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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라, 젊은이들이여!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1. 4. 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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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라, 젊은이들이여! 
[카이스트 젊은 수재들에게] 목숨 말고 그 잘난 딱지를 내려놓으라
 
류상태    
 
1. 쌀과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귀한 거다

 

어렸을 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쓴 큰 현수막을 들고 꽹과리를 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어린 마음에도 먹거리를 지어내는 농부가 제일 귀한 일을 하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어른들은 "쌀과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귀한 거다."라는 말씀들을 자주 했다. "가난하고 못 배워도 사람은 착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그렇게 알고 자랐다.

 

언제부턴가 "못 배운 것과 가난은 부끄러운 거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못 입은 거지는 못얻어먹는다."는 말도 자주 들렸다. 땅을 파고 농사짓는 일은 천한 사람들의 일이고, 비싼 물건을 만들고 파는 일은 세련된 일이며, 인생에 성공하려면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이 성행했다. 혼란스러웠고, 세상이 힘겹게 느껴졌다.

 

2. 미안하다. 그대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주어서

 

세계 최빈국에 들던 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단다.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잘 살았던 필리핀 사람들이 돈을 벌겠다고 우리나라로 찾아오고 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새마을운동이란 게 전국을 휩쓸면서 잘 살게 되면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거라고 했다. 그런 줄 알았다. 헌데 어찌 된 일인지 잘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잘 살게 되었지만 못사는 사람은 점점 더 삶이 힘들어진다. 웬 조화인지 모르겠다.

 

젊은 인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최고의 수재들이 입학한다는 카이스트의 재학생들이 잇따라 제 목숨을 끊었다. 공부 잘 하고 똑똑한 학생들만 모였으니 그들끼리의 경쟁은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겠다. 전교 1,2등 하는 수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난 이들이 대견하지도 부럽지도 않고 그저 안쓰럽기만 한 걸까?) 하지만 그들만 모아놓았으니 어차피 일등 나오고 꼴등 나올 수밖에 없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했던가.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돈으로 처벌을 한다는 기막힌 발상을 한 '이대한'(어느 전직 대통령은 '위대한'이라는 말을 이렇게 발음하셨다.) 총장님이 계시다. 늘 최상위에 있던 학생들이 바닥으로 내쳐졌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그렇잖아도 마음 아파 견디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나라의 미래를 위해 국가가 대신 내주기로 했던 등록금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 돈 토해내란다. 죄와 벌과 돈! 아, 비정한 자본주의여! 대학의 낭만을 찾는 건 그야말로 낭만이 되어버린 불쌍한 수재들이여!

 

갑자기 들이닥친 충격을 우리의 수재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삭막한 전장터가 되어버린 캠퍼스! 하지만 여린 심성을 가진 일부(?)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까지 고려하고선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 비상하기 어려울 터. 총장님은 아직도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설파하고 계시는 듯하다. 찬양받을지어다, '세계 최고 일류 정신'을 가진 총장님의 '이대한' 영도력이여!

 

3. 차라리 내려놓으라. 목숨 말고 그 잘난 딱지를!

 

삶에 지친 젊은이들이여! 죽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정 힘들면 그냥 내려놓으라. 목숨 말고 딱지, 카이스트라는 그 잘난 딱지를!

 

여행을 떠나라. 그 잘난 학교 때려치우고 등록금 낼 돈으로 배낭을 매고 세계여행을 떠나보라. 또래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는 지 직접 눈으로 보고 대화를 나누어보라. 그들과 함께 뒹굴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토론도 해보라. 이제부터는 직접 하는 공부, 진짜 인생 공부를 해보는 거다. 그대는 지금까지 '책 공부'만 해오지는 않았는가? 그건 사실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니다. 간접공부니까. 어쩌면 그대는 중고등학생 때 꼭 해야 하는 진짜 공부를 안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진짜 공부'란 게 뭐냐고? 그건 여학생 꽁무니 쫓아다녀보는 거다.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별빛 반짝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사나흘 고생하면서 수박서리 참외서리(아니, 이건 아닌가?)도 해 보고, 미친놈처럼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고성방가도 질러보는 거다.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여학생 꽁무니 한번 쫓아가보지 못하고 어떻게 "청소년기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 한 번 못해보고 어떻게 "젊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직접 부대끼고 체험하는 그런 공부는 못해보고 대신 책만 붙들고 씨름했다고? 그건 위험한 거다. 어쩌면 무서운 거다. 그런 공부만 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사람 잡기 십상이다. 그러니 마침 잘 됐다. 차라리 그 잘난 학교 때려 치고, 다 털고 나와 이제라도 그대의 젊은 자유를 만끽하라.

 

삶으로 겪어보는 게 진짜 공부다. 카이스트의 젊은 수재들이여! 혹시 그대들은 이런 제대로 된 공부를 못해본 것 아닌가? 혹시 그래서 성적이 낮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카이스트 아니면 대학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닌가? 대단히 미안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대들은 심각한 병이 든 것이다. 병을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곪은 상처를 터뜨리고 짜내어버리라. 까짓 카이스트, 과감히 떠나 가슴을 펴고 자유를 만끽하라. 그대들의 목숨은 카이스트보다 몇 백배, 아니 몇 천만 배 더 귀하다.

 

성적은 성적이고 인격은 인격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이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나는 20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했다.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학생들은 말썽꾸러기들이 아니라 수재들이었다. 전교 1,2등을 도맡아 하는 학생들. 그 학생들 중에는 자기처럼 공부 잘 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적이 높은 학생들만 사람이고, 성적이 보통이거나 낮은 학생은 사람도 아닌 줄로 아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성적이 좀 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저렇게 마음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미안하다. 그렇잖아도 마음 아플 젊은이들에게 모진 소리를 한 것 같아서. 하지만 나도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별 것도 아닌, 정말 대학 같지도 않은 대학이 사람 잡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하다니... 
 
 

기사입력: 2011/04/11 [00:1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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