 선후와 완급 순서에 맞을 것이다.
지금 버블 붕괴를 목전에 두고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꿋꿋이 견지한다. 2008년 이후 건설사들의 미분양 물량을 3조원 이상의 국가재정을 투입하여 2만여 호 이상 매입한다. 집값이 폭등할 때는 시장원리를 운운하다가 막상 버블이 꺼지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자 똑같은 입으로 정부의 적극 개입을 요구하는, 정치적 지지층의 요청에 철저히 복무한다. 그런 식이라면 IMF 이후 수없이 몰락한 영세자영업자들의 치킨 등은 왜 사주지 않았고, 카드버블이 양산한 400만 신용불량자들은 왜 구제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는가. 이런 일은 사회적 정의에도 합당한데 말이다.
(2) 정의의 역사적 진행경로가 원래 그러하다. 결국 불의를 이겨내나 매번 새로운 불의가 등장한다. 비판 자체를 봉쇄하는 파쇼나 공산당 식 강압체제 같은 건 아예 논외로 치자. 오늘의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 불의가 여전한 까닭은 다름 아닌 <비판적 지지>가 기성 체제의 최종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비록 그게 긍정적이건 아니면 부정적이건 제도언론과 선전선동의 역할은 이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 조중동 등 지배층의 제도언론들까지 나서 정치적으로 이명박을 엄중 비판한다. 그가 총리나 장관으로 내정한 자들이 하나같이 부동산투기꾼이나 위장전입자, 아니면 병역기피자 등 온갖 윤리적 불량품들을 모아놓았으니 말이다. 이 사회의 상류층이 그 정도로 타락한 것은 아님을 제도언론은 훌륭히 주장해낸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제도언론의 입장은 표변한다. 이명박의 소위 ‘친서민’ 정책을 놓고서도 그게 거짓인 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이면서 우파 포퓰리즘 운운하며 그 부당함을 지레 강변한다. 무엇보다 오늘의 부동산 투기 문제에 대하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직유 또는 은유 화법을 총동원해서 ‘혹세무민’을 계속한다.
수많은 기사들과 논평들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식의 주장이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부동산투기꾼들을 일약 선량한 서민들로 바꿔놓는다. 말도 안 되는 짓들이다. 집값이 오를 때 가장 이득을 본 자들이 재벌건설사들과 다주택 보유자들 아닌가. 그 와중에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무주택 서민들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다. 우리 현실에서 가계 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자녀 교육과 주택 문제인데, 졸지에 2억 원짜리 아파트가 수 년 만에 10억 원으로 올랐다면 당초 10년 저축을 계획했다 50년으로 늘려 잡아야 할 서민들 심정이 과연 어떠할까. 돌아버린다!
무주택 서민의 입장은 온 데 간 데 없이 난데없이 지면이나 방송에서 ‘하우스푸어’ 운운한다는 게 도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의당 손해를 감수해야 할 부동산투기꾼들에 불과하다. ‘하우스푸어’도 못되는 무주택 서민의 입장에서 버블 붕괴는 나쁜 소식이 아니라 되레 희망을 주는 뉴스이다. 아니 집값 하락 정도로는 그동안 쌓였던 분이 다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작금의 다주택투기꾼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직업과 소득을 갖는 상류층들로서 그 정도 부담은 감내할 수 있고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 집 한 채 가진 사람이야 집값이 오르든 말든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살면 그만이고 말이다.
숫제 협박논리까지 동원한다. 부동산이 무너지면 한국경제도 무너진다는 엄포를 놓고, 그래서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료, 언론, 정치인, 부동산전문가 등 건설재벌의 앞잡이들이 여기저기 그런 주장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후안무치한 물귀신 작전이다. 사태의 진실은 거품이 꺼져도 일부 저축은행을 빼고는 금융부문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현재로서 거의 없다. 그간 주택담보대출비율이 60%였고 대출한도 산정 시에 방의 개수 등에 따라 잠재적인 전세금 등도 공제하여 대출했기 때문에 집값이 지금의 절반 정도로 하락해도 은행을 부실화시키고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일부 저축은행 쪽만 사전 감독차원에서 잘 대처하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지금 이명박 일파가 금융위기의 진짜 뇌관을 수시로 만지작거리는 일이다. 그간 시행된 ‘DTI’ 규제 등을 풀 경우 부동산 시장에만 한정될 문제를 국민경제 전반의 문제로 확대시킬 위험성이 매우 크다. 금융위기의 ‘브레이크’ 장치 제거다. 바로 그게 1990년대 초반 일본경제가 범했던 최대 과오다. 일본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공공토목사업 추진은 물론 세계경제에 유례가 없는 강도 높은 금융정책으로 부동산거품을 떠받치려는 소위 ‘연착륙’ 정책에 나선다.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던 상황을 가래로도 못 막는 복합불황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지금도 잃어버린 20년은 계속된다. 부동산 투기세력만 손해 보면 될 것을 온 국민까지 대신해서 엄청나게 바가지를 쓴 꼴이다.
어째서 ‘공론의 장’에 이런 거짓 논리들이 성행하는가. 왜 스스로 정화되지 못하고 악화가 오히려 양화를 구축하는 것인가. 직접원인은 주류 매체들의 ‘알량한’ 이해관계 때문이다. 기득 매체의 광고 중 40% 정도가 아파트 분양 등 건설업체 광고이다 보니 그 영향은 기사와 논평들에 그대로 이어진다. 매경 등의 경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조중동 등 독과점 언론들이 부동산 관련 회유와 협박에 앞장서는 까닭이다. 건설재벌들과 한통속이다. 건설재벌이 잘 돼야 한국경제가 살아난다고 한다. 자신들의 광고수입이 늘어나야 자신들이 더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궁극 원인은 제도언론의 주인이 소위 정치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조선 등 독과점언론은 지난 시절 박정희나 전두환 등 정치권력 앞에서 무력했지만, 적어도 부동산 투기판이 벌어지면 즉각 경고사인 정도는 내보냈다. 하지만 이들 제도언론은 이제 정치권력 정도는 우습게 알면서 오히려 상전 행세를 한다. 결정적으로 IMF 위기를 전후하여 정치독재의 충견은 사라지고 삼성 등 재벌독재의 애완견이 나타난 것이다. 주인 앞에서 꼬리 흔들기는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991년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 김중배의 선지자적 발언이다. “언론은 이제 (정치)권력과의 싸움에서보다 원천적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지금 자본과의 싸움은커녕 언론인 부지기수가 자본의 앞잡이가 돼버린 현실이다. 진정한 언론자유를 위해 언론기업의 특권들을 폐지시켜야 한다. 2008년 촛불 시민들이 소비자운동 차원에서 ‘조선광고 기업 불매운동’을 시작하자 이를 두려워한 기득 매체들은 이명박과 수하 검찰을 앞세워 이들 시대적 의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불법’으로 조작해낸다. 경제적으로 1인 지배 재벌체제, 사회문화적으로 1인 지배 언론체제가 오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직면하는 두 개의 최대 장애물이다.
(3) 오늘의 부동산 시장, 전적으로 기득 계층만을 위한 최악질 투기판이다. 박정희 식 관치 시대에 최소한 신규 중산층을 보육해내던 역할도 사라진다. 경제학의 지혜나 과거의 경험 같은 건 여기에 먹혀들 여지가 없다. 그간 한국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킨 최대 원인으로 민간소비 위축, 양극화 확대, 불완전고용 증대 등을 초래한다. (경제학의 ‘왈라스’ 일반균형은 경제의 어느 부문에 투기적 왜곡이 발생하면 경제의 다른 모든 부문도 마찬가지 왜곡 상태에 처할 것임을 함축한다)
부동산 투기는 모든 투기행위가 그러한 것처럼 일종의 ‘자가촉매’ 과정이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집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일단 오르면 계속 올라가기 마련인,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기대의 성취이다. 투기시장에서 경제학의 원론적 이야기는 틀리고, 투기선동꾼들(=소위 부동산전문가나 건설재벌 유관 민관연구소)의 주장이 전적으로 맞다! 오늘 아파트 값이 오르면 더 오르기 전에 사놔야 하고, 만약 값이 내린다 해도 곧바로 다시 오를 것이니 역시 사놔야 불로소득을 챙길 수 있다. 만약 경제학의 수요공급 원리 같은 걸 운운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또는 그녀의 행위는 자신이 경제학도 그리고 경제현실도 둘 다 모르는 자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점차 느는 것보다 수요가 재빨리 더 많이 증대하여 더욱 값을 올려놓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가 공리 수준으로 설정하는 우하향의 수요곡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투기시장의 수요 곡선은 공급곡선보다 더욱 가격탄력적인 ‘우상향’의 평평한 기울기를 가진다.) 처음부터 시장에 수요공급의 원리가 작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균형점 같은 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투기시장은 시장경제의 왜곡일 뿐이다. 이런 판인데도 2002년 시작된 제2기 버블기에 집값 폭등이 공급 부족 때문이라며 당시 노무현이나 이명박이 아파트 공급을 대폭 확대한 것은 더욱 큰 투기수요를 촉진시킨 작태였을 뿐이다. 마른 장작을 대거 집어넣을수록 투기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를 것 아닌가.
설혹 투기가 없는 실수요의 부동산시장이라고 해도 문제는 존재한다. 전형적인 불완전시장으로 집값의 ‘오버슈팅’ 현상이 발생한다. 공급이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기에 현실의 집값은 완전경쟁시장이라면 형성됐을 균형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선행적으로 한동안 고착화된다. 설혹 투기가 없어도 집값은 필요 이상 오르고, 필요 이상 하락하곤 한다. 소위 시장이론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가격의 신호 기능’이 미약하며, 걸핏하면 투기꾼들이 마치 오물 위로 날아드는 똥파리처럼 몰려들기 십상이다. 바로 그래서 부동산 시장은 금융시장과 함께, 굳이 주택복지나 식품안전 같은 개념을 떠나서도, 정부의 감시와 개입이 시장 자체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상시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투기꾼들의 실체는 돈 있고 신용이 높아 쉽게 자금 동원이 가능한 최상위 5%의 고소득 계층이다. (전체 주택수의 60% 이상을 고작 5% 미만의 최상류층이 소유한다) 의사, 변호사, 약사, 검사, 판사 등 ‘사’자 붙은 사람들과 정치인, 공무원, 금융인, 언론인 등으로 은행융자를 받아 다주택 투기에 나선다. 2000년대 주택보급률은 10%포인트 이상, 자가 소유비율은 2% 정도 증가한다. 이는 2000년대 공급된 총 주택 중 80% 이상을 투기꾼들이 차지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저소득층의 주택소유 기회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우리나라 부동산 투기는 처음부터 건설재벌들의 잇속을 챙겨주는 가운데 다주택 투기자들의 놀음판을 정부가 아예 만들어준 것이다.
사실 97년의 IMF 위기 이전만 해도 서민들은 물론이고 상류층도 가계대출은 언감생심이다. 굳이 ‘성공적인’ 금융개혁 때문에 은행들이 산업금융에서 가계금융으로 전환하고 그 결과 가계부채 총액은 2001년 말 342조원에서 2010년 현재 900조 원에 육박할 정도로 수직상승한다. 그간 은행들은 복덕방을 직접 방문하거나 가가호호 주택대출 전단지를 돌리는 등 경쟁적으로 부동산담보대출에 나선다. 부동산 투기시장에 힘껏 펌프질을 해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버블은 금융버블이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소위 세계화, 선진화 운운하면서 금융의 공공성을 파괴시킨 자업자득이 순차적으로 김영삼의 외채버블, 김대중의 카드버블, 그리고 지금 노명박의 부동산버블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투기시장이 국민경제의 체질 자체를 비정상 상태로 바꿔버린다. 경제학 교과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저축을 많이 해야 할 상위층의 자금여력이 부동산투기에 묶이는 바람에 가계부문의 금융이자 수지는 버블 이전 연간 7조원 규모 흑자에서 이후로는 마이너스 7조원 규모의 적자로 반전된다. 가계부문이 흑자지출단위라는 통화금융론의 공리적 정의조차 맞지 않게 된다.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도 가계저축률은 IMF 위기이전 30%대, 위기이후 25%대에서 세계 최저 수준인 2.5%대(2008년 말 현재)로 수직 하락한다. 가계저축이 가장 낮기로 악명 높았던 미국마저 추월해버린 것이다. 세계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저의 출산율 등등, 어디 그뿐인가.
과거의 값비싼 경험들도 통하지 않는다. 지난날 땅이나 아파트에 돈을 묻어놓으면 결국 언젠가 재산 증식에 도움이 됐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제도언론들이 ‘인플레이션 오면 집값이 오르기 마련’이라며 지금도 분양이나 매입을 권유하나 그런 말 듣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판 자체가 다르다. 현재의 부동산 버블은 과거와 달리 막대한 가계대출을 동반한다. 인플레이션 오면 금리상승이 불가피해지고 버블붕괴와 함께 집값은 실질기준으로 하락하면서 괜히 금리부담만 지게 된다. 혹자는 교과서에 적힌 대로 집값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를 운운하며 경기에는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하나, 이 또한 짧은 식견이다. 부동산 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위축 효과가 자산효과를 대부분 상쇄하며, 버블이 꺼지는 국면에서는 소비위축 효과만 비대칭적으로 확대된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도 평가한다는 한국경제의 성장 지표는 어찌 된 일인가. 거기에 ‘슬픈’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이론적으로 전 국민 중 한 명이 성장과실을 모두 차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손가락을 빨고 있어도 거시경제의 성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성장 과실의 대부분을 재벌들이 착복하는 경제구조가 어느새 고착화된 것이다. 관치 시대에는 ‘트리클 다운’ 정도는 있었으나 지금은 ‘트리클 업’ 뿐으로 재벌들만 배가 터질 지경이다. 수출재벌만 그런 게 아니고 건설 재벌들까지 대박 난 세상이다. 굳이 ‘성공적’인 기업구조 개혁으로 내수의 연결고리가 약화된 것이다. 특히 건설업에서 고용 창출 및 내수 진작 효과는 형편없이 줄어든다. 일자리라고 해봐야 일급이나 비정규직 등 고작 알바 자리를 만들어내는 실정이다.
IMF 위기이후 재벌건설사들은 최소한의 관리영업직만 남겨두며 그것조차 비정규직으로 상당수 전환한다. 그 이전 직접 고용하던 덤프트럭 운전자와 중장비 기사들을 개인사업자 형태로 모두 쫓아낸다. 정부의 조달사업 원가계산에서 이들 덤프트럭, 중장비 기사에게 책정되는 금액을 100이라고 하자. 재벌들이 중간에서 70을 착복하고 고작 30을 던져주는 식이다. 정부가 경기부양 명목으로 추경예산을 편성하거나 조기예산을 집행해도 거시지표에만 100% 반영되고 민생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건설재벌들에 국고 갖다 바치기다. 정부가 예산을 선집행했다고 재벌사들이 직원급료를 1년분씩 지급해주는가. 무엇보다 정부의 조기예산 집행액이 100이라면 재벌들이 90을 가로채고 실제로 공사를 떠맡는 하청중소기업들에는 10만 넘어간다.
(4) 모든 역사는 지나놓고 보면 너무 빤한 사실이다. 현재의 ‘공론의 장’이 어수선한 것이고, 미래의 역사가 안개 속에 감춰져 있을 뿐이다. “한국경제의 미래, 거품이 꺼져야 산다!” 이미 투기가 사그라진 시점에서 그대로만 둬도 부동산 시장은 수급이 작동하면서 머지않아 정상화된다. 지난 반세기의 ‘부동산 주술’에서 풀려날 절호의 기회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는 국민경제의 자기회복이자 정상화 과정인 것이다.
현재의 주택 수급상황은 이미 수십만 호 이상의 공급과잉 상태다. 2009년 현재로 전국 주택보급률은 110%대, 수도권은 100%대로 추정된다. (주택보급률은 주택총수를 가구총수로 나눈 비율이며 현재 정부는 주택 수 산정에서 여러 가구가 사는 다세대 주택을 소유권 기준으로 한 채로 처리하고, 현실적으로 주거용으로 많이 활용되는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서 제외시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의 공식 발표치보다 6~7% 높아진다) 문제는 건설경기가 얼어붙는다고 업체들이 분양을 안 하거나 주택을 안 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막대한 미분양 물량에 자금이 묶일수록 어떤 식으로든 분양에 나서 ‘돌려막기’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그렇다고 감히 나서기도 쉽지 않던 차에 친절하게도 이명박 정부는 ‘보금자리’ 주택사업에 직접 나서면서 실은 그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수요는 ‘이중’으로 급감한다. 그동안 주택시장의 주요 구매자였던 베이비붐 세대가 2010년대에 은퇴를 시작하면서 부동산 시장을 도리어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58년 개띠부터 74년 호랑이띠까지 매년 100만 명 내외로 17년 연속 출산했던 세대로서 총 인구수의 1/3이 넘는 1,600만 명 이상이다. 반면 주택시장에 신규 진입할 현재의 30~35세 연령대는 전보다 숫자도 적거니와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상대적 빈곤화로 신규 주택수요를 상대적으로 감소시킨다. 제법 오래전 시작됐던 대학정원의 대학생 수 초과 상황이 부동산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개별 경제주체의 견지에서 부동산 과다 보유 기업이나 다주택 투기자 등은 망설임 없이 ‘손절매’에 나설 때이다. 투기가 소진한 상황에서 적게 잃는 것이 많이 따는 것 아닌가. 하루라도 빨리 털수록 깡통 신세를 면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영악한 이들은 1991년 노태우 때 증시상황을 회고하며, 지금 이명박의 ‘버블 떠받치기’ 연착륙 국면을 내심으로 폭탄돌리기에 활용할 수 있다. 아직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처지라면 최소한 상투는 잡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만약 언론이나 부동산에서 권유한다고 해서 지금 매물을 덥석 잡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붙은 폭탄’을 끌어안는 자살행위이다.
거품 빠지기, 국민경제의 자기조절 과정이다. 무리한 정부개입만 없으면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미 끝장이다. 1991년 정점을 찍은 제1기 버블은 실질기준으로 10년 이상 내리막을 거쳐 2001년 4월 최저치에 이른다. 2007년 초 정점에 오른 제2기 버블 역시 수급을 전혀 감안하지 않아도 동태적 순환 관점에서 비슷한 운명이다. 불로소득이 사라져야 분배정의가 세워진다. 부동산 거품을 치워내고 새 시대를 준비할 시점이다. 국민경제의 최종목표인 고임금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부동산값은 내려가고 사람값은 올라가는 국민경제의 정상화 과정이다. 사람값이 높아야 숙련노동 공급이 증대하고 이는 노동생산성 상승과 임금소득의 추가적 제고로 이어지며, 더 이상 수출이나 건설 위주의 재벌경제가 아니라 내수기반의 전반적인 강화에 기초하여 국민경제의 선순환 운행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명박 자신이다. 제2기 버블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서 한국경제의 순리적인 정상화 과정을 교란시킬 최대의 잠재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이명박이 내놓고자 준비하고 있거나 장차 이어질 거로 짐작되는 소위 연착륙 정책들은 일본 등에서 이미 실패로 검증이 끝난 것들이다. 2010년대 대한민국의 주택시장 상황을 20년 전인 일본의 90년대 판박이로 만들려는 낌새가 현재로서 너무 역력하다. 90년대 초반 북구 3국과 일본은 모두 부동산 버블에 직면하지만, 북구 3국은 신속히 거품을 빼내면서 곧바로 경제 정상화의 길로 들어선 반면 유독 일본만은 장기복합불황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쓰라린 체험을, 오늘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경제, 과연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2010년대 한국이 1990년대 일본의 재판이 되도록 하는 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분명한 것은 부동산 버블을 터뜨리면 기득계층만 위태로워지나, 지금 거품을 치워내지 못하면 한국경제 전체가 오랫동안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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