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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바조구기-2

박종국교육이야기/노는아이풍경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12. 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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ꊲ ‘책벌레 바조구기’


까만 밤에는 유난히 많은 별이 도드라진다. 불 꺼진 교실 창밖에는 총총한 별들만 가득했다. 불안해 떨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저씨 손에 이끌려 숙직실로 따라갔다. 손에 책 한 권을 든 채. 사오 평 됨직할까 처음으로 가 본 숙직실은 아담하다는 생각보다는 라면냄새가 나를 현혹시켰다. 마침 아저씨가 저녁으로 라면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심한 허기를 느꼈다. 나의 시선은 오직 라면에 가 있었다.

 

  "니 배 마이 고프겠다. 내가 먹던 건데 묵을래?"

  "…….”

 

아저씨가 눈치를 챘는지 양은냄비에 절반쯤 남은 라면을 먹으라고 했다. 난 그 소리를 듣자마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치웠다. 숫제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라면! 60년대만 하여도 라면은 특별음식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당시 삼양라면 한 봉지는 18원이었다. 지금이야 라면은 간식으로 먹었지만, 예닐곱 살적만 해도 집안에 큰 행사 때 별미로 꼭 끓여먹었다. 우선 커다란 가마솥에다 물을 절반가량 붓고 팔팔 끓인다. 이어 라면 면발을 넣고 한소끔 푹 끓였다가 스프를 넣어 주걱으로 휘휘 젓는다. 그러면 면발이 퉁퉁 붓는다. 많은 식구 입을 감당하려면 그렇게 끓여야한다. 헤헤 풀린 라면, 차라리 우동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가마솥 국물까지 달달 긁어먹었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테지만, 그때 그 시절 라면은 또한 별난 맛을 주는 주전부리였다. 스프 살살 뿌려가며 생라면을 먹는 맛이란 같이 먹자 셋이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것도 거무데데한 손바닥에다 스프를 올려놓고 무시로 찍어먹는다. 그러다가 라면을 다 먹고 나면 더 먹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손바닥이 허예지도록 핥았다. 조미료 투성이였다 스프도 그때는 별미였다.  


라면을 먹고 난 나는 스르르 졸음에 겨웠다. 장작으로 군불을 넣은 숙질실의 따뜻한 훈기가 긴장했던 나를 풀어놓은 것이다. 전화라고는 구장(지금의 마을 이장)댁에나 하나 있을 정도였던 따라 밤늦게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 나는 난생처음 학교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얼마나 잤을까. 문득 선잠을 깨었는데 운동장 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짝 긴장했다. 그렇잖아도 동네 어른들이 학교 터는 옛날 공동묘지였다고, 6.25때 인민군들이 무더기로 묻혔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터다.


  “쫑구가아! 쫑구가아! 어디있노?”

  “바조구기! 바조구기! 들리나?”


아버지와 삼촌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숙직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왜 아버지와 삼촌은 나를 찾으러 왔을까. 평소 나는 집에서 있으나마나 하는 존재였다. 바쁜 농사철에 부엌 부지깽이도 나서서 일손을 도와야 할 판인데 지독한 왼손잡이인 나는 일꾼다운 일꾼이 못되었다. 농촌에 태어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오직 손놀림으로 농사짓는 데 왼손잡이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저 새참을 나르는 것밖에는 일손을 거덜 방법이 없다.


와다닥 일어난 나는 아저씨를 들어 밀며 깨웠다. 근데도 아저씨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깊은 잠에 들었던 탓이다. 몇 번이고 밀적이다 겨우 단잠에서 깬 아저씨가 부스스 일어나 무슨 일이냐고 짜증스럽게 물었다. 오줌 누고 싶으면 요강에 누라고.


  “오짐 누고 싶은 게 아입니더. 바카태 우리 아부지하고 삼촌이 왔는갑습니더.”

  “뭐라카노? 니 아부지하고 삼촌이 왔다말이가? 정말이제?”

  “예, 맞십니더. 들어보이소. 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예?”

  “가만 가만 있으보거래이.”


아저씨는 귀나발을 하고 간간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꼬나들었다. 분명했다.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는 아버지와 삼촌의 목소리였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이제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더럭 겁이 났다. 마른 장작 같은 아버지 성질에다 미꾸라지 소금 뿌려놓은 듯한 삼촌의 성질머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깟 책 한 권 땜에 여태까지 학교에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 즉시 귀사대기를 올려붙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삼촌을 만나기도 전에 볼때기가 얼얼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아저씨가 드르륵 숙직실 방문을 열더니 와락 고함을 쳤다.

 

  “아들 놈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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