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부가 도둑놈 아이가, 와 서민돈으로 배 채우노!”
'부산저축은행 사태 해결' 무기한 점거농성 사흘째.. 부산 초량동 본점 현장
김보성 기자 press@vop.co.kr 2011-05-12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자신의 예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결국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9일 낮부터 200여 명에 달하는 예금자들이 저축은행 매각 중단과 CCTV 공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부산 초량동 부산저축은행 본점에서 무기한 점거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효과도 읍는데 와 자꾸 묻는교. 이제 없다 마, 우리 집에 와서 마 카메라 사진 찍고 카더만.. 어떻게 돈 모았노 하며 물어보던 기 언젠데 아즉 해결 소식이 없노. 입만 아프요.”
11일 오전 부산저축은행 초량동 본점. 사흘째 점거농성이 진행 중이던 이곳에서 만난 김아무개(72) 씨의 말이다. 김 씨는 뉴스에 이 정도 나면 예금한 돈을 돌려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축은행 사태가 석 달 가까이 장기화 되면서 이제 분통만 남았다. 언론의 취재가 마냥 반갑지만 않은 까닭이다.
평소 같으면 금융업무로 바빠야 할 부산저축은행 본점 사무실은 이미 피해자들로 가득 찼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피해자들은 서로 상황을 공유하거나 밤샘농성의 피로를 달래려고 잠시 눈을 붙인다. 긴장감도 감돈다. 점거농성으로 그나마 매각절차를 밟으려 파견됐던 회계사와 금감원 관계자가 철수했지만, 언제 공권력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업정지로 피해를 본 예금주들이 9일부터 사흘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부산 초량동 본점.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금융당국의 매각절차에 맞서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이 지난 9일부터 4일째 '사태해결'을 촉구하며 부산 초량본점 사무실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은행에서 사라케서 샀는데.. 우째 모은 돈인데.. .”
본점 입구에서 한 피해자를 만났다. 구내식당에서 20년을 일해 돈을 모았다는 백아무개(68, 여) 씨. 백 씨는 그 돈을 금리 하나 좋다는 이유만으로 1금융권이 아닌 저축은행에 넣었다. 아무 탈 없을 거라 믿었지만, 그 기대는 몇 달 만에 허사로 끝났다.
백 씨는 “얼마 안 되지만 그 돈이 목숨과도 같은 돈”이라며 “보험 하나 가입안하고 다달이 돈 넣어왔는데 그걸 떼먹으면 우리 목숨 가져가는 것과 같은 거 아니냐”고 울부짖었다. 그의 울분은 높은 사람을 향해 있었다.
“높은 사람은 다 건지묵고 우리 서민들만 손해보라는 깁니까. 그건 말도 안되제. 정부에서 어서 도와서 사전인출자하고 해묵은 사람 찾아내라 해주이소. 우리를 막 지기는 깁니다. 갈수록 답답고 열받네요.”
저축은행 직원들이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탁자에 앉아 한숨짓던 정아무개(67, 여) 씨는 “죽을 맛”이라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저축은행의 사탕발림에 아무것도 모른 채 5천만 원어치 후순위 채권을 사들였다는 정 씨. 결국, 예금자보호법으로 한 푼도 보장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내가 딸만 둘인데. 애 아빠가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면은 우째 될까 싶어서 노후대책 한다코 이런 긴데 지금 죽을 맛입니더. 은행에서 사라케서 샀는데.. 우째 모은 돈인데.. .”
정 씨는 가입 당시 채권은 영업정지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보장받지 못한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자만 세다는 말에 턱 하니 채권을 사 버린 것이다. 정 씨는 진정 후회하고 있었다.
박성자(65) 씨를 만났다. 박 씨는 최근 각 언론사에 장문의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면서 관심이 쏠렸던 피해자다.
“이자 한 푼 더 받을라꼬 예금을 채권으로 안 바꿨능교. 그걸로 전기세고, 전화세고, 수도세고 내려고 했는데.”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사는 박 씨는 억울함에 밤잠을 못 이룰 정도다. 피해액이 1,400만 원이라던 박 씨는 “다른 사람은(고액 인출자) 이게 껌 값인지 몰라도 난 목숨 걸어놓고 피와 살과 같은 돈”이라고 말했다. 평생 파출부 일과 폐지수집으로 한푼 두푼 모아온 저금이 한순간에 날아가자 박 씨는 바로 쓰러졌다. 끝내 허리에 무리까지 왔고, 하루에 몇 번씩은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빈혈로 고생하고 있다.
“정부가 도둑놈 아입니까. 와 우리 서민 돈으로 배를 채우는교. 김석동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돈을 돌려주이소. 서민들 보호할라꼬 대통령 된 거 아입니꺼. 그런데 와 아즉도 말이 없는교. 돼지하고 소는 보상해주고, 지진 난 일본도 도와주는데 우리는 와 안살려주는교.”
이런 박 씨의 억울함을 달래야 할 금융당국은 은행 매각에만 열을 올린 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박 씨는 “왜 우리 서민 돈으로 장난을 치느냐”며 “부자 돈은 다 내면서.. 우리는 이 돈 없으면 다 죽는다”라고 비통한 심정을 참지 못했다.
박 씨의 눈물겨운 목소리를 지켜보며 듣던 주변 동료들이 다들 한마디씩 보탠다.
“맞다. 자기 잘못 아이가.”
“서민 돈으로 장난쳐도 유분수지!”
“이명박이는 와 몇 달째 눈 귀 막고 있노.”
'매각중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 9일부터 4일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 11일 초량 본점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부당한 사전인출 정부가 책임져라", 4일째 부산저축은행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피해자들이 초량동 본점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피해를 입은 참가자 대부분이 6-70대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피해자들, 취재진에 호통 “MB에게 하는 소리 그대로 보도하라!”
이번엔 좀 젊은 피해자를 찾았다. 4천여만 원 치 채권을 사놓았다는 장복자(50) 씨. 50대지만 고령의 피해자가 많은 이곳에선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입장도 명확했다.
“저축은행이 이미 부도가 난 상태에서 후순위 채권을 발행했다카는 것은 엄연한 사기 아닙니꺼. 결국, 금감원에서 뇌물 받아묵고, 방임하고, 봐주니까 이렇게 된거지예. 바지사장 세워놓고 가짜로 월급 다주고 별짓 다 안했는교. 그동안 금감원은 머하고 있었는지.”
장 씨는 화살을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돌렸다.
“대통령은 도대체 뭐하고 있능교. 이 상황에서 매각까지 추진하모는 폭동 일어날 분위깁니더. 청와대로 찾아가던지 매일 마 죽어나가는 꼴을 봐야지.”
피해자들의 분노는 금융당국을 넘어 이명박 정부로 향하고 있었다. 장 씨를 만나고 다시 분위기 파악을 위해 이동하려는 찰나 저 구석에서 고성이 들렸다.
한 피해자가 모 방송국 카메라 기자를 붙잡고 호통을 치고 있던 것.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피해자는 “왜 이명박에게 하는 소리는 방송에 안 나가냐”며 “있는 그대로 보도하라”고 취재진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또 높였다. 이 피해자의 심정을 아는 카메라 기자는 어쩔 줄 모른 채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김옥주 비대위원장의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11일 자 대검찰청 중수부의 발표내용이 긴급하게 전달됐다.
“여러분.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가 이미 20여 일 전인 1월 25일에 결정됐답니다. 그때부터 부당 사전인출이 시작된 겁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 2월 17일 영업정지 발표 이후 하루 전날만 불법 사전인출이 이뤄진 줄 알았던 농성자들. 이 사태가 무려 20일 전부터 벌어진 일이라는 소식에 경악했다. 이를 악 다문 김옥주 비대위원장의 구호 선창이 이어졌다.
“부당한 사전인출 정부는 책임져라!”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지마라!”
부산저축은행 비대위 관계자는 “매각을 어떻게 하든 피해자들부터 구제해야 한다고 본다”라며 “정부의 함정에 빠져 피해를 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길거리에 누워 있는데 자기들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고 정부 당국에 일침을 놓았다.
평생 한푼 두푼 모으며 정직하게 살아온 이들의 한 맺힌 목소리가 사흘째 부산을 울리고 있다.
영업정지 전 불법 사전인출과 부실논란으로 논란을 사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부산상호저축은행 초량동 본점에 피해자들의 규탄 대자보와 예금보호공사의 가지급금 공고가 나란히 붙어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부산저축은행 부산 초량동 본점에 붙여진 영업정지 및 경영개선명령 공고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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